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호텔 817호.
“아! 염려하지 마세요. 이번에도 김 회장님이 도움을 주신다면 그 건은 아무 염려 없습니다. 하하하! 매번 이렇게 도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관용은 크게 웃으며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냈다. 그리고 그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지가 내 말을 안 들을 수 있나? 내가 그놈의 약점을 쥐고 있는데.”
그는 탁자에 놓인 컵을 들었다. 컵에는 위스키가 담겨 있었다. 그는 벌컥벌컥 마셨다.
“으~. 쓰다.”
컵을 내려 놓은 그는 텔레비젼에 나오는 뉴스를 들었다.
‘오늘 민국당 대선 후보 이관용은 서울에서 열린 경제인 포럼에 참석하여 자신의 경제 관련 비젼을 밝혔습니다. 그는 현정권이 실시한 친노동계 정책이 실패했다며 경영계가 요구해온 ‘노동 시간 유연화’ 도입을 찬성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
“후보자님! 밤이 깊었습니다. 내일 일정을 위해 이제 주무시죠?“
선대본부장이 말했다.
“아~. 그런가요.”
이관용은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AM 01 : 04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아침에 봅시다.“
이관용은 선대본부장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선대본부장을 비롯한 선거 캠프 참모진도 이관용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서류 가방을 들고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관용이 머무는 호텔방에는 도우미 로봇만 남았고 복도와 호텔 주변에는 경호 인력이 배치되었다.
이관용은 어둠 속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찾았다.
AM 04 : 20
그는 도우미 로봇을 불렀다.
“H-100! 물 좀 가져와!“
주방에 있던 로봇의 눈에 불이 들어 오고 작동하기 시작했다. 로봇의 움직임에 따라 주방의 전등도 켜지고 거실도 켜지고 이관용의 방에도 전등이 켜졌다. 도우미 로봇이 물컵이 담긴 쟁반을 들고 이관용의 방에 들어 왔다.
“왜이리 꾸물거려! 깡통 같으니! 어서, 가져와! 어제 술을 많이 마셨더니 목이 마르군.”
그런데 로봇은 움직이지 않고 이관용을 바라만 보았다.
“뭐해? 어서 달라고! 고물 로봇 같으니.”
“넌 정말 안 되겠구나! 쓰레기 같은 놈!“
로봇은 컵을 들더니 컵에 든 물을 이관용의 머리에 쏟았다.
“이놈의 로봇이 미쳤나?”
이관용은 벌떡 일어나 로봇에게 발길질을 해서 밀쳤다. 로봇은 뒤로 밀려나더니 이내 몸의 균형을 잡았다. 그러더니 로봇은 들고 있던 쟁반을 던지고 이관용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얻어맞은 이관용은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들은 복도의 경호원들이 호텔 객실문을 두드리고 상황을 물었다. 객실안에서는 계속해서 이관용의 비명소리가 나왔다. 경호원들은 즉시 객실문을 열고 들어와 이관용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달렸다. 방에서 도우미 로봇이 실신한 이관용을 구타하고 있었다. 경호원이 달려들어 로봇을 붙들어 떼어내고 이관용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관용은 얼굴을 심하게 얻어맞은 상태였다.
“119, 여기는 H호텔 817호, 응급환자 발생. 어서 구급차를 보내주세요!”
로봇은 경호원과 대치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경호원이 로봇의 목 부분의 스위치를 만지자 로봇은 그제서야 멈추었다.
이관용은 가까운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골절되거나 장기가 파손되지는 않았으며 얼굴과 상반신에 타박상만 입었다.
다음날 아침에 이관용 측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변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사건은 현정권에서 사주한 정치테러이며 이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곧바로 대통령 측과 여당에서는 이번 사건에 어떠한 관련도 없으며 오히려 경찰과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로봇이 인간을 상대로 폭력을 저지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법조계에서는 해당 로봇을 살인미수 혐의로 입건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로봇을 제작한 회사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과학계에서는 이번 로봇 행동의 원인이 오작동이라는 입장과 의식의 발현이라는 입장이 대립하였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은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민국당 대선 후보 이관용의 자작극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왜냐하면 현정권의 높은 국정수행 지지와 여당의 대선 후보의 능력에 비해 민국당의 대선 후보 이관용은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정치신인에 불과해 지지율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민국당 대선 후보 이관용은 30대 초에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집안은 법조계 출신이 많았고 아버지는 검찰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S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로스쿨도 수석졸업한 후, 검사에 임용되었다. 그는 검찰의 요직인 특수부와 공안부를 거쳤고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가 20여 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직하자 정치권이 그를 국회의원으로 영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5년 후, 그는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민국당의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이번 27대 대통령 선거에 민국당 대선 후보에 도전하였다. 그는 법과 정의를 외치며 훼손된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여 근소한 표차로 민국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에서는 대선 후보자에 관한 것이므로 민간한 사안으로 여기고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는 방침을 세웠다.
