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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Jul 09. 2021

토끼와 거북이 현대판 2

사장님 에어컨 안 틀고 일 시키면 총으로 쏠거예요.

글/그림 11월



"아, 더워."


토끼의 털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다. 그에 비해 거북이는 맨질맨질 때깔도 좋다.


"난 더위를 많이 안 타서..."

"하... 이게 말이 되냐? 여름이라 수온이 엄청 뜨겁다고... 용왕놈, 지 집무실은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놔서 플리스 입고 있으면서, 사무실 에어컨은 온도 28도로 맞춰놓은 거 실화냐?" (중앙난방임)

"용왕은 인간이니까, 네가 좀 참는 건 어때? 아니면 이따 용왕 퇴근하면 그때 가서 올리자."

"너는 왜 맨날 뭐만 하면 참으래? 털도 없는 너는 내 마음 몰라!"


거북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토끼의 얼굴은 시뻘게졌다. 토끼는 연신 부채질만 하다가 갑자기 뭐라도 깨달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헉. 심상치 않아 보이는 토끼에 거북이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얘기한다.


"야, 왜. 어쩌려고."


거북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끼는 서랍 속에 있던 총을 꺼내고, 거북이는 이를 또 황급히 말린다.


"드디어 오늘이 내가 감옥에 가는 날! 다른 말로 하자면 용왕의 초상 치르는 날이다!"

"아, 정말 왜 그래! 대출금! 대출금을 생각해."


말리는 거북이와 발악하는 토끼의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지나가던 심청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심청이는 얼마 전 육지에서 내려온 인간으로 용왕의 보필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육지에서는 접할 일 없었던 책을 접한 후로 매일같이 용궁에 있는 도서관으로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잠깐 점심을 먹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지나친 사무실. 심청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토끼와 거북이는 계속해서 투닥거리고, 심청이는 둘을 한 번에 업어치기로 제압한다. 바닥에 던져진 거북이의 팔다리와 머리는 등껍질로 쏙 들어가고, 토끼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해 버벅거리고, 땅에 떨어진 총을 찾는다.


"뭐, 뭐야?"

"그러게, 내가 말할 때 좀 듣지."

"아니, 너 뭔데? 너 아주 폭력적인 사람이구나?"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그런 거 아닌가? 어이가 없는 토끼는 심청이가 방심한 틈을 타 순식간에 천장으로 깡총 뛰어올라 심청이 뒤에 선다. 그리고 단숨에 심청이를 두 팔로 감싸 안은 다음 공중으로 뛰었다가 그대로 앉는다.(레슬링 기술 - 백드롭) 토끼는 재빨리 바닥에 있는 총을 집어 심청에게 겨눈다. 심청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총을 보고 깜짝 놀라 양손을 어깨 위로 든다. 토끼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한다.


"깡과 총을 든 토끼에게 개기지 말라고."

"알겠으니까, 그 총 내려."

"누구 맘대로?"

"원하는 게 뭔데. 빨랑 말해."


거북이는 쏙 하고 등껍질에서 나와 토끼 뒤에 숨는다. 토끼는 의기양양하게 심청에게 말한다.


"에어컨 온도. 용왕한테 말해서 에어컨 온도 좀 26도로 낮춰줘. 여름철 실내 적정 온도라고."


심청은 풋 하고 웃는다.


"난 또 뭐라고. 어쩐지 이 방 유난히 덥다 했어. 오케이."


알고 보니 심청은 용궁을 돌아다니며 근무 환경을 체크하고 있었다. 심청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토끼는 그에게 다그치듯 말한다.


"얼른 다녀와!"

"단 조건이 있어."

"조건? 무슨 조건, 내가 이렇게 네 목숨을 쥐고 있는데."

"그 총을 내려놓는 게 조건이다."

"뭐래. 조건은 내가 만든다."

"토끼, 너 마음에 든다. 야무지군."

"어떻게 알았지? 내 이름은 야무다. 난 야무토끼. 야토다."


심청이는 다소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퇴장했고, 에어컨 온도는 26도로 낮춰졌다. 천장에서 나오는 냉기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토끼, 거북이는 어째 몸이 좀 으슬으슬한 기분이다. 토끼는 의자에 걸려있던 카디건을 거북이에게 넘겨주며 말한다.


"하, 그래 에어컨 바람을 쐐야 일할 맛이 나지."


거북이는 토끼의 컴퓨터 화면을 보며 말했다.


"넌 이미 오전에 일을 다 마쳤잖아... 일 없어서 지금 자전거 쇼핑 중이잖아..."

"어쩌라고! 근무시간에 사무실에 있는 자체로 다 일이야! 하물며 내가 손이 느린 네 일도 다 해줬는데, 조용히 안 하냐?"


거북이는 토끼에게 윙크를 날리며 '알았어. 조용히 할게' 눈빛을 보내면서 입을 잠그는 손동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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