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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Nov 17. 2021

내 세상에 존재하는 오직 한 사람

잠시 반려동물 호텔 주인장이 된 후기

"이사를 하게 됐는데, 잠시 고양이 두 마리를 맡겨도 될까?"



그다지 왕래가 없는 사촌언니의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난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로 "네!"라고 답했다. 너무 기뻤다. 고양이는 너무 귀여워! 그런 귀여운 고양이가 무려 두 마리라니! 그것도 2주 동안이나 함께 할 수 있다니! 훗날 집사를 꿈꾸는 내게 너무나 유익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언니는 다음 날 고양이 집과 화장실, 사료, 간식, 장난감 등 고양이 용품과 함께 가장 중요한 고양이 둘을 데리고 왔다.



"여기 흰색 바탕에 머리에 검정 무늬가 있는 애가 치치야. 엄청 활기차고, 또 엄청 개냥이야. 지지는 도도하지만, 곧 잘 따라.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아마 잘 지낼 거야."

"걱정마세요.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고양이 두 녀석은 케이지를 열자마자 우리집에 오자마자 침대 밑으로 쑥 하고 들어갔다.



'흐흐, 그럴 줄 알고 미리 다 청소해놨지.'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어필한 다음 그들이 경계심을 풀면 마음껏 사랑해주려고, 책상에 앉아 정말 열심히, 아주 온 열정을 다해 컴퓨터에 집중하는 척했다. 일이십 분 정도가 지나자 아이들은 침대 밑에서 나와 집안을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탐색 하기 시작했다. '흐흐, 걸려 들었어.' 나는 몰래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좇았고, 세계 최고의 요물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느새 치치와 지지는 내 컴퓨터까지 와서 나와 눈을 맞췄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시작됐다, 가 아니고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나는 부지런히 고양이 똥을 치웠고, 부지런히 돌돌이를 돌렸다. 이렇게 열심히 청소를 한 적이 없다. 하루에 사진을 몇 장이나 찍은 걸까 사진첩은 과적되고, 외출하고 집에 돌아가는 날은 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도저히 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에 가는 길에서는 항상 마지막 결승점을 100미터 앞둔 마라토너처럼 달렸다.



같이 지낸 지 일주일 하고도 반, 헤어질 시간이 다가올 때쯤이었다. 집에 가는 길이, 고양이가 날 기다리고 있는다는 사실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곤히 자고 있을 무렵, 고양이들의 뛰노는 소리도 여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치와 자자를 보내기 전날 나는 꺼이꺼이 울었다.



"흑흑. 애들아, 너네 이제 내일 가. 이제 우리 못 봐. 흑흑."



그들은 훌쩍 거리는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위로를 해주다가(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소리를 내어 꺽꺽 울어대니,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꺽꺽 울던 나.



몇 달 뒤 나는 치치, 지지와 일주일 간 다시 함께할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에 만난 치치와 지지는 여전히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한데, 함께 있다는 행복과 동시에 헤어질 때쯤 느꼈던 단점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단점도 발견했다.



'혼자 있고 싶어...'



나는 이상하게 해가 떨어진 깜깜한 밤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귀소본능이 강하다. 그래서 새벽까지 친구들과 노는 것도, 외박을 하는 것도(그게 평소 가고 싶어 했던 여행지이건, 5성급 호텔이건)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씻고 누워 뜨끈하게 달궈진 온돌방에 누워 핸드폰을 하는 게 가장 큰 낙이다. 그런데 고양이가 있으면 말 그대로 고양이와 '함께' 있는 것이 된다. 집안에 더 이상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고양이가 정신사납게 우다다다 뛰지 않고 조용히 잠을 자고 있어도, 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아니어도 말이다. 그런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냥 완전히 나 혼자가 아닌 게 되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조잡한 말장난인 거 같지만, 뭔가 존재론 같이 심오한 거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다시 만난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며 깨달았다. 나는 동물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앞으로 내 세상엔 반려동물이 없겠구나! 실망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어쩌겠나. 시간이 지나 내 세상이 나 말고도 다른 것을 필요로 할 때, 그때는 함께할 수도 있겠지. 내 변덕을 알기에 일말의 희망은 아직 남아있다. 그리고 워낙 사랑스러운 생명체이기도 하니까,라고 나는 까만 밤 홀로 책상에 앉아 모니터 화면의 새하얀 빛을 받으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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