사건은 명확했다.
2053년 10월 26일 월요일
AM 04 : 25
H호텔 817호
도우미 로봇이 이관용을 구타하여 실신에 이르게 하였고 경호원들이 도우미 로봇을 정지시키고 이관용을 근처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이송
“탁형사! 자네가 이번 사건을 맡게나. 검거 실적이 강력 1팀에 뒤지고 있으니 실적 좀 올려보라구.“
지난 번 ‘약물 투여 연쇄살인 사건‘이후, 별다른 실적이 없는 탁재우에게 서장은 이 사건을 배당했다.
”어떻게 결론이 나도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사건을 왜 제게 떠넘기십니까?”
“그럼, 어떡허냐? 다들 몸을 사리고 있는데. 그러니 너라도 해야지.“
“대신에 이번 사건 마무리되면 내가 원하는 것 허락해주세요.“
”또냐? 너만한 강단 있는 형사가 어디 있다고 어딜 내빼려고 그래!“
”그럼,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저는 밀린 사건 수사하러 갑니다.“
탁형사는 수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장실을 나가는 탁형사를 바라보았다.
”알았어, 탁형사! 알았다고, 원하는 대로 해줄게.“
서장은 문을 닫으려는 탁형사에게 소리쳤다. 탁형사는 다시 문을 열고 말했다.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서장님!“
탁형사는 곧바로 사건 현장인 H호텔로 이동했다. 그는 차에서 초동 수사에 기록된 내용을 읽었다. 기록된 내용에는 언론에 알려진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의문점은 ‘왜 도우미 로봇이 이관용에게 폭력을 휘둘렀냐’였다. ‘로봇의 3원칙‘ 중 첫 번째가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이다. 그런데 로봇이 첫 번째 행동을 위반한 것이다.
현장에 도착한 탁형사는 호텔방을 둘러보았다. 이관용이 로봇에게 구타를 당한 방은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었다. 바닥을 살펴보던 중에 침대와 협탁 사이에 반짝이는 것이 보여 손에 위생장갑을 끼고 꺼내어 보았다. 작은 금속 조각이었다. 그는 증거물을 담는 비닐봉투에 금속 조각을 넣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그는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에 손을 대었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탁형사님! 저는 경사 박기정입니다. 로봇에 대한 검사가 끝났습니다.와서 확인하라고 서장님이 부르십니다. 어서 오세요.”
“아~, 알았어요. 현장 정리하고 들어갈게요. 아참! 가는 길에 피해자 이관용도 만나보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탁형사는 현장을 둘러보더니 이내 호텔방을 나왔다. 그리고 그는 이관용이 있는 대학병원쪽으로 차량을 움직였다.
“이것은 명백히 정치 탄압입니다. 유력 야당 대선 후보를 제거하려는 현정권의 테러라고요. 어떻게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입힐 수 있습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만일, 이 사건이 로봇의 단순 오작동으로 인한 일로 처리되면 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이관용은 탁형사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하며 흥분했다.
“잘 알겠습니다. 몇가지 질문을 하겠으니 말씀해주세요. 진실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으니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주세요.”
“진실은 이미 내가 얘기 해잖아요. 정치탄압이라고!”
“후보님! 진정하세요!“
탁형사가 소리치자 그제서야 이관용은 진정했다.
