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십일월 Jun 04. 2021

<한국인의 밥상>과 브이로그

타인의 일상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바로 <한국인의 밥상>이다. <한국인의 밥상>은 전국 곳곳을 다니며 각 지역의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로 방영한 지 10년이나 되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배경을 소개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따라서 음식에 담긴 ‘사람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 주主인 프로그램이라 소개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 프로그램에서 밥상 차리는 건 대부분 밭일을 너무 많이 해서 굽은 등의 꼬부랑 할머니나 밖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온 아주머니-하긴 프로그램에서 바깥일 안 하는 여성을 본적이 없는 거 같다-이지만 그 밥상에 앉은 건 대부분 남성이라 솔직히 볼 때 불편하기도 하다. 물론 진행자 최불암 선생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만인이 알아보고, 할머니들과 같은 시대를 산 아이코닉한 인물이라 진행자로서 탁월한 것 같다. <한국인의 밥상은> 여성 노동착취를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간다. 아무래도 밥상을 차리는 몫이 여자이니, 음식 역사에 여성 서사가 들어있다...)


KBS1 <한국인의 밥상>


위와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풍경을 보여주는 <인간극장> 역시 어렸을 때부터 즐겨보던 프로그램인데, 이유는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항상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어떤 연유로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생각을 하는 걸까? 이런 호기심 때문에 항상 친구들을 만나거나 전화를 할 때 내뱉었던 첫마디는 “오늘은 무슨 반찬을 먹었니?”였다(내가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해서, 궁금증의 우선순위 1위는 ‘음식’이었다). 또 밤에 잠은 잘 잤는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어느 회사의 치약으로 이를 닦았는지 등 다소 오지랖으로 보일만 한 질문들을 마구마구 던져댔다. 즉, 나는 타인의 일상을 항상 궁금해했다. 대체 70억 지구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하지만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다 보니 친구들과 미주알고주알 얘기 나눌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내가 나서서 물어보지 않아도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일상에 담긴 역사와 맛있는 음식을 정겹게 먹는 모습까지 더 해진 <한국인의 밥상>은 내가 애정하는 프로그램이 될 수밖에 없었다.(먹방 + <인간극장>, 정말 완벽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완벽해... 브라보!)


시대가 발전하면서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늘었는데, 바로 유튜브 브이로그이다. 위의 프로그램들처럼 제3자의 시선으로 담은 타인의 일상이 아니라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는 개인의 취향과 취미, 그날 간 카페, 먹은 음식, 하는 일 등, 개인의 사생활이라 불릴만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브이로그입니다. '타인의 일상' 검색~!


예를 들면 브이로거가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는다고 하면, 무슨 종류의 시리얼을 먹는지, 시리얼을 만든 곡식이 유기농인지, 귀리가 들어있는지, 저지방 우유를 먹는지 아몬드 우유를 먹는지, 그릇에 시리얼을 부은 다음 우유를 넣는지, 우유를 넣은 다음 시리얼을 붓는지, 먹고 난 뒤 뜀박질을 하러 나가는지,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지 따위까지도 알 수 있다. 또 취향인지 연출인지는 모르겠으나 혼자 차려 먹기도 귀찮은 식사를 예쁜 그릇에 정성스럽게 담아 카메라에 대고 구독자인 나에게 말을 걸며 소통하려는 친밀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때때로 ‘내가 이 사람의 일상을 이렇게까지 속속들이 알아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조금은 죄의식(?) 같은 꺼림직한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여하튼 따로 질문하지 않아도, 친구가 아니더라도 나는 타인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어 내게 참 좋지 아니한가?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의 일상을 보고 느낀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가끔 “왜 이렇게 남한테 관심이 많아?”라는 질문을 듣기도 한다. 그러게 말이다. ‘타고난 기질일까?’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난 오히려 그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러는 너는 남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라고. 가만히 앉아 조금만 자신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은 인간에게 관심이 엄청 많다는 걸. 그 방법이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든,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든, 책을 읽는 것이든, 지금 이 글을 읽는 것이든 간에 말이다.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행위는 자신에 대한 관심의 척도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공감과 이해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의 구별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립해나간다.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매우 건강한 일이다. 내 삶이 재밌어야만 다른 이를 돌아볼 수 있다.


모두가 타인의 일상을 궁금해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길 바라며 이만 줄인다. 총총



뭔가 김영철의 동네한바퀴를 프로그램 결을 보아하니 김영철 아저씨가 후임일 거 같은 예감이...

김영철 아저씨도 좋지만 최불암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작가의 이전글 60학번 이명준과 13학번 십일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