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친애하고,친애하는>, 현대문학 핀시리즈11
작품해설의 첫 시작이 이러하다.
<엄마에게. 이 네 글자를 적은 뒤 다음에 쓸 말을 구르느라 머뭇거려본 이들을 위한 소설이다.>
음, 절반 정도는 수긍.
나는 아직은 엄마에게, 로 시작하는 글을 쓸 생각이 없다. 미움과 낙담과 체념과 수용과 받아들임, 그리고 이제는 측은함과 안타까움도 갖게되었지만 아직 글을 쓸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더 젊었을 때 엄마를 여의었다. 외할머니가 사십에 낳은 막내딸이었던 엄마는 마흔줄에 자기 엄마를 위암으로 잃었다. 외할머니의 죽음은 내게 별다른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 가끔씩 한밤중에 들리던 소리는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며칠 사이를 두고 잊을 만하면 들리던, 엄마엄마 부르며 서럽게 울던 울음소리와 가만가만 달래는 웅얼거리는 목소리. 굳이 거실까지 나가지 않아도 내방에 누워서도 들리던 소리. 아, 엄마는 이제 영영 고아가 되었구나, 알게 하던 그 안방의 소리들.
엄마와 심정적 화해를 하게 된 것은 나 또한 엄마가 되면서였다. 아이와 함께하며 나 자신에게 가끔 놀라는 지점은 내가 ‘엄마’라는 정체성을 순순히 수긍할 때, 아니 내 짐작보다 더 많이 ‘엄마’임을 자각할 때이다. 나는 내가 정말 이렇게 ‘엄마’라고 확고히 자기를 규정지을 줄은 몰랐다.
‘엄마’는 과연 뭘까?
아직은 내 속에서 갈무리되거나 정돈되지 않은 그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