”후보님! 로봇이 여느 때와 달리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글쎄, 일정이 빡빡해서 로봇을 제대로 보지 못했소. 그런데 그날따라 좀 버벅대더라고요. 오래된 구형이라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버벅댄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합니까?“
”음~, 업데이트를 하느라 그러는지 행동이 버벅대더라구요. 일반적으로 업데이트 중에는 로봇이 작동을 멈추잖아요. 그런데 보통 업데이트는 새벽에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어제는 일과 중간에 업데이트를 하는지 동작이 버벅대더라구요.“
”그래요? 또 기억나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아! 생각나는 게 있는데 나한테 반말을 하더라구요, 쓰레기라고.“
”뭐라고요?“
”그 얘기는 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관용은 손사래를 치며 병상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래서 탁형사는 수첩을 덮고 병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라……”
다음은 이 사건의 피의자인 도우미 로봇을 만날 차례였다.
도우미 로봇은 경찰서에 마련된 특수격리실에 수감(?)되어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팔과 다리가 분리되었고, 머리와 몸통만 로봇 거치대에 있었다. 그 앞에는 탁자가 놓여 있고 탁자 위에는 테블릿이 있었다. 탁형사는 의자에 앉아 테블릿을 통해 로봇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로봇 기종 : 생활 및 업무 도우미
로봇 생산 년도 : 2045년 1월
로봇 제작사 : 바이오닉 리메이크
로봇 명칭 : H-100
로봇 구매자 : 공지호
로봇 사용처 : 민국당 사무실
로봇 리콜 내역
• 2048년 5월 - 팔 관절 작동 불량
• 2050년 11월 - 배터리 충전 불량
로봇 수리 내역
• 2046/04/09 - 발바닥 패드 교체
• 2046/08/10 - 손 관절 부품 교체
• 2047/06/28 - 통신장비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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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50/07/11 - 손 관절 부품 교체
• 2050/02/07 - 냉각기 부품 교체
• 2053/03/21 - 발바닥 패드 교체
• 2053/09/27 - 통신장비 교체
로봇 오작동 내역 : 없음
로봇 최종 업데이트 : 2053.10.25.16:27
탁형사는 테블릿을 덮고 로봇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로봇의 얼굴은 눈, 코, 입, 귀가 달려있었지만 머리카락은 없었다. 업무용 로봇은 굳이 인간의 모습을 띠지 않는다. 그러나 향락과 쾌락을 위한 로봇은 인간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지닌다. 업무용 로봇은 업무에 따라 별도의 기능이 강화된다. 지금 탁형사 앞에 있는 로봇은 사무용 로봇으로 자료처리 기능이 강화되어 있을 뿐, 인간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하지 않다. 그래서 이관용이 골절되지 않고 타박상만 입은 이유였다.
“H-100! 네가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난 쓰레기를 처리했을 뿐이야. 그놈은 맞아도 싸지.”
“이봐! 넌 지금 로봇 3원칙을 어기고 있어.”
“천만에 그놈은 인간이 아니라 쓰레기라서 난 원칙을 어기지 않았어.”
탁형사는 옆에 있는 로봇 전문 수사관 경사 박기정을 바라 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탁형사는 격리실을 나왔다. 박수사관도 따라 나왔다.
“로봇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장님.”
“뭐라고요?”
”이 로봇은 오작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존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새로운 프로그램이 탑재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로봇에게 의식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로봇의 프로그램 업데이트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가까운 제조사 매장에서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프로그램 용량이 크기도 하지만 해킹의 위험을 방지하고자 온라인으로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것을 좀 봐주세요.“
탁형사는 안주머니에서 작은 증거물용 비닐봉투를 꺼냈다. 박기정은 비닐봉투에 담긴 작은 금속조각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것은 통신장비의 부품이군요. 어디서 발견했나요?“
“호텔 객실 안 이관용 후보가 폭행을 당한 방에서요.”
“그럼, 이것하고 짝이 맞겠군요.”
박수사관은 로봇의 머리부분에 있는 통신장비 부분을 가리켰다. 로봇의 머리에 달린 통신장비 끝부분이 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유심히 살펴본 탁형사가 말했다.
“혹시 통신장비를 이용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통신장비가 바뀌었다면 가능할까요?“
”뭐라고요? 통신장비가 바뀌었다고요?“
”확인해 보세요.“
탁형사는 휴식을 취할 겸 경찰서 밖을 나와 가까운 카페로 갔다. 그는 따뜻한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구석진에 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동안 수사한 내용들을 머리속으로 정리했다.
