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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 Sep 02. 2016

[김애란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

를 읽고 쓴 '나는 편의점에서 일했다' 

한산한 새벽 1시. 편의점 업무 인수인계는 수입, 지출 정산으로부터 시작한다. 남은 지폐수를 세고 내가 근무하기 전의 금액과 근무 후 증가액을 기록한 후 실제 금고에 있는 돈과 맞는지 확인한다. 정산액수보다 많은 현금이 들어 있으면 그 돈은 데이터에 기록되지 않은 주인없는 돈이다. 알바를 하던 나와 내 친구는 그돈을 '야간근무보너스'라고 명명하고 각자의 주머리에 넣었다. 단, 정산액보다 현금이 부족하다면 내 해당 근무 알바가 자신의 월급에서 그것을 매꿔놓아야 했다. 업무 인수를 완료한 후 초록색 조끼를 입으면 그 때부터 나는 손님이 아닌 한 점포의 책임자가 된다. 하지만 편의점에서의 파트타임 노동이 그리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독 사람이 많은 1시~2시 사이의 편의점에서 나는 그날도 멍한 표정으로 바코드를 찍었다. 손님이 적어지는 3시가 되면 토익 필수 영단어 책을 펴서 읽히지 않는 영어 단어를 우격다짐으로 머리에 넣다가 지겨워지면 스마트 폰으로 동영상을 보다 또 지겨워지면 육포 하나 뜯어서 질겅질겅 씹어 먹고 마침내 4시에 시침이 가면 취침모드에 들어갔다. 늘 그랬듯 나는 판매대 위에 올린 책에 팔꿈치를 올리고 양손으로 턱을 괸 채 꾸벅꾸벅 존다, 아니 잔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고개를 까딱까딱 하며 졸고 있던 4시의 밤. 아직 잠든 도시에서 까무잡잡한 피부에 키는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한 남자가 벨을 울리며 가게로 들어왔다. 항상 내가 잠이 들 때 쯤 되면 어김없이 편의점을 찾는 그 사내다.




엉겁결에 나와 그의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의 눈은 갈 길을 잃었다. 무언가 말을 걸어야 할 지, 그의 노곤함을 알기에 아무 말 없이 눈웃음을 지어야 할지 고민하다보니 어느새 나의 손에 들린 스캐너가 잽싸게 컵라면의 바코드를 읽어 합산 금액을 알려줬다. 그가 이 새벽에 ‘저렇게 많은 물건 중 설마 내게 필요한 게 한 가지도 없을까’ 의심하며 편의점에 들른 건 아닐 것이다. 그는 왜 항상 이시간만 되면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먹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말문을 뗐다.

“이 시간까지 일하세요?”

그는 성가시다는 듯, 컵라면 값 1200원과 함께 ‘네’라는 말을 내 던지며 황급히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갔다. '딸랑' 문에 달린 방울 소리만 친절하게 울렸다.

머쓱해질 때 나는 습관처럼 혼잣말이 나온다.

“문장에 명사나 술어 정도는 있어야지.’네’가 뭐야 네가 뭔데.”

'너,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니?' 이번에는 속으로 나에게 묻는다.

새벽녘의 편의점에서 나는 그렇게 종종 혼자 말하고 혼자 들었다.

김애란의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를 읽는 동안 나는 그 때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외로움과 나의 머쓱함은 닮은 구석이 분명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점원 입장이었고 소설 속 '나'는 편의점을 스치는 고객 중 한명이라는 것.

편의점은 그런 곳이다. 택배를 보낼 순 있지만 받을 수는 없고, 물건을 살 수는 있지만 맡길 수는 없다. 자신은 편의점과 연관된 누구에게도 구애받는 걸 싫어하면서도 편의점이 결정적일 때 자신을 알 것이고 자신의 열쇠를 잠시 맡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주인공의 모순이다.

"여기서 항상 제주삼다수랑, 레종 담배 사갔는데.."

라고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주인공에게 편의점 점원은,

"손님, 그건 누구나 사 가는데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편의점에도 모순은 있다. 편의점에 방문하는 사람의 시간은 겹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고 서로의 말투를 알고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가까워지지 않는다. 개인주의 시대가 열었고 성장시킨 공간인 탓일까. 편의점에 오는 사람들은 서로 알지만 모른다. 그렇다. 편의점은 그런 곳이다. '어서 오세요 와 감사합니다' 세계. 거의 모든 종류의 생필품을 팔고 언제나 열려있기에 동네 주민의 다수가 들르는 곳. 여러 번 서로 얼굴을 스쳐보며 안면을 트고 있지만 각자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는 거대한 관대가 지배하는 세계. 안다와 모른다가 공존하는 곳, 편의점. 이런 편의점에 대한 느낌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한 번도 휴일이 없었던 그곳에서 나는-나의 필요를 아는 척해주는 그곳에서 나는 - 그러므로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누구도 껴안지 않았다. 내가 편의점에 갔던 그 사이, 나는 이별을 했고, 찾아갔고, 죽을 만큼 아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거대한 관대가 하도 낯설어 나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다. 편의점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물이다. 휴지다. 면도날이다. 그러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 고통을 나는 어지 해야 하는가? 결핍 없는 곳에서 목 놓아 우는 자에게 물을지어다. 그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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