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산 종점(終點)

by 문예반장

군청소재지까지 오가는 버스는 하루 두 편 있었다. 그나마 눈비 몰아친 날엔 길이 막혀 오지도 않았다. 아치형 광산 정문이 길을 가로막은 종점은 도착 행렬의 끝이자 출발 여정의 시작이었다. 막다른 골목처럼 꽉 막힌 곳, 낮은 산자락이 회색빛 광산 뒤에 서 있고 정문을 지나 오른쪽 공터 한쪽에서 쇠갈고리로 묶인 짐칸 서너 량이 폭 좁은 철로를 달려 광부들을 굴 앞까지 실어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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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들려오는 갱도 매몰 사고가 광산촌 아버지들의 목숨을 시시각각 위협했다. 뿌연 횟가루 뒤섞인 탁한 공기가 그들 폐 속을 제멋대로 넘나드는 열악한 작업환경 탓으로 광산과 종점 모두 그들에겐 더 갈 데 없는 세상 끝이었다. 거기 어른들 십중팔구는, 할 수만 있다면 언제라도, 도회지, 그것도 서울이라는 꿈의 세계로 떠날 궁리를 허구한 날 신념처럼 달고 살았다. 아버지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매달 꼬박꼬박 지급되는 월급 덕에 종점 앞은 막장 촌구석답지 않게 늘 활기가 넘쳤다. 병원과 약국, 푸줏간, 어물전, 잡화상점, 천막극장도 있었다. 교회와 다방, 선술집과 음식점, 철물점 등, 그 생동감의 중심이었을 광산 정문에서 길 건너 대각선 방향 양철지붕 잡화점이 자리한 버스 종점을 거기 사람들은 일본식 표기인 차부(車部)라고 불렀다.

구봉산 골짝 뒤쪽 외딴 마을 꼬마들이 떼 지어 차부 앞으로 놀러 내려왔던 토요일 오후, 고물 버스 한 대가 부릉거리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네 대장 형이 버스 꽁무니에서 쭈뼛대다 바퀴 자국 깊게 파인 잔설 위에서 뭔가를 주워 광산 옆 샛길로 튀었다. 사방으로 흩어져 얼쩡거리던 애들이 영문을 모르면서 쫓아가고 빵집 앞을 하릴없이 서성거리던 우리 서너 명도 얼떨결에 뒤따랐다.

40원이 더 됐다. 차장 누나가 ‘오라이’를 외치며 버스 문짝을 닫는 순간 실수로 떨어뜨린 쪼글쪼글한 지폐 앞에서 다들 입을 떡 벌리고 감탄사만 연발했다. 그 돈을 뭐에 쓸 것인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대장만 쳐다봤다. 형이 두세 명을 골라 차부로 내려보냈고 나머지는 야산 중턱 큰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시간은 더디 갔고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쌍둥이네 찐빵을 기다렸다. 눈치 없는 새들만 시끄럽게 울어댔다.

내 몫의 빵 하나를 주머니에 숨겨 썰매 가진 친구를 찾아갔다. 찐빵과 나를 번갈아 몇 번 쳐다보던 그가 썰매를 내놓았다. 길게 잘린 벼 밑동이 얼어붙은 논바닥 위로 솟아올랐다. 썰매가 엎어져서 얼음판 위에 나동그라지고 손가락이 얼얼해도 저녁나절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막대질을 멈추지 않았다.

밤새 쌓인 눈이 귀밑까지 올라와 부엌문을 열 수도 없던 깜깜한 새벽, 나는 막무가내로 아버지를 졸랐다. ‘며가지가 부러져도’ 남한테 아쉬운 소리 따위는 하지 않을 분에게, 철사 아닌 쇠날 썰매를 갖게 해달라고 징징거렸다. 꼭두새벽부터 밥상머리 재수 없다는 엄마의 지청구는 한 귀로 흘렸다. 아버지가 잘하는 영어 한마디, 오케이가 긴 침묵 끝에 아주 짧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방학이 시작된 날 아버지는 작지만 야무진 썰매를 작업복 윗도리에서 꺼내놨다. 부럽게 바라보는 친구들에게 선심 쓰듯 태워줬으며 얼음이 녹은 날이면 등짝에 둘러메고 온 동네를 보란 듯이 어슬렁거렸다. 어느 틈엔가 저만치서 봄날이 꼬물거렸다.