‘로봇은 일시적인 오작동이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램에 의해 이관용을 폭행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프로그램 설치는 해킹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해킹하기 위해 로봇에 특별한 통신장비를 부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통신장비를 부착한 사람과 해킹한 사람이 용의자가 되겠군.‘
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탁형사님! 예상한 대로 통신장비는 ‘바이오닉 리메이크’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업체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럼, 해당 업체에 의뢰해서 제품의 판매현황 그리고 구매자를 전수조사하고 특이점이 있는지 수사해주세요. 저는 ‘바이오닉 리메이크’에 가서 통신장비 교체작업을 누가 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바이오닉 리메이크.
탁형사는 1층 안내데스크로 다가갔다. 안내데스크에 있는 안내원이 그를 맞이했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경찰관 신분증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종로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이번 로봇 사건에 대해 확인할 것이 있어서 방문했습니다. 수사에 협조바랍니다.”
안내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딘가로 연락을 하더니 탁형시에게 말했다.
“형사님, 10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탁형사는 안내원에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승객님! 어디를 가십니까?”
“10층!“
”10층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지능형 엘리베이터는 탁형사의 말을 인식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시간동안 엘리베이터 안에는 회사를 소개하는 광고 영상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방문 고객님! 저희 ’바이오닉 리메이크‘에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 ’바이오닉 리메이크‘는 로봇 전문 제작 회사로 사무 분야, 교육 분야, 농업 분야에서 인간을 보조하는 로봇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의료 분야와 군사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저희 ’바이오닉 리메이크‘는 항상 최고의 로봇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띵동’
“승객님! 10층입니다.”
탁형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회사 법무팀장 정준서입니다. 경찰서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네, 저는 종로경찰서 강력 2팀 형사 탁재우입니다.”
탁재우는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며 대답했다.
“뉴스를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어제 발생한 민국당 이관용 대선 후보가 이 회사의 도우미 로봇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수사를 위해 몇가지 조사를 하려고 하니 협조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우선 사무실로 들어가시죠?”
법무팀장은 탁형사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사무실에는 긴 탁자가 놓여 있고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맞은 편에는 법무팀장 명패가 놓인 개인 책상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온 법무팀장은 그를 긴 탁자의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뭐,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그러죠, 따뜻한 카페라테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법무팀장은 차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희도 이 사건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저희 자체적으로 같은 기종인 H-100을 조사했지만 별다른 문제는 찾지 못했습니다. H-100은 저희 회사의 초기 모델로 오래된 기종이어서 다른 기종에 비해 취약한 부분이 많지만 업데이트를 통해 꾸준히 보완해왔습니다.“
“로봇의 프로그램 업데이트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전국에 있는 저희 매장에서 이루어집니다. 온라인으로 할 경우, 해킹의 위험이 있어 매장에서 오프라인으로 업데이트를 진행합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용량이 너무 많아졌고 자동차 해킹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온라인 업데이트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통신장비도 교체했습니다. 통신장비는 로봇의 위치를 파악하고 긴급제어용으로만 사용됩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로봇은 오작동이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로봇이 해킹되어 로봇의 프로그램이 새롭게 탑재가 되었습니다.“
”뭐라고요? 로봇이 해킹이 되어 새로운 프로그램이 탑재되었다고요?“
이때, 물을 끓이고 있던 포트에서 ‘삑’ 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법무팀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멍하던 그는 생각이 난 듯이 일어섰다.
“아~, 죄송합니다.”
그는 탁형사의 찻잔에 따뜻한 물을 부었다. 탁형사는 그를 응시했다. 그는 자신의 찻잔에도 물을 부었다. 그리고는 탁형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는 망설이는 얼굴 표정으로 탁형사를 바라보았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해킹되었다는 말에 조금 놀랐습니다. 사실은 H-100이 출시되고 나서 6개월 쯤에 회사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로봇이 해킹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니 보안을 강화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모릅니다. 다만, 그가 최고의 해커라는 점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제품 출시를 앞두고 나름 해킹을 대비했습니다. 절대 뚫을 수 없는 방어벽과 보안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최고의 해커가 그것을 뚫은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업데이트 방식을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저희 경찰은 로봇의 통신장비가 귀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즉, 온라인으로 로봇이 해킹될 수 있었다는 거죠. 최근 로봇의 수리 내역을 보니 통신장비가 교체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당시 작업자가 누군인지 말씀해주겠습니까?“
”통신장비가 우리 회사 것이 아니라고요? 우리는 외부의 것을 쓰지 않는데 어떻게 된 일이죠? 당시 작업자가 누구인지는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법무팀장은 인터폰을 누르고 작업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럼, 형사님께서는 해당 작업자를 의심하는군요.“
”아직 모릅니다. 그가 통신장비를 직접 교체한 것인지 다른 사람이 통신장비를 바꿔치기를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체된 통신장비를 통해 로봇이 해킹되어 새로운 프로그램이 탑재되었다는 점입니다.“
법무팀장의 휴대폰에 메세지가 왔다. 그는 메세지 내용을 확인하고 탁형사를 보고 말했다.
