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by 문예반장

매실나무 아래서 닭 몇 마리가 바지런히 땅을 판다. 자기 주인집 넓은 공간을 두고 우리 집으로 마실 온다. 두 발로 바닥을 헤쳐 부리 놀리는 품새가 무던하다. 가끔은 암탉 혼자 뜰 안을 서성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곳이 편안해서일 거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그들이 땅을 파갈 것도 아니고 예쁘게 보면 그만인데 언제부터인지 내 맘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다 맞닥뜨려 반가워서 가까이 갈라치면 모가지를 꼿꼿이 치켜들고 털을 바싹 곤두세운다. 두세 걸음 내디뎌 겁을 줘도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사람 민망하게 고개를 돌려버린다. 은근히 괘씸하다.

평소와 달리 그날은 부엌 창 뒤에서 마주친 암탉이 뒤돌아서 뛰어가는 것이었다. 이제야 나를 텃밭 주인 대접해주나 싶어 흐뭇한 것도 잠깐, 매화나무 아래 멈춰서서 좌우로 느릿느릿 머리를 움직이며 나를 힐끔거린다. 놀리나? 어릴 적 고무줄 끊고 달아나던 꼬마들 심술처럼 얄밉다. 나그네가 주인 행세하는 꼴 아닌가. 밥 먹을 때 되면 주인아주머니가 하순아, 검돌아, 불러 모이 주며 예뻐하니까 자기 스스로 대단한 존재라 착각할 수는 있겠다. 한 가지 집히는 것이 있기는 하다.

장모님 늦나이에 태어난 아내는 태생적으로 체질이 약한 편이고 아침잠이 많다. 퇴직 이후 살림살이에 도움 못 줬던 미안함도 줄여볼 겸 군 시절 익숙해진 서양식 조찬을 내가 차리기 시작한 지 몇 해가 되었다. 설거지도 자연스럽게 내 몫으로 떨어졌다. 하루에 서너 번 우리 집 뒤뜰로 마실 오는 닭들이 설마 아침 준비와 그릇 닦기로 바쁜 나를 오랫동안 보아왔다고 우습게 여기기야 할까. 얼굴 붉힐 일 없어야 할 일개 미물 앞에서 붉으락푸르락 성질부리는 꼬락서니하고는.

새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와 헤맨다. 부엌 창 앞에서 허둥대던 그를 잡고 보니 새가 아니라 포동포동한 암탉이다. 조그만 볏이 흰 털 덕분에 더욱 빨개 보인다. 계속 퍼덕이길래 거실에 놔줬다. 제집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를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멀뚱멀뚱 실내를 활보하며 누런 똥을 퍼지른다. 아무리 봐도 달아날 기미라고는 없다, 황당한 사실은 이게 꿈이라는 것을 꿈속에서 내가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서너 달 전 우리 작은 텃밭과 맞닿은 뒷집 천여 평 땅의 주인 내외가 심심하면 다퉜다. 밭 한쪽 외진 곳에서 김을 매고 있는 아저씨를 찾아갔다. 볼멘소리부터 대뜸 터져 나왔다.

“풀 한 포기 뽑지 않는 마누라가 잘난 짐승은 밭에 풀어 키우겠대요. 쟤들도 그럴 권리가 있다나. 심어 뭐 해! 저거 봐, 저놈들이 죄다 처먹고 밟아버려 남아나는 게 없거든.”

눈을 돌려 바라봤다. 토끼, 강아지, 고양이와 거위까지 떼 지어 몰려다닌다. 새끼들을 줄 세워 우리 집 마당까지 위풍당당하게 행차하던 오리 식구와 집 뒤 밭뙈기를 자기 집인 양 드나들던 암수 닭 두 마리도 무리 속에 섞여 있었다. 서로 경계하는 기색도 없이.


잠을 깨려고 기를 썼다. 겨우 눈을 뜨고는 얼마 전 기억을 더듬는다. 매실나무 곁가지를 치는데 뒷집 아줌마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하순이가 드문드문 놓던 알을 그즈음 통 구경 못 했다고, 온 동네를 싸돌아다니더니 바람이라도 난 것 아니냐며 구시렁거렸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검정 수탉 곁을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그 암탉은 하얀 털이 눈부셨다. 그러면 걔가 걔였나, 짚이는 것이 있어 기억을 떠올리며 밖으로 나선다. 새벽달이 훤하다.


새벽 순찰 겸 깨금발로 걸어 뒤뜰로 향한다. 삼사 년 전 하수 공사 때 여유분으로 사뒀던 T자 하수관 두 개가 놓여있다. 그 안에 보이는 하얀 물체, 꼬끼오~~~, 코앞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와 홰치는 모습에 내가 움찔한다. 어쩌다 이 새벽에 하순이가 우리 집 뒤뜰에 왔다가 허겁지겁 뒤뚱거리며 달아나는 걸까. 플래시를 켰다. 제 똥으로 분칠한 달걀 몇 개, 그중 깨진 하나에서 흐르는 노른자가, 물어다 놓은 잔가지 틈새로 스며든다. 득달같이 달려온 아줌마가 이번에는 하수관을 통째로 가져가고 싶다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 말이 나에게는 부탁 아닌 요구로 들려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그러시라 했다.

그런 후에도 새벽마다 부엌 창 밑에서 부석거리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궁금함을 꾹꾹 눌러 참기 며칠, 다시 뒤뜰로 가봤더니 남은 하수관 안에 알 몇 개가 또 가지런히 놓여있다. 우리 집 텃밭의 하수관을 제집으로 아는 게지. 내 잘못은 아니나 꺼림칙했다. 자기 좋을 대로 하고 싶은 습성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양 일반이다. 꼭두새벽부터 문자 연락받고 찾아온 아줌마가 까닭 없이 머쓱한 나와 죄없이 누워있는 T자 관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전격적이면서 단호한 통보였다. 윗동네 사는 사나운 누렁이가 호시탐탐 주변을 어슬렁거려 우리 안에 가축들을 가둘 것이며 하순이와 검돌이도 이젠 닭장에서 안전하게 살게 되었다고. 가고 싶은 곳 맘대로 돌아다니던 그들이 좁은 공간에서 답답하지는 않을지. 요래 일이 꼬이기 전에 얘들더러 우리 집으로 입양 오라고 꼬드겨나 볼걸. 툴툴거리는 내 속을 꿰뚫어 봤을까, 아줌마가 한 방 날린다. 사정없이...

“얘들이 양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 모이만 딥다 축내면서 지 할 일을 안 해요.”


매화나무 아래가 잠잠하다. 부엌 창 밑 T자 관도 텅 빈 지 오래다. 두 곳을 오락가락하던 암탉의 속내를 이제야 헤아릴만한데 공작부인처럼 도도하게 나를 째려보던 그녀가 사라졌다. 뒤뜰 하수관에 둥지를 틀어 알을 낳은 하순이가 새벽 어스름 속으로 질러대던 환희의 외침을 더는 들을 수 없다. 흰 닭이 내지른 꿈속의 황금 똥을 길몽이라 여겨 사둔 복권은 꽝이었다. 우리 안에 갇혔어도 나보다 훨씬 더 팔자 늘어진 그들더러 미안하다고 불쌍하다고 헛소리도 해댔다. 자격지심이었나, 꿈에 봤던 손안의 새는 닭이 아니라 어쩌면 ‘나’였을 거라는 고민이 깊어간다. 닭이 모이 쪼던 자리에 매화꽃이 흩날린다. 차곡차곡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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