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은 대개 예고 없이 다가온다. 신문과 TV 뉴스에서 삼청동 광화문과 여의도의 높은 분들이, 걱정할 필요 없다고 사람들 다독거리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2월 말 시립도서관에서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무기한 휴관한다는 알림 문자를 받고서도 이 또한 잠깐이려니, 조만간 열리려니 넘어갔다. 사스와 흑사병도 견뎌낸 인간이 전염력 강하지만 감기보다 좀 센 독감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이놈을 얕잡아봤다. 서너 주, 길어도 두세 달이면 말끔히 끝날 일이라고 생각한 나는 정상이 될 때까지 당분간 머물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2층 80여 평 공간이 갈 곳 모르는 내 앞에 때맞춰 나타났다. 시 외곽에 들어선 별 다방은 걸어 다니기 편하고 사람도 적다. 오전 8시 인디록 풍의 “세네카(Seneca)”가 널찍한 실내에 잔잔하게 깔린다. 코로나더러인지 나에게인지 노보 아모르(Novo Amor)라는 이름의 가수가 너는 누구냐(Who are you?)고 묻는다. 처음엔 전염병을 피해 들어왔다고 얼떨결에 대답했다. 소프라노만큼이나 높은 음역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가 가냘프다. ‘새로운 사랑’이라는 그룹명으로 봐서 여성 보컬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가끔 아메리카노 대신 값비싼 음료를 고른다. 가게 문을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지어 경품을 받으려고 기다린다. 그 방법을 점장 도나(Dona)가 알려주고 나서부터다. 새콤달콤한 프라푸치노, 발사믹 식초의 새콤함을 연상시키는 영국 남자의 섹시한 목소리와 유행병 감염 위험을 줄여줄 나만의 비밀 아지트를 찾았다는 근거 없는 확신에 빠져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얼굴 없는 바이러스가 날로 기세를 확장하며 세상을 거침없이 짓밟는 사이 이곳은 몇몇 카공족의 영역으로 서서히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잡다한 일들을 끄적거리면서 스무 살 적으로 잠시 돌아간다.
대현동 여대 앞 정문에서 큰길로 빠져나가는 완만한 경사길 왼편 파리다방도 2층이었다. ‘파리다방’인데 다들 ‘빠리다방’이라 했다. DJ 박스 뒤쪽 벽을 차곡차곡 채운 레코드가 그곳의 자랑이었다.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으로 조심조심 올라갈 때부터 최신 팝송과 칸 소네, 클래식 그리고 샹송 등 낯선 음악이 흘러나왔다. 매주 월요일 오후 우리 예닐곱은 진자줏빛 카펫 위 좁은 탁자에서 최인훈의 <광장>과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어설프게 입에 올렸다. 그 와중에 한 여학생은 레지 눈치를 살펴 가며 쓰디쓴 커피와 밖에서 사 온 군고구마를 곁들여 먹었다. 레코드판이 앞뒤를 돌아 ‘Don’t forget to remember‘가 또 들려 올쯤에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나를 기억해 달라고? 떠난 사람 잊어야지, 미련 따위 던져버려! 그런 상황이 내게도 닥쳐올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안중에 없던 시절이었다.
전염병 소식으로 도배된 낮과 밤이 차곡차곡 쌓여 넉 달 넘는 시간이 구름처럼 흩어졌다. 현미경을 통해서나 그 존재가 드러나는 하찮은 미물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 현실이 참담했다. 만물의 영장이라던 인간의 실체가 고작 그 정도였다는 사실도 난감했다. 다시 볼 기약 없는 이별로 아렸던 오래전 그날처럼 무기력했다. 그 틈에 봄날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여태껏 내 곁을 스쳐 지난 그 어느 삼사월이 요렇게 인정머리 없었나. 가버린 사랑도 이만큼 매정하지는 않았는데, 때맞춰 오가는 계절이 뭔 죄일까만 이제 장마까지 몰려온다. 천 조각으로 얼굴을 가린 인간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빛마저 애써 외면한다. 깡패나 마주친 듯 서로서로 피해간다. 그리움도, 만날 수 있다면 생기지 않을 한 줌 감정 덩어리에 불과한 허상인가.
한동안 적막했던 별 다방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팬데믹은 확장 중인데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점심시간부터 빈자리가 없다. 답답함을 참지 못한 수많은 ‘우리’가 살금살금 바깥으로 뛰쳐나온다. 사람들 틈에서 서로서로 부대끼며 살아야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존재가 사람이다. 혼돈의 와중에서 그들이 필요했던 건 눈 맞추고 두 손 맞잡으며, 생각을 얘기하고 귀를 쫑긋하고, 목청껏 떠들어도 문제 되지 않는 평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일상의 소소한 자유와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낀다. 이유가 뭐든 누군가 그리운 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 수그러들었다 확장하기를 반복하는 고약한 상황의 끝이 언제쯤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일 년, 삼 년, 아니면 그 이상?
짧은 문자가 도착했다. ‘확진 환자 접촉 1인, 드라이빙 쓰루 매장 6분 방문’이라는 알림이 벅적대던 매장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다행이다. 아침부터 컴퓨터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별다방 구석에 눌러앉아 낡은 기억의 창고로부터 희미해져 가는 얼굴을 애써 들춰보던 설렘의 시간을 지속하게 되어 한숨 돌렸다는 말이다.
삼 년 전 겨울, 신화 속 인어 공주가 발칙한 자세로 인간을 내려다보는 별 다방에 멋쩍게 첫발을 내딛던 날, 빛바랜 흑백 사진 속 옛사랑을 만난 것처럼 어색했었다. 언제였는지조차 흐릿한 수십 년 전 어느 봄날, 타성에 빠진 사랑은 아니었으나 현실의 벽은 높았고 난 쫓기듯 피하듯 그녀로부터 멀어졌다. 떠날 사랑 떠나고 운명인 듯 우연처럼 가끔은 예상하지 못했던 인연이 불현듯 찾아오는 삶, 누가 떠나고 남겨진 사람이 누구든, 오래도록 쓰라렸던 작별의 순간을 피하고픈 간절함은 그날 이후 불도장처럼 내 안 깊은 곳에 새겨졌다.
위층 가는 계단 앞, 귀에 밴 아모르의 음성이 오늘따라 찡하다. 흐느적대는 목소리가 나를 향한 외침은 아니련만 하릴없이 목이 멘다. ‘당신 누구냐(Who are you)’고 또 묻고는 ‘아주 멀리(far, far away)’라고 노래를 이어간다. 남쪽 바다 어딘가를 미적미적 서성이다 느지막이 도착한 장맛비가 유리창을 툭툭 친다. 빗줄기에 실려 온 그녀일까. 창밖이 뿌예졌다. 보도블록 위로 떨어진 빗방울이 세차게 튀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