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의 문제

by 백권필


“다음 소식입니다. 또 안타까운 생명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관악구의 한 원룸에 살고 있던 구모씨가 사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홍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터미널의 대형 텔레비전에서 기자는 사망한 구씨의 사인이 마약 성분의 약물중독일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부검이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약물중독에 의한 사망 사건이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덧붙였다.

터미널에 앉아 있는 탁형사는 뉴스의 내용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가 다른 소식으로 넘어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탑승구로 걸어갔다.

서울강남 센트럴시티행 고속버스에 올라 본인의 자리에 앉은 탁형사는 의자의 팔걸이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의자가 뒤로 젖혀지면서 바닥에서 30도의 각도로 기울었다. 주위의 다른 승객들도 의자를 뒤로 젖혔다. 승객이 모두 탑승한 것을 확인한 버스는 출입문을 닫고 버스기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탁형사는 이동민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수로 내려 갔었다. 사망한 이동민은 절도 전과자였지만 지금은 출소 후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마약중독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동민이 죽기 전 서울에서 마약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 두 건 발생했고, 이번 달에 벌써 다섯 건 발생했다. 사망자 중에 마약 전력이 있던 경우는 한 건이었다. 나머지는 마약과는 관련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사인은 모두 마약 성분과다 복용에 따른 쇼크사였다. 그래서 탁형사는 마약중독 사망 사건이 단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발생한 연쇄살인으로 판단했다. 그는 예전 마취제를 이용한 연쇄살인 사건을 떠올렸다.


“이동민씨가 마약에 손을 댔나요?”

“아니요. 그이는 출소후에는 가게에 전념했어요. 장사도 잘 되어서 기뻐했는데…..”

“최근에 누가 찾아오지는 않았습니까?”

“아니요! 찾아온 사람은 없었어요. 그는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과는 연락을 끊고 살았어요.”

“최근에 다녀온 곳은 없나요?”

“가게 일로 바빠서 거래처만 다녔어요. 그리고 늘 다니던 병원에 간 곳말고는”

“병원에 다녀요? 무슨 병으로.”

“큰 병은 아니고 탈모 치료하러 서울에 다녀왔어요.”

“병원이 어디죠?”

“서울 강남에 있는 P병원입니다.”


탁형사는 서울에 도착하면 P병원부터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달리는 고속버스 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탁형사! 여수건은 어떻게 되었나?”

“별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서장님. 부검 결과도 필로폰 과다복용에 따른 쇼크사로 나왔습니다. 누가 대량으로 주사놓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주사바늘도 없었습니다. 본인이 먹었나봐요.”

“여기 서울에서 발생한 것도 마찬가지야. 필로폰 과다복용에 따른 쇼크사라고 나왔어. 주사를 맞긴 했는데 주사로는 그정도의 많은 양을 투여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역시 본인이 먹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수치였어.”

“지금까지 발생한 마약중독에 의한 사망 사건이 총 열네 건이네요. 서울에서 일곱 건, 경기도 세 건, 대전 한 건, 전남 한 건, 부산 두 건이군요.”

“전혀 접점이 없어. 지역도 퍼져 있고 나이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하고 마약 전과는 거의 없고…. 딱 하나 있네, 남자라는 것. 그나저나 뭐가 있긴 있는거야, 탁형사?”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건 단순 사건이 아니예요. 누군가의 소행으로 발생한 연쇄살인이 확실합니다.”

“그 미친놈을 빨리 잡아야 해. 아직 언론에서는 모르고 있는 눈치지만 곧 의심할거야.”



늦은 밤, 탁형사는 마약중독 사건 서류들을 뒤적이며 검토하고 있었다.


- 마약을 했던 사람은 두 명이고, 의심되는 사람은 세 명이고 나머지는 마약과 전혀 관련이 없어. 나이는 삼십대에서 사십대가 가장 많아. 남에게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은 한 명 정도이고. 직업도 회사원, 공무원, 식당업주, 포크레인 기사, 조직폭력배 등으로 다양하군. 이들의 공통점이 뭘까?