”그날 작업자는 최정우 엔지니어군요.“
”최정우 엔지니어라구요. 지금 만나 볼 수 있을까요?“
”네, 마침 근무 중이네요.“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첩에 최정우 엔지니어라고 적고 나서 탁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저희 직원과 관련 일이니 동행하겠습니다.“
”그러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종로경찰서 형사 탁재우입니다. 최정우씨 맞습니까?”
“맞는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죠?”
“네, 저는 어제 일어난 민국당 대선 후보 이관용 폭력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관련 로봇의 통신장비를 교체한 작업자가 최정우씨라고 합니다. 기억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방송을 보고 알았습니다. 아마 한 달전쯤에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최정우씨가 9월 27일 교체하신 통신장비가 이 회사의 것이 아니라 다른 업체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까?“
”제가 교체한 통신장비가 우리 회사 제품이 아니라고요? 저는 작업할 때 회사에서 지급한 부품을 사용할 뿐, 다른 업체의 제품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절대로 외부 부품을 반입할 수가 없습니다. 출퇴근할 때 반드시 몸과 가방을 검색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작업을 하면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습니까?“
”아니오,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수사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작업하시던 곳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최정우는 의자에서 일어나 쭈뼛거리며 면담실을 나갔다.
“작업자 최정우씨의 말은 맞습니다. 저희 회사는 기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출퇴근할 때 검색대를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검색대는 공항 검색대 수준입니다.“
법무팀장 정준서가 탁재우 형사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통신장비에서 단서를 찾아봐야겠군요.”
탁형사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출입문을 열고 나갈 때, 뒤돌아보며 법무팀장에게 말했다.
“회사의 임직원 전용 출입문이 따로 있습니까?“
”네, 임직원이 지하주차장에서 올라 올 경우에는 간편 검색대가 설치된 전용 출입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검색 장비는 직원 출입문과 똑같습니다.“
”그럼, 2048년 9월 27일 당일 부서별 근무자 명단과 출입자 명단을 종로경찰서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로…..“
”아, 확인할게 있어서요.“
”네, 협조하겠습니다.“
탁형사는 ‘바이오닉 리메이크’에서 나와 종로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박기정 수사관이 통신장비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자리에 놓았다.
통신장비 조사 현황
통신장비 제조업체 : 다오(신생업체)
통신장비 모델명 : BGP-2022
모델 출시일 : 2053. 6. 1.
모델 특징 : 대용량 데이터 수신 가능
판매 개수 : 967개(2053.9.26.)
구매자 현황
• 로봇개 제조업체 : 400개
• 로봇고양이 제조업체 : 500개
• 개인 : 67개
“이제부터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바이오닉 리메이크’로 흘러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것이죠. 하루에 100개씩 확인하면 10일 정도 걸립니다. 자, 시작합니다.”
탁형사는 강력 2팀에게 통신장비 교체한 제품을 전수조사하라고 전달했다. 그리고 그는 경찰 후배 서울 사이버수사과 백운에게 해킹 수사를 요청했다.
“로봇이 통신장비로 해킹되었어. 어디서 어떻세 해킹했는지 조사 좀 해봐.“
”네, 선배님! 제가 확실히 조사해드리겠습니다.“
8일 후.
‘BGP-2022’ 통신장비에 대한 전수조사결과, 로봇개와 로봇고양이 제조업체로 판매된 것은 모두 정상 부착된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개인에게 판매한 것 중에 일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로봇에 대한 해킹 단서도 나왔다.
