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산 종점(終點)

by 문예반장

사학년 여름방학, 새벽부터 푹푹 찌던 날 일곱 식구가 버스에 오른다.

회색빛 광산 자락, 푸석푸석 버짐 가득한 코흘리개들,

쌍둥이네 찐빵집과 쇠칼 썰매

그리고 여름 성경학교까지

열두 해 쌓인 기억이 구겨진 채 꾸역꾸역 함께 실렸다.

똥통 차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천천히 움직인다.

흙먼지 풀풀 날리며 주정뱅이처럼 비틀거린다.

윤 약국 앞 기자네 차부가 차창 뒤로 슬슬 멀어진다.

눈앞이 흐릿하다.

그날 이후 나에게 종점은 세상 끝으로만 남아있었다.

모든 것을 송두리째 팽개치고 떠나왔다는 미안함

혹은 유년의 아린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는 비겁함 때문이었을까.

푹 눌러둔 그리움을 애써 외면하며 종점 찾아가기를 한사코 망설였으니.

사십여 년 긴 세월이 끊임없이 속삭였다.

완벽하게 행복한 인생도 철저하게 불행한 운명도 없다고,

죽을 때 들고 갈 것이 있다면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추억과 꿈 정도일 거라고.

늦은 밤부터 쏟기 시작한 함박눈은 동틀 무렵 멈췄다.

눈 덮인 구봉산이 햇살 받아 눈부시다.

나를 보낸 적 없는 종점을 휘 둘러본다.

사람이 없다.

건물도 길도

그리고 길을 막아선 광산 정문도 흔적만 어렴풋하다.

벌겋게 녹슨 양철집이 차부 자리일 것이다.

지붕 뒤로 빼꼼히 솟은 교회 종탑이 저 홀로 외롭다.

조금만 일찍 올 것을.

인적 드문 폐광 앞 종점 어딘가에서 아버지가,

말수 없는 그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꾹 찌르고

감쪽같이 사라졌던 내 썰매를 윗도리에 품고서

지금은 다 커버린 꼬마를 기다렸다지.

아둔한 그 믿음을 떨쳐버리기 싫다.

그래도 떠날 시간, 버튼을 누른다.

시동 걸리는 소리가 부드럽다.

(2022.05.22 revi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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