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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Mar 18. 2024

다시 한번, 몸짱남...

소개팅 어플남

[23.9.10.22:15 (경연): 나 오늘 너희 동네 갔었는데.]



엥? 답장이 온다고?



[23.9.10.22:17 (하늘): 왜 왔는데?]

[23.9.10.22:17 (경연): 코인노래방 가려고, 근데 못 찾고 그냥 왔어.]

[23.9.10.22:18 (하늘): 사거리 탕후루 가게 위에 바로 있잖아.]

[23.9.10.22:18 (경연): 땡큐. 다음에 가야지. 근데 무슨 일인데 그래?]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하지만 어플에서 만난 남자한테 차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23.9.10.22:19 (하늘): 아, 그냥. 뭐 되는 일이 하나 없어서. 근데 말해봤자 풀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엄청 외롭네.]

[23.9.10.22:19 (경연): 그래. 기운 내. 다 잘 될 거야.]

[23.9.10.22:20 (하늘): 뭐 해?]

[23.9.10.22:19 (경연): 나 그냥 집에 있지.]

[23.9.10.22:20 (하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나는 정말 그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을 뿐이었다.

[23.9.10.22:21 (경연): ? 그게 무슨 말이야.]

[23.9.10.22:21 (하늘): 그냥 너무 외로워. 그냥 누구랑 살을 맞대고 누워있고 싶을 뿐이야. 진짜 잠만 자고 가도 돼. 다른 뜻은 없어.]



그는 15분 뒤에 우리 집에 도착하였고, 우리는 그렇게 살을 맞대고 잤다. 좁은 침대에서 함께 자려니 정말 불편했다. 아침이 밝았고, 몸이 찌뿌둥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내게 말했다.



“우리 앞으로 잠은 따로 자자. 밑에 요를 깔고 자거나 말이야.”

“그러자. 근데 너 나를 또 볼 거니?”

“그래도 돼?”



우리는 다음날에 또 만났다. 그날은 밥도 먹고, 섹스도 했다. 그리고 그는 또 연락이 되지 않았다.. 뭐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날 그렇게 효원이 땜빵으로의 기능만 하면 됐다. 사실 돌이켜보니 너무 뻔하디 뻔해서 정말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그냥 졸라 비겁하구나. 그런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우욱.



그 주 금요일에 친구 둘을 만났다. 혜진이와 소영이었다. 둘은 나보다 8살이 어린 친구로 운동 동호회에서 알게 된 지 반년 정도 된 동생들이었다.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니 둘이서 괴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뭐라고요, 다대일 섹스?”

“와,. 언니 미쳤나 봐! 어플에서 무슨 남자를 만나! 무섭지도 않아요?!”

“야, 얘들아. 조용히 좀 들어라! 어플에서 남자 만나는 거 광고할 일 있냐!”



듣는 내내 동그란 눈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흥미롭게 듣던 혜진이가 물었다.



“그럼 몸짱남이랑 못 잔 거예요?”

“응…”

“하… 언니 정말 비통하네요.”


경연이의 얘기는 안주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와중에 소영이는 거의 귀를 막고 있었다.



“아, 자긴 뭘 자! 잘됐다. 못 자서 다행인 거예요!”



소영이는 흥미롭지만 나의 안위가 먼저 걱정이 되었나 보다. 혜진이는 더 똘망똘망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산다고요?”

“이 동네 살아! 이 동네 오피스텔이었는데. 걔가 지네집 사진도 보내줬었는데.”

“어디 봐봐요.”



혜진과 소영은 내 폰을 들고 나란히 앉아 사진을 확대하면서 정말 자세히 봤다.



“아 뭐야, 평화의 교회? 여기 이 사람 방 밖 창문에 평화의 교회 보이는데? 방에 테라스가 있네. 오우, 팬시.”

“평화의 교회면 XX오피스텔 아니야?”

“아, 맞네! 아, 거기네! 나도 집 보러 갔었는데, 거기로. 이 사진은 뭐예요?”



