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어플남
#1.
6년 사귄 전 남자친구가 쓴 글.
흔한 어플녀가 되어버린 내 전 여자친구 김하늘은 사람을 좋아한다. 항상 탐구하고, 관찰한다. 마주하는 상대를 오롯이 바라보고 받아들인다. 순진하게도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싫으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침묵하고, 거짓 없이 상대를 대했다. 그것이 그녀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래서 친구들도 많다. 어디 가서 나이불문하고 친구들을 계속 사귀어온다. 다행히도 다 좋은 사람들이다. 그래도 난 어딘가 미심쩍어 그의 친구들을 검증하고 검증한다. 그게 내 역할이기도 했다.
종종 길거리에서 쓸모없는 물건을 사오기도 했다.
"xx야! 이 스프레이, 너 쓰는 거지?"
"어, 쓰긴 쓰는데.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아니 길거리에서 점포정리하는데, 최저가래!"
"야, 너 그걸 믿어? 진짜 그래서 샀다고? 얼마 주고 샀는데?"
"하나에 1,500원씩 주고 샀는데."
"야! 그거 삼마트 가면 하나에 천 원씩 팔아! 아오!"
"아, 그래? 아, 너 생각해서 산 거니까 그냥 써!"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항상 머리 한쪽 구석에 그녀를 걱정하는 부분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도, 집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그녀를 생각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다.
어느 날은 그녀가 부동산에서 호구를 맞고 온 거 같아 기분이 매우 언짢다고 말했다.
"xx야, 아니 부동산 아저씨가 이상해. 10월 29일로 이사 들어가기로 계약했는데. 기존 세입자가 못 나갈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서 이거 어쩌실 거냐고, 계약 파기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또 기존 날짜에 나갈 수도 있는 거라고 계약 파기하면 나보고 계약금을 다 날릴 수도 있다고 하는 거 있지? 나는 그 아저씨 잘못이 아니라 세입자 잘못이라 그냥 가만히 있었던건데,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뭐라고? 너한테 그런 식으로 대했다고? 안 되겠어. 내일 나랑 같이 부동산 가. 책상을 엎고 오든가 해야지."
"어? 아니야, 아니야. 내가 그래서 화내니까 진정하시라고, 자기가 잘 얘기해 보겠다고 했어."
그녀는 내가 불같이 화내주는 것에 감동해했고 그걸로 만족해했다.(물론 나는 진심으로 책상을 엎으려고 했다.)
그녀와 만난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를 떠올리면 정말 지금으로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대체 어떻게 세상을 살려고 그럴까? 그때의 나는 원체 사랑 같은 허상 따위를 믿지 않은 지 오래였다.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아무튼 그냥 맛있는 걸 같이 먹고, 멋들어진 전시를 보러 가고, 좋은 곳에 여행 가 재밌는 시간을 같이 보낼 여자 상대가 필요했다. 남들이 봤을 때는 여자친구인 역할을 맡아줄 사람. 난 그런 사람이 필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하늘이 나쁜 상대는 아니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는 나보다 세련된 취향을 갖고 있었고,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었고, 또 철학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약간 어리숙한 부분이 보였지만 그건 그 나이 때 갖고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녀는 매우 자고 싶은 몸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뭐 나쁠 게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도 분명히 말했다.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걸 명심해. 그리고 남녀사이에 사귄다는 말이 그렇게 의미가 있어? 물론 너와 주말마다 시간을 보내긴 할 거지만, 사귀는 건 아니야. 만나는 거지. 언제든지 나보다 괜찮은 남자가 생기면 떠나도 좋아."
어딘가 삐뚤어져 있는 나의 말에 상처받은 하늘의 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거렸다. 안그래도 소눈같이 슬픈 눈은 더 반짝였고, 닭똥 같은 눈물이 짱구 같은 볼에 뚝뚝 떨어졌다.
"우리 그럼 이제 만나지 말자. 안녕."
