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의 새

by 문예반장

새 한 마리가 집 안에 들어왔다. 부엌 창에서 푸덕거린다. 날갯짓이 애달프다. 잡고 보니 손 안의 새는 새가 아니다. 흰 털 덕분에 짧은 볏이 더 빨갛게 돋보이는 포동포동한 암탉을 거실 안에 놓아준다. 제 집인 양 달아날 기미도 없이 집안을 휘저으며 누런 똥을 마룻바닥에 퍼지른다. 꿈을 꾸는 줄 꿈속의 내가 안다. 잠을 깨려고 기를 쓰다 겨우 눈을 뜨고는 얼마 전 기억을 더듬는다. 매실 수 곁가지를 쳐주고 있는데 뒷집 아줌마가 다가왔다. 자기네 하순이가 드문드문 놓던 알을 그 즈음 통 구경 못했다며, 온 동네를 싸돌아다니더니 바람이라도 난 것 같다고 구시렁거렸다. 늦가을까지 검정 수탉 곁을 떨어지지 않던 암탉도 하얀 털이 눈부셨다. 걔가 걔였나, 짚이는 것이 있어 밖으로 나선다. 새벽달이 훤하다.

집 뒤 텃밭과 맞닿은 천여 평 넒은 땅의 주인 내외가 그 무렵 자주 다투었다. 아줌마 몰래 밭 한쪽에서 김을 매는 아저씨를 찾아갔다. 볼멘소리부터 대뜸 터져 나온다.

“풀 한 포기 뽑지 않는 마누라가 잘난 짐승은 밭에 풀어 키우겠대요. 쟤들도 그럴 권리가 있다나. 심어 뭐 해! 저거 봐, 쟤들이 죄다 처먹고 밟아버려 남아나는 게 없거든.”

눈을 돌려 바라보니 토끼, 강아지, 고양이와 거위까지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새끼들 줄 세워 우리 집 마당까지 행차하던 오리 식구와 집 뒤 밭뙈기를 제 집인 양 드나들던 닭 두 마리도 무리 속에 섞여있다.

매실나무 아래서 암수 닭 한 쌍이 부지런히 땅을 쪼아댄다. 자기 주인집 훤한 공간을 굳이 마다하고 꼭 이리로 마실 와서 논다. 두 발로 바닥을 헤치며 부리를 놀리는 품새가 무던하다. 가끔 암탉 혼자 뜰 안을 서성거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편안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내 땅을 파갈 것도 아니고 예쁘게 봐주면 그만인데 어느 때부터인지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보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다 맞닥뜨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설라치면 사람 무안하게시리 모가지를 꼿꼿이 치켜들고 털을 바싹 곤두세운다. 두세 걸음 내딛어 겁을 줘봤자 사람 민망하게 고개를 홱 돌려 외면한다.

평소와 달리 그날 새벽 부엌 창 밑에서 마주친 암탉은 매화나무 쪽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드디어 나를 텃밭 주인 취급해주나 싶어 흐뭇해지려는 순간, 나무 아래 멈춰 좌우로 느릿느릿 머리를 돌려가며 내 쪽을 힐끔거렸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여자애들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던 꼬맹이 심술처럼 나에 대한 관심을 새침으로 대신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그네가 주인 행세하는 꼴이다. 때마다 주인아줌마가 하순아, 검돌아, 불러 모이 주며 예뻐하니까 자기들을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나보다.

장모님 늦은 나이에 출산한 아내는 체질적으로 약하고 아침잠이 많다. 퇴직 후 살림살이에 도움 안 되는 경제적 미안함도 줄일 겸 미군 부대 근무할 때 손에 익힌 서양식 조찬을 내가 차리기 시작한지 두 해가 넘었다. 어쩌다보니 그릇 정리도 내 몫이 되었다. 하루에 서너 번씩 우리 집 뒤로 마실 나오는 애들이, 아침상 준비와 뒷설거지로 바쁘던 나를 오랫동안 봐왔을 터이니 우습게 여길 만도 하리라. 얼굴 붉힐 일 따위 하등 없을 말 못하는 닭 한 마리를 두고 붉으락푸르락 하는 내 꼬락서니가 참 답답하다.

깨금발로 걸어 부엌 창 뒤로 향한다. 몇 년 전 하수 공사 때 여유분으로 구입한 PVC T자 관 두 개가 그대로 놓여있다. 그 안에 보이는 하얀 물체, 꼬끼오~~~, 코앞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와 홰치는 모습에 내가 움찔한다. 하순이가 허겁지겁 빠져나와 뒤뚱거리며 달아난다. 전등을 켰다. 몇 개의 달걀 중 깨진 하나에서 흘러내린 노른자가, 물어다놓은 잔가지 틈새로 스며들고 있었다. 득달같이 달려온 아줌마가 하수관을 가져가고 싶다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 말이 나에게는 부탁 아닌 요구로 들렸으나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그런 후에도 새벽마다 부엌 창 밑에서 부석거리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궁금함을 꾹꾹 눌러 참기 며칠, 뒤뜰에 가봤더니 남은 하수관에 알 몇 개가 또 가지런히 놓여있다. 하수관을 찾아 알을 낳는 게 아니라 우리 집 텃밭을 자기 집으로 아는 건가, 내 잘못은 아니나 거림직했다. 각자 좋을 대로 하고 싶은 습성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양 일반이다. 꼭두새벽부터 문자 연락받고 찾아온 아줌마가 내 얼굴과 죄 없는 T자 관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돌아갔다.

불편한 얘기를 아줌마가 전해왔다. 옆 동네 사나운 누렁이가 주변을 어슬렁거려 우리 안에 가축들을 가뒀으며 하순이와 검돌이도 이제는 닭장 안에서 키운다고. 가고 싶은 곳 제멋대로 찾아가던 그들이 답답할까봐 속상하다. 요래 일이 꼬이기 전에 얘더러 나에게로 입양 오라고 꼬드겨나 볼 걸. 툴툴거리는 내 속을 꿰뚫어봤을까, 아줌마가 사정없이 한 방 날린다.

“얘가 요즘 양심이 없어요. 모이만 딥다 축내면서 지 할 일을 접고 사네.”

매화나무 아래가 잠잠하다. 부엌 창 밑 T자 관도 텅 빈 지 오래다. 두 곳을 오락가락하던 암탉의 속내를 이제야 헤아릴만한데 공작부인처럼 도도하게 나를 째려보던 그녀가 사라졌다. 흰 닭이 내지른 꿈속의 황금 똥을 길몽이라 여겨 사둔 복권은 꽝이었다. 우리 안에 갇혀서도 나보다 훨씬 더 팔자 늘어진 닭들더러 미안하다고 불쌍하다고 오지랖도 떨었다. 그들이 놀던 자리에 매화꽃이 흩날린다. 하얀 꽃잎이 차곡차곡 쌓인다. 자격지심이겠지, 꿈에 보인 손 안의 새가 ‘나’일 거라는 생각까지 덩달아 깊어간다. 뒤뜰 하수관에 남 몰래 숨어들어 할 일을 마친 하순이가, 새벽 어스름 속으로 시원하게 질러대던 꼬끼오~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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