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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Jul 16. 2021

토끼와 거북이 현대판 3

재택근무


'띠링.'


[변이 된 잉어봄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 각 부서의 팀장을 제외한 모든 사원은 재택근무를 실시해주십시오. 근무를 위한 채비를 내일 오전 중으로 마치어, 오후부터는 재택근무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게 준비해주십시오.]


일요일 저녁, 회사 단톡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본 토끼는 바로 거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북아, 그럼 나는 어떻게 해? 부서엔 나밖에 없는데, 나는 사원이잖아."

"어... 너는 출근해야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어..."

"하. 그럼 나 팀장으로 승진시켜주는 거야, 뭐야. 꼴랑 최저시급 주면서!"

"..."


격노한 토끼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해줄 수 없는 거북이는 침묵하고, 잠시 정적이 흐른다. 하긴 거북이의 탓도 아닌데... 토끼는 갑자기 머쓱해져 말을 잇는다.


"아, 미안. 너한테 그럴 게 아닌데... 아니, 그렇잖아. 나는 솔직히 집에서 해도 상관없는 업무인데."

"그러게 말이다. 기운 내, 토끼야. 우리 나중에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알았어, 거북아. 나중에 한 잔 빠라삐리뽀~ 그럼 내일 보자."


라고 나쁘지 않게 통화를 마무리하는 줄 알았는데... 나즈막히 들려오는 거북이의 뜻밖의 대답.


"엇, 나는 내일 안 가는데..."

"왜? 너는 용왕의 퍼스트 어시스턴트, 제일가는 비서잖아. 너 없이 용왕 아무것도 못하잖아."

"용왕이 자기 재택 한다고 오지 말래..."

"뭐라고? 이 시#$%^^#$$$&%*$($^)^(&(%)@)!@#$%^"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토끼의 절규. 그리고 온갖 욕설과 총소리. (토끼집의 벽은 방탄벽이다.) 거북이는 토끼가 안쓰러워 차마 통화 종료 버튼은 누르지 못하고,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다. 핸드폰을 책상 위에 두고, 바로 옆에 있는 침대에 철퍼덕 누워 노트북을 켠다. 6평 남짓한 거북이의 자취방. 다음 검색창에 '동행 복권'을 검색하고, 베개맡에 있는 로또 용지를 손에 쥔다. 용궁이라는 수갑을 풀어줄 유일한 방법, 로또... 어제 꿈에서 번호를 봤다. 이번엔 뭔가 다르다. 상기된 볼. '혹시나' 하는 마음.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총소리가 로또 당첨을 알리는 폭죽 소리처럼 들린다. 


'11, 24...'


꽝. 서민 생활 일주일 연장에 당첨되셨습니다.


"이게 뭐야! 어떻게 하나도 안 맞지?"


거북이는 실망감을 그득 안고 차분히 노트북을 덮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 내일 회사 안 간다..."


속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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