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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Jul 15. 2021

이불

어린 날의 사랑 이야기

투박한 검은색 현관문을 열면 보이는 신발장엔 단화들이 한가득. 신발을 벗고 들어간 왼쪽 편엔 하얀색 진열장이 있다. 자세히 보면 거친 페인트 붓 자국이 그대로 보인다. 진열장 위로 나있는 큰 창문에는 파란 하늘이, 건너편엔 노란빛을 띠는 자작나무 상판의 책상 위에 하얀 수국이 그윽하다.


책상에서 작업 중인 그가 나를 바라보고 씩 웃고는 달려온다. 내가 그를 만나는 장소는 항상 그의 집. 이유는 내가 그를 만지기 위함이고 그가 나를 만지기 위함이다. 너무 원색적인 이유라 남들이 내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먹이기 전에, 내가 먼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다가 그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이번엔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나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에게 나 역시 미소 짓는다.


 푹신한 이불을 덮은 우리는 서로를 그윽이 바라본다. 그의 눈을 보고 있으니 그의 우주가 보인다. 아마 그를 향해 비추는 조명 빛과 그의 눈동자가 맞닿아 빛나는 것이겠지. 나는 그 반짝임에 너무 놀라 잠깐 뒤척인다. 그런 나를 꼭 안아주는 그. "지금 우리, 너무 포근하고 좋다. 그렇지?".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눈빛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응, 좋아. 그런데 비단 ‘나’와 함께 누워있어서 좋은 걸까? 아마 그 누가 되어도 좋을 거야.”라고 대답하니 그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도 아차 싶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그대로 잠든다.



 눈을 뜨니 아까의 포근함은 여전하다. 한데 내 옆에 그 누가 없다. 그가 없다. 그는 책상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며 책상에서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내며 글을 쓴다.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나는 헌 이불보를 바꾸었다. 새로 산 침구에 내 몸을 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귀가 간질간질했다. 천장을 보고 누워있던 내 눈에서 흐른 눈물이었다. 그리곤 불편한 내 잠자리를 탓했다. 더 이상 포근하지 못할 새이불을 걷어차버리고 나는 맨몸으로 자다가 다음 날 감기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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