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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Jun 29. 2021

토끼와 거북이 현대판

용왕의 무리한 지시


글/그림 11월


용왕이 거북이에게 말했다.


"거북아, 토끼의 간을 가져오너라."

"아니, 왜요? 아니, 그게 아니라... 용왕님의 충신인 토끼의 간을 말씀하시는 게 맞으신지요?"


거북이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반문을 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용왕의 저의를 물었다.


"왜긴 왜야. 내 몸에 좋으니까 그렇지!"


용왕의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거북이는 갑자기 열이 확 받는다.


'아니, 미친. 오늘 반차라 곧 퇴근인데, 왜 이제 와서 일을 시키는 거야. 그리고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청부살인을? 또 토끼는 용왕의 오른팔 아니었던가?'


용왕의 근본 없는 지시에 진절머리가 난 거북이는 씩씩대며 용궁 한편에 위치한 사무실로 갔다. 토끼가 있는 곳이었다. 토끼는 이미 업무를 재빠르게 처리해놓고 노닥거리는 중이었다. 토끼는 거북이를 보곤 반갑게 맞아주었다.


"요~ 씨스. 너 오늘 반차라매. 왜 여기 있냐? 그리고 얼굴이 왜 이렇게 울그락불그락이야. 지난번 달리기 경주 이겨서 상금도 두둑이 받아놓곤. 너 내가 잠들어서 운 좋게 이긴 거야~ 알아?"


물론 토끼는 자기가 방심해서 진 걸 알고 있다. 그냥 거북이에게 시시콜콜 시비 거는 것뿐 다른 뜻은 없었다.


"아니, 용왕이 다짜고짜 네 간을 가져오라고 하잖아. 말이 되냐? 아니, 나 진짜 못해먹겠네."

"뭐라고? 용왕이 진짜 그랬단 말이야?"


하얗던 얼굴이 거북이처럼 울그락불그락 변한다. 토끼는 도저히 화를 다스릴 수 없고, 서랍 속에 있던 총을 꺼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지한테 어떻게 했는데! 어? 내가 백성들 민원 처리 다 해줘. 술 마실 때 대리 뛰어줘. 야근 수당도 안 받아. 월급도 적어. 내가 가장 열 받는 게 뭔지 알아? 중식비 안 주는 거야. 아니 밥은 먹여가며 일을 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진짜 화가 나서 더 이상 못살겠네. 내가 그 새끼 죽이고 감옥 간다."


거북이는 온 방안을 깡총깡총 쏘다니며 분노한 토끼를 겨우 잡고, 말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역시 토끼가 강한 이유는 깡과 총이 있어서인가.'


"야야, 네가 참아. 그냥 저기 마당에 있는 해삼 갖다 주면 돼. 내가 걔한테 토끼 간은 매일 생기는 거라고 말할게. 걘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냥 지 몸에 좋다니까 먹으려고 하는 거지. 아무런 저의가 없어."

"하. 이 빡x가리 용왕 새끼. 내가 전세 대출금 때문에 참는다. 난 그게 더 싫어. 아무런 저의 없이 저렇게 사람 열 받게 하는 거. 아, 그 새끼 진짜 곧 죽어, 내손에!!"


토끼의 분노가 용궁을 울린다.


거북이는 용왕에게 토끼 간인 척하는 해삼을 준다. 냠냠쩝쩝와구와구. 용왕은 맛있게도 먹는다.


"하, 잘 먹었다. 토끼 간에서는 바다향이 나는구나. 아, 그래서 토끼 시체는 어디 있느냐?"

"아, 그게. 토끼는 매일매일 간이 새로 자란다고 합니다."

"아, 그래? 그럼 더 잘 됐네. 앞으로 매일 가져오너라."


거북이는 마당에 있는 해삼을 바라보며 속으로 'x새끼'라고 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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