지난번에 효원이가 운동하고 있다면서 보내준 러닝머신 사진이었다.



“아, 뭐야. 여기 러닝머신, 바깥에 공사장, 여기 거기네. 여기 XX헬스장이네!”

“와, 너네 무슨 탐정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애들과 나는 정말이나 무척 웃었다. 그래, 이 좁디좁은 동네…



“언니, 그래서 이 사람이랑 그럼 연락 안 하는 거예요?”

“문자 해봐요. 이 동네에 있다고.”

“아, 여기로 그냥 오라고 해!”

“그럴까…?”

“아, 빨리 해봐요!”



어쩌면 내 친구들이 더 극성이었다. 이해가 됐다. 나 같아도 재밌어서 부추길 것 같았다. 나는 순순히 문자를 보냈다.



[23.9.15.22:21 (하늘): 나 지금 너네 동네에서 술 마시고 있는데. 이따 만날래?]



문자를 보내놓고 친구들과 닭발을 뜯으며 더 자세힌 얘기를 풀기 시작했다. 조금 취기가 오른 나는 카톡을 확인했다. 효원이가 읽었을까?



“소영아, 그럼 나 효원이한테 연락 오면 효원이네서 잔다? 너네 집에서 안 자고?”

“아, 좋아요. 좋아. 대신 연락만 잘해요.”

“아, 이 언니 신났네. 아직 그 사람 언니 카톡 안 읽었어요?”

“기다려봐.”



나는 약간 긴장된 상태로 핸드폰을 눌러 카톡을 확인했다.


이럴 수가.



효원의 프로필 사진이 내려가있었다.



나를 차단한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보통 차단해도 프사 안 내려서 자기가 차단한 건 줄 모르게 하지 않나? 정말 기분이 구렸다.



“야! 얘들아! 효원이 나 차단 박았어!”

“뭐라고요?”

“와, 진짜 대박이다.”

“아, 효원이랑 자보고 싶었다고!!!”



나의 절규는 내 테이블 밖으로 약간 새어나갔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친구들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나는 원래 계획대로 소영이네 집에서 자기로 했고, 다음날 아침에 혜진이도 다시 합류해 동네 맛집에 가기로 하면서 우린 그 날밤을 마무리했다.

.

.

.



“언니, 근데 우리가 오늘 가기로 한 맛집, 그 효원인가 뭔가 하는 몸짱남이 사는 오피스텔 1층에 있어요.”



소영이는 키득대며 아침인사를 했다.



“그래? 뭐 어때. 어차피 마주치지도 못해.”

“마주칠 수도 있잖아요.”

“야, 어떻게 마주치냐? 그게 마주치려면 딱 우리가 가는 시간에 걔가 나와야 되는데, 그게 되겠냐? 어? 그럼 운명이지?”

“아, 그래도 마주치면 어떡할 거예요?”

“안 마주친다니까.”

“아, 정말 언니 엠비티아이 S이에요? 상상을 못 하네, 상상을.”

“아, 몰라! 배고파. 빨리 가기나 하자! 혜진이 준비 다 했다니?”



우리는 차로 혜진이를 픽업하고 문제의 그 장소로 갔다. 나는 소영이가 모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있었고, 바로 뒷좌석에 혜진이가 앉아있었다. 



“여기가 그 맛있다는 식당 있는 곳이냐?”

“네! 더불어 효원이가 사는 오피스텔~! 유후~”



규모가 큰 오피스텔이 눈에 들어왔고 왼편에 조그맣게 있는 교회도 발견했다.



“야, 진짜 얘 여기 사나 보다. 진짜 대박이네.”



나는 오피스텔 1층을 두리번두리번거렸다. 누군가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얘들아, 잠깐만!!!”

“왜요.”

“잠깐만!! 야, 쟤! 저기 지금 담배 피우는 애! 쟤야, 쟤! 쟤가 효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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