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나 거기나
할아버지네 들어서자마자 찾는 곳이 마당 구석의 오동나무 통 절구였다. 깨금발로 서서 들어 올린 광주리 덮개 밑에 과일이 수북하게 쌓였다. 이번엔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없다는 말 못 할 거라 기대한 내 어리숙함이 한 번 더 무참하게 짓밟힌다. 없다! 쌀쌀맞게 돌아서는 할머니가 해마다 한결같아 민망하다. 땅바닥을 바라보며 낮게 쫑알거린다. ‘있다!’
문지방에서 잠잠히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내려섰다.
“없다지?”
“.......”
“뒤쪽 골방에 가 있으려무나.”
“예.”
할아버지네 빌붙은 내 또래 친척들만 예닐곱이 넘는다. 할머니 모르게 살금살금 뒤뜰로 통하는 구석방으로 숨어든다. 호주머니에서 감을 꺼내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은근하다.
“먹어라, 얼른. 사람들 보기 전에.”
껍질째 한 입 베어 문다. 아삭하다.
“달지? 침 담갔다.”
“침을 담가요? 퉤퉤?”
“소금물에 사나흘. 떨떠름하면 먹기 나쁘잖니.”
“왜 떫어요?”
“막 땄으니 떫지.”
“아이고, 할아버지. 그거야 알지요. 왜 떫으냐고요?”
“처음부터 떫은데 방법이 있더냐?”
“우리 동네에서는 금방 따온 것도 단데.”
“할아비는 모른다. 학교 가서 물어보렴.”
“할아버지 모르는 걸 학교에서 뭔 재주로 알려줘요?”
“선생님은 다 안다. 물어나 봐.”
할아버지를 붙들고 늘어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답을 못하니까 더 신났다.
“근데, 요놈들은 왜 주황색이에요?”
“허허, 원래 그런 걸 이유가 따로 있나. 네가 연구해봐.”
“예, 나중에 공부해서 알려줄게요. 얘들은 어서 났어요?”
“더 주랴?”
“아니요. 궁금해서. 할머니는 맨날 없다고 거짓 뽀롱만 늘어놓으니까.”
“할미? 소갈딱지 없는 여자다. 너는 남자 아니냐. 이해해라. 감, 많아. 저기 좀 볼래!”
소갈딱지는 대체 뭐람. 할미나 여자, 이해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곰방대로 가리키는 쪽문 밖을 올려다본다. 돌담 너머 뒷집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매달린 열매가 골방 안으로 쑥 들어온다. 환하다. 추석 지나 눈 내릴 때까지 어디나 지천으로 널린 땡감이었다.
가을이 깊다. 진주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하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섬진강 국도를 따라 구례 쪽으로 달리다가 계곡 끝자락과 강이 만나는 곳, 한산한 장터 앞에 차를 세웠다. 네 시간 남짓 긴 여행 끝, 행상 할머니가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대든다.
“뭐 사시게? 지리산 자락 나물과 약초 많아요. 감도 좋고 밤도 맛있지.”
“여기서 악양까지 얼마나 됩니까?”
“거기나 여기나. 악양(岳陽)면도 화개(花開)면도 전부 하동(河東) 땅인데!”
“아, 악양도 하동입니까?”
“그럼, 한 집 건너 사촌이고 두 집 지나 사돈이라.”
길섶 가판대 위로 겹겹이 쌓아놓은 감이 저녁놀 받아 발갛게 물들어간다. 굵다.
“악양 대봉이 이름났더군요. 요즘이 철이라던데.”
“여기나 거기나. 거기 물건 다 이리로 모인다우. 궁금하면 가 봐요. 멀지 않으니.”
“거기 가면 더 쌀까요?”
“거기가 여기라니까.”
여기가 거기이며 거기 감이 곧 여기 감, 얘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악양의 뜻이나 유래를 혹시 아십니까?”
“몰라, 그런 건. 면사무소에나 가보시구려.”
우리 할아버지처럼 이 할머니도 딴 곳에다 물어보란다. 예나 제나 어른들은 모르는 게 많다.
장터에서 악양면까지 십여 분 남짓 거리, 악양이라는 동네의 지명 변천사를 촌로(村老)에게 확인하려 했던 내가 잘못됐지. 이름이 특이해서 갖게 된 호기심은 일단 접었다.
지난해 여기서 만났던 진주댁이 혹시 또 왔나 싶어 주위를 둘러본다. 약속도 없이 나를 만나러 여기까지 와 있을 턱이 없다. 그때는 텃세 센 현지 상인들 눈치 보기 급급한 그녀와 대충 타협해 서둘러 두 상자를 차에 싣고 돌아왔다. 값 좋고 물건도 실했다. 도회지 마트나 청과물 시장보다 훌륭한 품질의 감을 요즘 말로 착한 가격에 샀던 기억이 줄곧 즐거웠다. 전화번호나 따놓을 것을. ‘거기나 여기나’를 줄기차게 외치는 할머니 앞으로 돌아왔다.
“얼마래요?”
잠깐 화들짝 반가운 표정을 뒤로 그녀가 찬찬히 나를 훑는다. 낚였구나.
“박스째 떼어 가면 값이 좋은데.”
“두 상자 사면 더 싸겠네요?”
고개 들어 눈을 흘기는 할멈 얼굴이 환해졌다.
“잔소리가 두 말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말인지 잔소리가 많아 불편하다는 뜻인지 애매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빈 상자 속에 주섬주섬 감을 주워 담기 시작한다. 수십 년 장사 경험으로 사람을 다루는 방식에 이력이 났을 것이다. 할머니가 이겼다. 꾸물거리면 나만 더 바보 되겠다.
“세 상자 합시다. 덤이나 듬뿍, 네!”
할멈의 입술 꼬리가 귀에 걸리고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노닥거리기 바쁘던 주변 노점상들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상자 속에 감 집어넣는 할머니를 곁눈질한다.
할아버지 하던 대로 튼실한 놈 몇 개 골라 침 담가 먹고 나머지는 바람 잘 통하는 곳에 놔둬야지. 겨울이 깊어갈수록 물컹거려 한 입 베어 물기 바쁘게 손가락과 입술 주변에 주황 과육이 끈끈하게 엉겨 붙는다. 그나마 정월 중순이면 동날 것이고 아쉬움에 입맛 쩍 다시다 보면 게으른 봄날이 코 앞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