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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 Nov 10. 2015

[김경욱 단편소설] 엄마의 부엌

사랑은 다르게 적히지만, 비슷한 곳으로 향한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음식을 주섬주섬 싸서 보낸다. 적당히 보내는 법이 없다. "엄마, 저 왠만한 건 사먹어서 안보내셔도 되는데... 보내실꺼면 진짜 조금만 보내주세요. 저 잘 못해먹어요."

이렇게 언질을 주면 뭐하나. 엄마에게 온 택배상자는 늘 우체국 박스 7호 사이즈에 가득 찰 정도. 


고구마 5개, 사과 5개, 오징어채는 손바닥 정도의 반찬통에 적당히 찰 만큼, 김치깍두기는 오징어채의 두배정도의 통에 가득찰 정도. 혼자사는 내가 음식에 곰팡이가 스물스물 피어나기 전에 먹을 수 있는 반찬량은 딱 이정도다. 이정도면 곰팡이가 서린 음식을 종량제 봉투에 꾸역꾸역 담고, 그걸 버리러 5분 거리의 음식물 쓰레기통에 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은 늘 그것보다 넘친다. 

주말에만 밥을 지어먹는 나는 그게 늘 부담스럽다. 감사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냉장고에 박아 둔 음식에 곰팡이가 쓸어버릴 때면 예상치 않게 하게 된 가사노동에 인상이 찌푸려지게 된다. 


김경욱의 소설 '아버지의 부엌'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의 기대와 정 다르게 흘러간다.아버지는 아들이 좋아하는 소꿉놀이 인형 '미미의 부엌'대신 남자다운 아들을 위한 최신 기관총을 사다주고 느닷없이 아들의 첫사랑 여자아이의 집에 찾아가 그녀의 부친에게 폭언을 쏟아낸다. 소설은 이렇게 표현한다. 


"아버지가 낯선 동네 낯선 골목의 낯선 집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유쾌한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생소한 이름의 문패가 달린 파란 철문을 나는 아버지의 등 뒤에 숨은 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문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 어두운 운명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문이 열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잠시 후 덜컹, 문이 열렸다.(...)

빨랫감 가득한 대야를 들고 나타난 여자애의 모친에게 아버지는 일장연설을 토해냈다. 작년에는 실패했지만 올해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법대에 가야 하는 아이다. 한가하게 연애놀음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남학생에게 전화질하지 않도록 딸자식 간수 잘해라."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은 '그 자리에서 꺼져버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소라가 노래한 것처럼 사랑이 비극이 되는 순간은 여기서부터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사랑은 다르게 적힌다'

남녀의 사랑이고 부모자식이고 비극의 시작은 사랑의 대상과 자신의 희망(욕망)을 동일시 할 때 시작된다.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자녀가 공부에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즉 그 고유한 생명의 특질에 대한 탐구 없이, 우리 자식만큼은 좋은 대학을 나온 존경받는 인물이 되게 하기 위해 자녀의 일상을 꾸려가거나, 교제하는 연인이 자신 변화해서 혹은 자신에게 다 맞춰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 좋아하길 바라며 잔소리를 하는 것이 그럴 예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 깊어지면 질 수록 늘 비극의 수렁에 빠지게 될까? 

아니다. 사랑은 다양한 방법으로 순간의 위기를 극복한다. 


이를 테면 나의 구겨진 면상을 보다 못한 아빠가 해준 말을 통해서.

"엄마는 그저 아들에게 뭔가 해주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버리더라도, 많더라도 받아라. 엄마를 위해 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 아니냐. 그 후엔 누구주던지 버리든지 너 알아서 하고."


아빠의 말은 음식에 대한 아까움이나 괜한 노동에 대한 귀찮음보다 엄마의 마음을 우선순위로 돌리게 했다. 버릴 수 밖에 없는 음식을 말없이 받고 엄마의 마음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 사랑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 나는 그 때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의 부엌'의 주인공 또한 아버지의 사랑의 방식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한참을 되짚어가서야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미미의 부엌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미미 인형을 마주한 채. 뜨문뜨문 지나가는 관람색 중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도 있었고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엇다. 다가가보니 아버지는 졸고 있었다. 입맛을 다시면서. 조명 때문인지 얼굴이 유난히 쪼글쪼글했다. 아버지는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운 채 앞쪽으로 고개를 꾸벅거렸다. 뭔가를 간청하는 사람처럼. 코도 골았다. 쉭쉭 폭폭, 쉭쉭 폭폭. 낡은 열차가 선로를 힘겹게 밀고 나가는 듯한 소리. 붉은 망에 담긴 귤과 삶은 계란과 생수를 비닐봉투에 꺼내 식탁위에 내려놓았다. 아버지를 위해 난생처럼 차리는 식사였다. 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버지의 어깨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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