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17분. 눈은 떠있었지만 어제 불편한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 터라 피곤에 부쳐 뒤척이고 있던 중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 시간에는 전화를 잘 하지 않는 엄마인데, 무슨 일이지 싶은 우려와 약간의 귀찮음에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모가 돌아가셨어.”
독감이 폐렴이 되어 패혈증으로, 한두달 정도 병원신세를 지고 창현이 이모는 마침내 돌아가셨다. 나와는 딱히 친분이 없지만 엄마와 막내이모가 걱정되었다. 친하든 친하지 않든 사람이 죽어 장례식에 간다는 건 참으로 기분이 이상해지고 그 하루를 묘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전에 회사를 다닐 때 오며가며 인사만 나누던 다른 부서 대리님의 부인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도 하루 종일 기분이 묘했다. 장례식장에 머무는 시간은 30분 정도로 짧으면 짧다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장례식에서 묻은 누군가의 슬픔과 소멸의 기운은 수채화를 그릴 때, 이미 물먹은 종이에 새로운 물감을 칠하면 그 색이 은은하게 내가 생각지 못한 곳까지 번지는데 아마 나는 오늘 친구들을 만나 왁자지껄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어딘가 침잠해져있을 것이다. 그 색이 다 마를 때까지.
도착한 장례식장에 얼마안되는 부조금을 봉투에 넣으며 지켜본 장례식장 안내 티비에는 이모뿐만 아니라 두 명의 고인이 있었다. 한 분은 지긋한 나이에 돌아가신 남성이었는데 자식도, 그 자식의 며느리도 상주로 등록돼있었다. 한 분은 상주가 남편이었고 고인의 나이가 54세로 젊은 나이었다. 누구는 장성한 자식이 상주로 있기도, 누구는 없기도하다.
이모의 상주는 창현, 휘성이라는 아들 둘, 즉 나의 사촌오빠였다. 이모는 살아생전에 창현이 이모라 불렸는데 ‘창현’의 실체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모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이혼을 해서 보지 않고 지나다 비교적 최근에서야 아들과 연락이 닿았다.
미리 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빠와 엄마, 막내이모부, 막내이모. 인사를 건네고 자리로 가 국화꽃을 놓고 창현이 이모에게 절을 하고, 상주와 맞절을 했다.
못본새 머리가 하얘진 막내이모부가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엄마의 눈은 시뻘개 눈물이 고여있었다. 곧 내 눈도 빨개졌고 앞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를 뜯어 눈에 대니 아빠가 이모부에게 말했다.
“나현이도 눈물이 많은 편인가?”
“그치요. 나현이도 누가 울면 따라 울어.”
“나도 젊었을 땐 그렇게 눈물이 많았는데. 밤마다 보초를 설 때 왜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내가 눈물이 많은 건 순전히 유전이군.‘ 생각하는 찰나에 엄마가 밥은 먹었냐 물었다. 밥은 병원 밖에서 사준다고 했다. 올 사람이 적어 육개장이나 떡 등 상례음식도 하지않았다. 장례도 2일장으로 단촐했다. 단촐했다. 단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