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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Nov 25. 2021

첫 번째 주홍글씨

강아지를 버리다.

초등학교 3학년, 주말에 종종 엄마손을 잡고 서울에 있는 큰이모 댁에 갔다. 그 길은 멀다면 꽤 먼 길이었는데, 힘들다고 징징대기보다 항상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얌전하게 버스를 탄 내 모습이 기억난다. 그 이유는 바로 큰이모네가 키우던 강아지 때문이었는데, 당시엔 반려견이라는 단어도 없을 때였던 만큼 강아지를 키우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때문에 강아지를 만지고 옆에 두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 자체로 내겐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나, 강아지들은 내게 살갑지 않았고, 내가 강아지를 졸졸 따라다니던 것만 생각난다.



그날은 비가 유독 많이 왔었다. 동갑내기 사촌과 나는 우산을 쓰고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비를 쫄딱 맞고 있는 조그마한 떠돌이 강아지를 발견했다. 강아지 꼴이 너무 안쓰러운 나머지 우리는 그 녀석을 덥석 품에 안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집이니까, 얘를 불쌍히 여겨 키워주지 않을까?’



어린 마음에 단순하게 생각했던 우리는 강아지를 씻기고 재우고, 성인인 사촌언니 오빠들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잠들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큰소리가 들려왔다. 사촌언니였다.



"뭐야, 얜?"



나와 동갑내기 사촌은 눈을 부비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를 맞고 있길래, 우리가 데려왔어. 여기서 키우면 안 돼?

 "당연히 안 되지! 강아지가 두 마리나 있는데, 더 키울 수는 없어. 얼른 내보내!"



그렇게 퇴짜를 맞고, 엄마에게 가서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라댔지만  퇴짜를 맞았다. 별수가 없었다. 사촌과 나는 풀이 죽은 채로 강아지를 안고, 밖으로 나섰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정처 없이  반대편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근처에 누가 없는지 주위를 살피다 강아지를 내려놓고, 황급히 몸을 숨겼다. 그리고 한참을 지켜보았다.



그 조그마한 강아지는 우리를 찾으려 두리번두리번 댔고, 나는 보았다. 강아지의 절망과 포기를. 시간이 지날수록 강아지의 눈망울은 공허해졌고, 우리를 찾을 수 없을 거라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강아지의 눈망울을 나는 봤다.



처음으로 내게 주홍글씨가 새겨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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