답답했는지 탁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건물 주변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려고 하는데 김형사가 다가왔다. 오랜만에 보는 김형사의 머리가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탈모로 머리가 휑했는데 지금은 머리가 수북했다.


“여~ 김형사! 신수가 훤하네. 머리 심었어?”

“오랜만이야, 탁. 한 3년만인가, 잘 지내고 있었어?”

“뭐, 형사일이 그렇지. 머리는 어떻게 된거야?”

“탈모 치료제 신약 두모생이라고 들어는 봤어? 아~, 잘 모르지. 이 약을 먹었더니 이렇게 되었어. 탈모인들 사이에서는 아주 핫하다구.”

“그렇게나 효과가 좋아? 어느 병원이야? 나도 가보게!”

“아직도 쌩쌩한데 벌써 약을 먹으려고? 서울 강남에 있는 P병원이야.”

“P병원?”



어제 서울에 도착한 탁형사는 강남에 있는 P병원으로 갔었다. 거기서 그는 이동민의 진료기록을 살펴보았다.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진료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눈에 띄인 점은 약의 처방이 달라졌었다. 2달 전에 약이 바뀌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신약이 나왔는데 탈모 치료에 우수해서 처방했다고 말했다. 의사는 이동민씨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으며 사인이 마약중독이라는 점에 또 놀랐다.



김형사와 헤어진 후, 탁형사는 자리에 앉아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이동민 - P병원 - 탈모약 - 마약중독’

그는 여기서 단서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그는 마약중독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최근 다녔던 병원을 확인했다. 서울은 P병원, 대전은 H병원, 부산은 K병원이었다. 그리고 이들 병원에서 2달 전부터 사망한 사람들에게 탈모 치료를 위해 약을 처방했는데 그 약은 신약 ‘두모생’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의문점은 ‘왜 이들만 사망한 것일까?’였다. 탈모 치료를 위해 이들 병원에 다닌 사람들 대부분이 신약 ‘두모생’을 처방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의문점을 풀기 위해 법의학자 현박사를 찾아갔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인데 만약에 그 드문 경우가 발생했다면 일어날 수는 있지.”

“그 드문 경우가 뭐야?”

“사망자들의 특이체질이지. 특이체질은 어떤 물질에 대하여 보통 사람과는 달리 과민한 반응을 일으키는 체질인데 특정한 종류의 약물이나 단백질, 특유한 이물질에 대한 감수성이 이상적으로 발달하여 나타나지. 신약의 어떤 물질이 변화를 일으켜 특이체질에 영향을 줘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말이야.”

“그럼, 마약성분이 검출되는 이유는 뭐야?”

“신약 물질 중에 어떤 것이 마약 성분으로 변화했기 때문이야.”

“알아듣게 설명해봐!”



만약에 ‘땅콩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가 신약의 어떤 물질에 영향을 주어 신약에 변화가 생기고 ‘땅콩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분이 나와 급작스럽게 사망하게 된다는 것이 현박사의 요지였다.


경찰서로 돌아간 탁형사는 사망자들의 진료내역서를 확인했다. 사망자 모두 ‘조개 알레르기’를 보유했고 그들이 사망 당시에 먹은 것은 오렌지였다. 신약에 들어있는 물질 ‘폴로라티몬’은 탈모 치료에 효과적이지만 필로폰과 유사한 구조식을 가지고 있어 오렌지와 같은 산성 물질을 만나면 필로폰과 조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을 배출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연쇄 살인범의 정체는 사람이 아니라 탈모 치료제로 개발된 신약 ‘두모생’에 포함된 물질 ‘폴로라티몬’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신약 ‘두모생’은 판매 중지되었고, 신약 개발 과정에 대한 수사도 시작되었다.



“탁형사! 수고했어. 역시 자네는 최고의 수사관이야.”

“과찬입니다, 서장님. 그런데 안타깝네요, 그 드문 경우가 발생해 사망한다는 것이.”

“그렇군.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 그 드문 일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 드문 일이 우리에겐 확률의 문제일 수 있지만 사망자에겐 생존의 문제였을 겁니다.”

“죽음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자네 말이 맞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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