아랫마을 친구가 방학 중에 이사했다. 말없이 가버려 섭섭했어도 서울로 갔다는 사실은 부러웠다. 금(金)이 안 나와 광산이 문을 닫는다고 이집 저집 이사 가는 일이 광산촌 전체로 전염병처럼 번졌다. 창경원 호랑이와 길거리 전차, 고운 피부 깍쟁이들 그리고 비틀어 주면 물이 펑펑 쏟아진다는 수도꼭지 이야기를 서울에서 일하다 명절 쇠러 내려온 누나와 형들이 거품 물고 떠들 때마다 귀가 쫑긋했다. 우리 집도 마침내 이사하게 되었다. 밤새도록 심지어 사나흘씩 굴속에 갇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걱정할 필요가 더는 없을 터였다.

이삿짐을 싸면서 알았다. 썰매가 없어졌다. 뒤지고 물어도 찾지 못했는데 서울로 간다는 사실만 신나서 촌 동네 장난감쯤이야 쉬 잊어버릴 수 있었다. 서울 가면 나도 스케이트를 탈 것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떠벌렸다. 꾀죄죄한 광산촌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동네였다. 집으로 오는 길에서 배가 고파 따먹던 아카시아도 산딸기도 손대지 않았다. 점심시간 내내 찌그러진 공이나 죽도록 쫓아다니다 찬물 한 바가지 들이키고 책상 앞에서 병든 병아리처럼 꾸벅대는 것도 끝이었다. 서울만 가면 모든 게 달라진다고 믿었다. 내 앞에 펼쳐질 세상이 어떨 모습일지도 모르면서 서울내기 다된 듯 촌티를 지우려고 안달이 났다.

사학년 여름방학, 새벽부터 푹푹 찌는 날 우리 식구 일곱 명은 똥통버스에 올라 서울로 출발했다. 회색빛 광산 자락, 얼굴 가득 버짐 핀 코흘리개들, 찐빵과 썰매 시냇가 송사리와 개구리 들판의 꽃과 풀... 그 모든 것을 구겨 실은 고물차가 시커먼 연기를 내뿜었다. 흙먼지 풀풀 날리며 술주정뱅이 옆집 아저씨처럼 비틀거린다. 차창 뒤로 종점이 천천히 멀어지면서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날 이후 오랫동안 종점은 세상의 끝으로만 남아있었으나 사십 년 넘는 긴 세월은 나를 끊임없이 일깨웠다. 완벽하게 행복한 삶도 유별나게 불행한 인생도 없다고, 죽을 때 가져갈 것은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은 꿈과 사랑뿐이라고. 광산촌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팽개치고 떠나왔다는 죄책감 혹은 유년의 시린 기억을 돌아보기 싫다는 비겁함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나는 묻어둔 그리움을 애써 외면하며 종점 찾아가기를 한사코 망설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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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 늦게 쏟기 시작한 함박눈은 동틀 무렵 멈췄다. 눈 덮인 구봉산이 비낀 햇살 받아 눈부시다. 나를 보낸 적 없는 종점을 휘 둘러본다. 사람이 없다. 건물도 길도 그리고 길을 막아선 광산 정문도 흔적만 어렴풋하다. 벌겋게 녹슨 양철지붕 건물이 차부 자리일 것이다. 그 뒤로 우뚝 선 교회당 종탑이 저 홀로 외롭다. 조금만 일찍 올 것을. 인적 드문 폐광 앞 종점 어딘가에서 아버지가, 말수 적던 그가 꺼칠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꾹 찔러넣은 채 감쪽같이 사라진 칼날 썰매를 윗도리 품 안에 넣고서 징징거리던 꼬마를 기다렸을 거라는 아둔함을 떨치지 못한다. 그래도 떠날 시간, 버튼을 누른다. 시동 걸리는 소리가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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