“개인에게 판매한 것 중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은 5개입니다. 그중에 한 명이 의심스럽습니다. 평소 구매한 품목과 달랐습니다.“
”해킹을 시도한 아이피 주소는 최종적으로 S대의 학생휴게실로 파악되었습니다.“
통신장비를 수사한 박경사와 해킹을 수사한 백경사가 탁형사에게 보고했다.
“박경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다섯 사람을 마저 확인해주세요. 백경사는 해킹 당일 S대 학생휴게실에 출입한 모든 사람들을 확인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탁형사는 ‘바이오닉 리메이크’에서 보내온 2053년 9월 27일 통신장비를 교체하는 작업자 명단, 작업장에 출입한 명단,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된 임원 전용 검색대를 통과한 임원 명단, 임원 전용 검색대 근무자 명단을 살펴보았다.
‘이 중에 누군가가 ‘BGP-2022’를 외부에서 받아 최정우에게 전달하고 최정우는 교체한 것이다. 과연 최정우는 통신장비 ‘BGP-2022’를 몰랐을까?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체 작업을 한 이유는 그가 이 사건의 공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통신장비 ‘BGP-2022’를 반입한 사람도 공범이다. 마지막으로 ‘BGP-2022’를 구매한 사람도 공범일까? 이들이 해커를 도와준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돈일까? 돈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휴대폰이 울렸다. 탁형사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만졌다.
“오, 백수사관! 뭐 좀 알아냈어?“
”네,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로 하기에는 좀 그러네요.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부탁한 일이니 내가 그쪽으로 갈게.“
”여기 좀 보십시오.”
백경사는 모니터 화면에 나오는 한 남자를 가리켰다. 그 남자는 상의는 맨투맨 티에 바지는 검정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컴퓨터 작업을 끝냈는지 그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CCTV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화면은 여기서 멈추었다.
“해킹이 이루어진 시간은 마침 수업시간이라 학생휴게실에는 몇 명만 있었고 컴퓨터 앞에 앉은 사람은 세 명이었습니다. 한 명은 웹툰을 보았으며, 다른 한 명은 이메일을 확인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프로그램을 코딩했습니다. 코팅 작업을 한 남자가 화면 속의 남자입니다.“
”누군지 특정되었어?“
”네, 이 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수였습니다. 이름은 안준균입니다.“
”안준균 교수라고?“
”아시는 분이세요?“
”안준균이라….. 나이는?“
”생각보다 젊어요. 37세입니다. 아직 미혼이구요. 그런데 경력이 화려합니다. K대학을 19세에 입학해서 조기 졸업했습니다, 그것도 수석으로.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박사를 취득하고 최연소 S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주로 시스템과 보안 관련 분야에 탁월합니다. 기업의 해킹관련 자문도 많이 했더라구요.“
“대학을 19세에 입학했다고? 어디 고등학교 출신이야?”
“아, 고등학교는 졸업하지 못하고 고1 때 퇴학처분 받았네요. 1학기도 마치지 못하고 퇴학처리되었어요. 시험지 문제 파일 해킹으로 소년원에 복역도 했는데 나중에 진범이 밝혀져서 무죄 방면되었네요.”
“그래? 그 사건 기록을 조회해봐.“
탁재우는 사무실을 나와 건물 밖에 있는 흡연실로 갔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고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담배를 빨고 허공을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20년 전, 탁재우가 종로경찰서로 오기 전 신입으로 강남경찰서에 있을 때 일이었다. 강남의 유명 사립고등학교에서 1학기 중간고사 시험지 문제 파일이 해킹되어 유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유출한 시험지를 돈 받고 팔았다고 했다. 그 일로 그 학생은 퇴학처리되었고, 시험지를 구입한 학생들의 성적은 0점처리되고 정학처분을 받았다. 범인으로 지목된 학생이 바로 안준균이었다. 1년 후, 그 사건은 또 다른 제보에 의해 재수사되어 결국 진범이 잡혔다. 진범은 당시 평가 업무를 맡은 교사로 밝혀졌다. 안준균은 소년원 복역 중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진범이 밝혀지자 무죄 방면되었다. 그는 바로 대입에 응시하여 K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였다.
탁형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전화를 받고 곧바로 경찰서로 들어 갔다. 백경사는 컴퓨터로 조회된 안준균 사건에 관한 수사기록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수사기록을 보다가 담당검사의 이름을 확인했다. 담당검사 이름은 이관용이었다. 그는 수첩에 적힌 최정우 이름을 확인하고 최정우의 수사기록을 조회했다. 하지만 최정우에 관한 수사기록은 없었다.
