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by 문예반장

도시락

뽀얗게 흙먼지가 인다. 향나무 담장 옆 황톳길로 삼륜차가 달려온다. 소리만 듣고도 빵 차인 줄 안다. 급식이 안 올까 봐 풀 죽었던 애들 얼굴이 창가 쪽 아이의 ‘왔어!’ 한 마디에 활짝 밝아진다. 급식차가 운동장 한복판에 바퀴 자국 세 개를 남기고 본관 앞에 멈춰 나무 궤짝 예닐곱 개를 내려놓는다. 함석 양동이를 집어 든 당번 둘이 뒷문으로 빠져나간다. 빵은 탄내가 물씬 나고 푸석푸석해도 다들 군소리 없이 잘 먹는다. 어디서 이 빵이 오는지, 누가 보내는지 궁금하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온 부잣집 애들 몇은 학교 급식이 맛있다며 빵과 밥을 바꿔먹자고 한다. 바보도 보통 바보가 아니다.

서울은 달랐다. 학교에서 빵과 우유를 주는데도 그냥 밖으로 나가는 친구가 많았다. 나는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도 급식 당번은 내 책상을 그냥 지나쳤다. 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며칠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때가 되면 당번이 내게도 점심 급식을 가져다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사나흘이 흘러갔다. 여전히 당번은 내 자리를 건너뛰었다. 나한테 급식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관심을 두는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 몫은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끼리끼리 모여 점심 먹는 친구들 틈에 홀로 책상에 앉아있자니 머쓱했다. 도시락 가져오지 않은 친구들 따라 나도 운동장으로 나갔다. 남들이 눈치 못 채게 짝꿍을 운동장 한복판에 세워놓고 물었다.

“전학 왔다고 안 주냐? 우유하고 단팥빵.”

“그럴 리가. 신청을 안 했겠지. 마지막 주 월요일 학급회의 시간에 마녀한테 얘기해.”

“신청? 그 깡패한테 달라고 말만 하면 되는 거야?”

“350원은 내야지!”

돈을 내야 급식을 주는 줄 그제야 알았고 아니라고 우겨봤자 난 어쩔 수 없이 촌놈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그때부터 4교시가 끝나면 밖으로 내뺐다. 서울은 고약한 곳이었다.

오후 수업 있는 날은 점심 종이 울리기 무섭게 우리 반 칠십여 명 중 절반 넘는 애들이 좁은 복도에서 어깨를 밀치며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오십 분 내내 땡볕 아래서 너덜대는 비닐 공을 죽기 살기로 쫓아다녔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수돗물을 듬뿍 마셔 고픈 배를 먼저 달래고 먼지투성이 상고머리를 수도꼭지 아래로 들이밀었다. 뺨 위로 흘러내린 물이 짭짤한 땀과 뒤섞여 끈적거렸다. 눈자위 빼고는 얼굴과 팔다리까지 새까맣게 그을린 애들이 오후 수업 시작도 전에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의자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았다. 급하게 들이킨 찬물이 꿀렁거릴 때마다 간장 뚝 찍어 쌀밥 위에 올린 김이 눈앞에 삼삼했다.

흰 밥 위에 달걀후라이를 얹어오면 그럭저럭 살만한 집 아이였다. 부잣집 애 도시락엔 계란말이, 소시지, 장조림, 김, 멸치볶음, 생선전 등의 반찬이 많았다. 아예 점심을 싸 오지 못하는 친구도 반이 넘었다. 엄마가 일주일에 두세 번 싸주는 도시락엔 시커먼 콩장과 짜다 못해 쓰디쓴 장아찌 반찬뿐이었다.

밥만 해도 그랬다. 서울에 오면 쌀밥 먹을 줄 알았는데 우리 집 밥상엔 일주일에 네댓 번씩 신물 나게 보리밥이 올랐다. 그나마도 없어 못 먹는 사람들이 널렸다며 엄마는 쌀밥 타령인 나를 면박했다. 책 보따리 안에서 뒤흔들린 도시락 속 깡 보리밥이 무장아찌, 콩장과 뒤섞였다. 뚜껑을 열면 거무칙칙한 색깔에다 짠 내가 진동해서 꺼내놓고 먹기가 창피했다. 차라리 한 끼 굶으리라 결심한 내게 도시락을 내던질 핑곗거리가 마침내 나타났다.

교내에서 마녀이자 깡패로 유명한 반장이 혼식 분식 검사 때 시비를 걸어왔다. 그동안 내 도시락을 몇 번 들여다봤던 왈가닥이 그날은 촌놈을 놀려먹기로 작정했는지 자기 얼굴을 내 코앞에 바짝 들이댔다. 흠칫했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피하는 내 귀에다 마녀가 지그시 속삭였다.

“넌 매일 장아찌와 염소 똥만 먹는구나! 그러니 얼굴이 깜깜하지.” 얼굴이 새빨개지고도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반찬이 무장아찌나 콩장인 날엔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어딘가 도시락을 쑤셔 넣어두고 갔다. 깡패가 도시락을 미끼로 나를 깔보는 게 엄마 탓이든 시커먼 반찬 탓이든 마녀 고년 말은 징글맞게 싫었는데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싫고 창피한 것보다 더한 무언가가 나를 짓눌렀다. 내 얼굴이 하얘지기는 영 틀렸다.

수십 년이 흘렀다. 하늘이 노래 보이던 운동장 한복판 허기짐도, 내 속을 북북 뒤집었던 깡패 마녀의 심술통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아직도 단팥빵을 보면 손부터 불쑥 나가고 어릴 적 친해지지 못한 우유를 생각 없이 벌컥 들이켜 때론 배탈이 난다. 그러면서 아직도 종종 그 시절의 도시락을 먹는다. 기억으로 그리고 눈으로만. 그러고도 배가 부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살 만해져서 그때를 잊었나! 이젠 괜찮을 때도 됐는데 때때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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