내 앞에서 엉엉 울던 그녀는 차문을 휙 닫고 집에 들어가 버렸다. 죄책감이 드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만난 지 한 달 밖에 안 됐는데, 왜 그녀는 나라 잃은 백성처럼 엉엉 우는 것인가. 벌써 사랑에 빠져버린 건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뭘 믿고? 하지만 착잡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떠나려는데 창문으로 '똑똑' 소리가 났다.
"아직 안 갔네. 안 사귀어도 괜찮으니까 우리 그냥 만나자. 나 너 많이 좋아해."
몇 분 사이에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매주 만났고, 매주 웃었으며, 그녀는 매주 나를 사랑해주었다. 1년이 지날 때쯤에는 이토록 성실한 사랑에 그리고 그녀의 순진무구함에 두손두발 들었고, 마침내 나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다.
#2.
하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 연수의 글.
어제는 언니에게 참 멋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언니는 중학교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예쁜 아이들은 아무리 꾸며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자신에게 맞는 단아한 스타일로 꾸몄다고 한다. 참 대단하고 성인 다운 생각이다. 한창 사춘기의 나이에 마냥 남들 따라하며 예쁘게 꾸미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다니…. 언니의 아름다움을 적은 글을 언니에게 선사해주면 언니는 또 지랄하지 말라고 하겠지?
그래도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사랑스럽다고 말해주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다. 언니는 오늘 바쁘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고, 어쩌면 내가 대낮부터 기생충 제작사 주식 얘길 꺼내서 좀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기분이 상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혹시나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쁠 까봐 조금 걱정이 되긴 하는데 나중에 언니는 말을 해주기 때문에 일단은 그냥 기다릴 거다.
언니를 처음 봤을 때 언니가 어떻게 옷을 입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도 순간순간에 찍어 놓았던 사진들은 있어서 언니가 예쁘다는 걸 안다. 언니는 왜 언니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에게는 은은한 멋이 있다. 머리 빛깔도 대학 때의 갈색빛 보다 어제 만났던 머리 빛깔이 더욱 차분하고 성숙된 분위기를 풍겼다. 살짝 단정하게 자른, 가슴 덮을 정도로 내려오는 머리카락이나, 파마하지 않은 손대지 않은 머리칼들이 그의 옆얼굴을 자연스럽게 덮는다. 동그랗게 말아놓은 목도리도 그의 손이 닿으면 테이블에 놓여있는 모습도 괜히 우아하다. 그의 손가락은 가느다랗고 얇다. 투명한 매니큐어만 손끝에 바른 것이 곱다. 애쓰지 않고도 저리 묘하게 예쁠 수가 있을까?
그런 그가 누군가를 보며 예쁘다고 했다. 그건 다들 생각하는 예쁨이다. 마치 수지, 아이유, 아이린을 보며 느끼는 예쁨. 그 예쁨도 물론 가지기 쉬운 게 아니고 귀한 것이지만, 그가 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예쁘다’는 감정은 별개로 독특한 면이 있다. 내가 그저 그의 친구라서 알아보는 예쁨이 아니다. 천천히 자세히 보고 표현을 아끼고 아끼다가 이제야 겨우 전달하는, 함부로 내뱉고 싶지 않은 ‘예쁘다’는 감정이다. 첫눈에 눈, 코, 입을 뜯어보고서 ‘당신 얼굴의 조화가 참 완벽에 가까운 것 같아요.’ 하는 그런 단순한 판단이 아니다.
좀 전에 언니에게 전화가 왔는데, 나 때문은 아니고 직장 통근 버스비 때문에 트러블이 있었다고 한다. 언니는 나중에 해결되면 다 이야기해 준다. 언니에게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더니 역시 질색팔색한다. 아쉽다…. 언니는 보여주지 말란다…. 나만 알아야겠다. 이런 걸 참 싫어한다. 언니는 자신의 시각으로 객관적으로 본다. 어쩔 수 없다. 이것도 언니의 업인가 보다. 언니도 어쩌면 어렸을 때 되게 예쁘고 싶었나 보다. 사춘기 아이들이 모두 작게나마 꿈꾸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