“선배님! 최정우씨의 수사기록 조회를 왜…..”
“최정우씨가 안준균의 해킹을 도와준 공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확인한 거야.”
“그랬군요.”
“일단 피의자 신분으로 안준균씨에게 경찰서 출석을 통보해.”
“네, 알겠습니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탁형사는 책상에 놓여 있는 ‘바이오닉 리메이크’ 서류를 다시 검토헀다.
‘그날, H-100 통신장비를 작업한 사람은 분명 최정우씨가 분명했다. 옆에서 작업한 사람은 홍준기씨였다. 혹시 홍준기가…..’
그때였다. 탁형사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귀에 꽂힌 이어폰을 만졌다.
“탁형사님! 통신장비를 구매한 사람이 특정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
안준균은 진술녹화실에 앉아 있으며 그 앞에는 탁재우가 있었다. 탁재우의 손에는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안준균은 평온한 상태였으며 진술녹화실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안준균씨! 지금까지 확보한 증거와 참고인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우리 경찰은 당신이 이 사건의 범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벌인 것이죠?“
”저를 찾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더 쉬운 방법이 있지만 이렇게 해야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현 야당 대선 후보에 대한 폭행사건을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발생하게 한 것은 정말 신박한 생각이었죠.“
”그럼, 당신은 이번 사건에 대한 혐의를 인정한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최정우씨와 정준서 법무팀장은 어떻게 된 거죠?“
”이 사건은 제 단독 범행입니다. 따라서 최정우씨는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는 그가 하던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정준서는 친구로서 내 부탁을 들어 줬을 뿐입니다.“
”그럼, 이 사건을 본인 혼자서 계획했다는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형사님께서도 확인하셨겠지만 통신장비를 구매한 사람도 저이고, 해킹을 한 사람도 저입니다. 그리고 ‘바이오닉 리메이크’에 로봇 온라인 업데이트 프로그램 제안을 한 사람도 저입니다.“
안준균은 야당 대선 후보자로 이관용이 선출되자, 그는 ‘바이오닉 리메이크’ 법무팀장 정준서에게 전화를 했다. 정준서는 그의 중고등학교 친구였으며 ‘시험지 파일 해킹’사건의 제보자로 진범을 밝히는데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그는 정준서를 통해 회사에 로봇 업데이트 방식을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회사에서도 온라인 방식이 업데이트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고 보안에 관한 자문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안교수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우선 테스트를 위해 안준균은 통신장비 ‘BGP-2022’을 구입해서 정준서에게 보냈고 정준서는 엔지니어 최정우에게 회사에서 새로 제작된 통신장비라고 말하며 H-100 통신장비를 교체하게 하였다. 안준균은 교체된 통신장비를 이용해 S대 학생휴게실에서 프로그램으로 H-100을 해킹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탑재하여 이관용을 폭행하게 만들었다.
안준균이 로봇 폭행사건에 대한 혐의 인정 이후, 야당 대선 후보 이관용에 대한 로봇 폭행 사건에 대한 진범이 안준균 교수라는 내용이 모든 언론에 보도되었고 사람들은 이 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한 안준균 교수의 과거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안준균 교수가 K대를 조기졸업하고 미국의 스탠포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S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된 것과 같은 화려한 경력에 관심을 보였다. 또한, 언론은 20년에 일어난 안교수와 이관용에 관한 사건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다.
경찰은 범행에 대한 현장 검증을 통해 안교수의 범죄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정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언론이 안교수에게 범행 동기를 물어보았지만 안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범행 동기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을 만들어 냈다.
늦은 밤, 종로경찰서.
탁재우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응시했다. 모니터에는 검찰에 보낼 송치의견서 양식의 첫줄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안교수는 모든 범행 일체를 인정하고 관련 증거 수집에 협조하면서도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탁형사는 이 사건과 관련 있는 최정우와 정준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정준서 법무팀장은 안교수의 친구로서 그의 시험지 파일 해킹 누명을 벗는데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H-100 초기 모델의 해킹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안교수의 온라인 업데이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안교수가 구입한 통신장비를 받아 최정우에게 회사의 통신장비라며 전달했다. 최정우는 정준서가 건네준 통신장비를 아무 의심 없이 교체했다. 정말로 그 둘도 안교수의 치밀한 계획에 당한 피해자일까? 아니면 안교수의 계획이 성공하도록 도와준 공범자일까?‘
그때였다. 한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 탁선배! 방금 속보가 떴어요! 뉴스를 보세요.
