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蓮亭 小考
현재는 도시 한복판, 500여 년 전에는 밋밋한 밭뙈기였을 곳. 주변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사각형 연못 안흥지. 그 한구석에 기와지붕 정자 애련정(愛蓮亭)이 남쪽 방향 연못을 바라보며 덩그러니 앉아있다. 정자 안의 지붕 아래에 한시(漢詩) 액자 열댓 개가 촘촘히 걸려있다. 각 연(連)마다 일곱 자, 여덟 줄로 구성된 칠언 율시(七言律詩) 앞에서 눈을 멈춘다. 글 말미의 사가정서거정(四佳亭徐居正) 여섯 글자가 글쓴이일 것이다. 첫 문장에서부터 그가 내던지는 질문이 거침없다. 誰續濂翁說愛蓮. 염계 선생(濂翁)의 뒤를 이어 (여기서) 애련(愛蓮)을 말하는 자 그 누구냐고.
이황과 이이로 대표되는 조선 성리학의 창시자가 중국 북송의 유학자 염계다. 우리에게는 주돈이나 주자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인물이며 “흙탕 속에 피면서 더럽지 않고 맑은 물에 몸을 씻었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의젓하게 서 있어 먼 곳에서만 바라볼 뿐 느긋한 감상이 어렵다”는 점 등을 연꽃의 미덕이라 읊은 분이다. 이를 인용하여 “(가까이 두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끝까지 어여삐 여기리”라는 넷째 구절 연꽃 찬양자는 다름 아닌 서거정 본인이다.
한반도의 고대사를 망라한 동국통감(東國通鑑), 조선 시대의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동문선(東文選)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 홍문관/예문관 두 기관의 수장을 겸하면서 스무 해 넘게 문형(文衡) 칭호를 받은 글의 달인이었다. 서거정이 몇 년에 뭔 이유로 이천까지 내려와 애련정 한 귀퉁이에 이 시를 남겼는지, 문헌상 기록은 찾지 못했으나 여주 세종 묘를 찾았던 후대 왕 누군가의 행렬을 따라나선 어느 때, 그중에서도 서거정의 임종 전 시점인 예종이나 성종 때로 추정하면 대체로 무리가 없을 듯싶다.
호(號)를 사가정(四佳亭)이라 붙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의 개인 문집인 사가집(四佳集)에 설명이 될 만한 얘기가 나온다. ‘아름다운 네 가지’는 서거정 선생이 늘 가까이 두고 즐겼던 네 가지 식물이었다. 매죽당연(梅竹棠蓮)을 일컫는다. 매화, 대나무, 해당화와 연꽃. 용마산에 생전 그가 자주 머물던 정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서거정 선생의 호인 사가정이었다. 용마산 언저리에 최근 가꿔놓은 놀이터 이름이 ‘사가정공원’이다. 전철 7호선의 사가정역도 서거정의 호에서 따온 것임을 미뤄 알 수 있다.
임금이 계신 창덕궁에서 남한산성 행궁을 거쳐, 이천 그리고 여주의 영릉(英陵)까지 밟아간 길에 따라 약간 차이는 날망정 그 거리는 대략 20km 전후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세종 이후 왕위에 오른 임금들이 선대왕 세종의 묘를 찾아가면서 행렬을 멈춰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써 그리고 정치적 반대 세력의 도발 차단 목적으로 너른 분지 이천은 적합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온천과 쌀밥은 나라님 일행을 대접하는 지역 상품으로 자리매김했을 테고.
브랜드의 명성 대비 빈약하다는 혹평을 종종 들으면서도 외부인들에게 인구 23만의 도시 이천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미지로는 쌀밥보다 더한 것이 없다. 타 도시 흔하디흔한 한정식과 비교해서 사람들이 이곳을 최고로 꼽는 데 대체로 후한 편이다. 그러나 황금 나라에선 보석도 그저 돌일 뿐, 나들이 나온 이천문화 지킴이 일행은 임금님의 식사 이천쌀밥 대신 김밥과 귤 한 개로 가볍게 점심을 때운다. 애련정 바로 뒤 좁다란 차도를 건너 낮은 능선 한적한 공원 꼭대기 한쪽에 자리한 족욕장으로 몰려간다.
칠팔 십 미터 깊이의 축축한 굴 안에서 두꺼운 고무장화를 신고 온종일 일하다 돌아오신 아버지의 발바닥은 쭈글쭈글 불어 있었다. 따듯한 물을 채운 대야에 두 발을 담그고 양손으로 발바닥을 문지르며 얼굴 가득 환하게 미소를 지으시던 50여 년 전 아버지 모습을 이곳에서 본다. 그때의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 많은 둘째 아들 그리고 발가락 닳도록 발품을 팔아가며 이 작은 도시의 문화 흔적을 탐방하고 있는 ‘이문지’ 친구들로부터.
열댓 평 남짓 야외 족욕장에 서른 명 훨씬 넘는 중장년들이 두 발을 물에 담그고 느긋하게 얘기를 나눈다. 한가롭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뜨끈한 물속에 발을 담갔던 아버지의 기분이 그랬을 것 같다. 저만치 언덕 아래 안흥지의 연꽃과 애련정의 그윽한 분위기 못지않게 발목을 감싸는 온천수의 아늑함으로 빠져든다. 風月前頭興自顚, ‘맑은 바람 밝은 달 앞에 흥이 절로 오른다’로 마무리된 서거정의 시에서 달(月)을 해(日)로 바꿔본다. ‘바람 맑고 햇살 밝아 기분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