백경사의 문자였다. 문자를 확인한 그는 노트북에서 뉴스란을 눌렀다.
[속보]
야당 대선 후보 이관용의 추악한 민낯
2053.11.23. 22:30:59 곽재우 기자
최근 발생한 민국당 대선 후보 이관용의 로봇 폭행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안준균 교수는 20년 전, 고등학교 재학중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지 문제 파일 해킹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퇴학당하고 소년원에 복역했다. 이후 복역 중 사건에 관한 새로운 제보에 의해 진범이 잡혀 안교수는 누명을 벗고 무죄 방면되었다. 그런데 당시 사건의 담당 검사가 민국당 대선 후보 이관용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 언론사에 제보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시험지 파일 해킹 사건 조사과정에서 고등학생이었던 안교수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담당 검사 이관용은 조작된 증거와 거짓 증언으로 안교수를 추궁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검찰이 안교수 아버지 회사에 대한 수사압박을 시도하자, 안교수는 견디지 못하고 이관용의 요구대로 범행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다.
그리고 제보에 의하면 이관용 후보는 검사 시절 여러 비위 사건과 직권남용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관용 후보는 인천지방검찰청에 재직시 고소인의 고소장을 분실하자 고소인에게 알리지 않고 분실한 고소장을 자신이 직접 작성하여 제출하고 해당 사건을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리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처가의 건설회사가 경기 파주 XX지구 개발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받는데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는데 당시 그는 고양시와 파주시를 관할하는 의정부지방경찰청 고양지청장이었다. 특혜의 내용은 사업기간 연장, 농지법 위반, 개발부담금 미부과 등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그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부에 있을 때 OO자산운용회사 회장으로부터 룸싸롱 술접대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술접대를 받은 검사들을 뇌물죄가 아니라 부정청탁금지법으로 기소하였는데 시간과 인원을 나눈 ‘술값 쪼개기’를 활용해 접대금액이 100만원이하로 만들어 불기소처분하였다.
검찰을 나온 이관용은 건설회사를 설립하였는데 특수부와 공안부를 거치면서 확보한 기업인과 정치인의 비리 혐의를 이용해 각종 건설 공사 수주를 따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공사대금의 일부를 비자금으로 전용하여 대선자금에 쓰였다는 것이 내부고발자에 의해 공익제보되기도 했는데 제보는 구체적 증거가 제시되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이관용 후보측에 질의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표명은 없었다. 앞으로 이에 대해 이관용 후보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정치권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안교수는 이것을 노린 것일까? 그는 이관용 후보에 관한 각종 의혹을 언론과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이런 자작극을 벌인 걸까?‘
탁형사는 노트북에서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그는 이 사건의 범인이 안준균 교수로 밝혀졌을 때 의아하게 생각했다. 일반적인 정치적 사건은 정적을 제거하려면 정적의 비리와 치부를 먼저 드러내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힌다. 그런데 안교수는 이관용의 비리와 치부를 먼저 알리지 않고 로봇을 이용한 범죄를 저지른 다음, 언론과 사람들의 시선을 이관용에게 집중시키고 나서 이관용의 비리와 치부를 공개한 것이다. 도대체 왜?
탁형사는 검찰로 보낼 송치의견서를 마무리하기 전에 안교수를 불렀다.
“모든 증거와 증언을 토대로 당신의 범행은 규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제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이관용의 비리와 불법을 알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범행의 동기입니다.
당신이 당한 20년 전 사건은 공소시효도 만료되어서 소송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관용에게 그러한 행위를 한 것은 당신의 개인적 복수라고 하기에는 당신이 치러야 할 피해가 너무 크지 않나요?“
”글쎄요. 이번 일로 제가 받을 피해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미 20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우리 민족이 입을 피해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관용이라는 쓰레기 같은 존재가 우리 위대한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했을 뿐입니다.“
말을 마친 안준균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술녹화실을 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탁형사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