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십일월 Nov 11. 2021

이래서 공산당이 있는 걸까.

그냥 끄적끄적

이래서 공산당이 있는 걸까.


가끔씩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그냥저냥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저냥이라는 생각에는 이미 나의 가치관과 사회적 통념 등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냥'이라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그냥'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상황은 별로 없는 거 같다.

’그냥'은 설명하기 귀찮을 때나 쓰는 말이고, 굉장히 무책임한 말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한데에 ‘그냥’은 없다.


-


나는 주말에 남자친구와 차 없이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별별 사람들을 마주한다. 우리 같이 데이트를 나온 청춘들도 있고, 오랜만에 재회하는 친구들, 친지 결혼식 때문에 먼 곳을 찾아온 가족 등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잘 정돈된 도시숲 아래 넓은 보고에 자리를 잡고 앉아 75리터짜리 쓰레기봉투 다섯 개를 풀어헤쳐 그 안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선별하는 여성 노숙자도 있다. 머리는 산발에 얼굴에는 때꾸정물이, 신발은 해지고, 옷은 씨꺼멓다.


순간 그 사람 얼굴이 순간 나로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사람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난 멀쑥하게 차려입고 맛있는 밥을 먹었네. 기구했다. 선민의식? 그딴 건 아니다.

그냥 운이었다. 내가 맛있는 밥 먹고 돌아다니는 건 운이 좋아서이다. 저 사람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저 사람이 내 자리에서 태어났다면, 저 사람이 말쑥히 차려입고 맛있는 커피를 마셨겠지.


인터넷을 하다가 배우 부부가 맨해튼에서 아이들과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진은 부부가 골프를 치는 장면이었다. 부러웠다. 맨해튼에서 살다니. 나는 당장 제주도 갈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배우의 자녀들도 부러워졌다.


그런데 이런 기사엔 내가 아까 했던 생각이, 적용이 안 된다. 뭔가 저 배우 부부는 분명 나보다 잘나서 맨해튼에서 행복하게 골프를 치는 거 같다. 노숙자와 나의 자리를 바꾸는 것처럼 배우 부부와 나의 자리를 바꾸는 게 안 된다. 어딘가 묘하게 뒤틀린 자기비하일까?


-


과제로 동대문종합시장에 한참 드나들었던 때가 . 그때마다 지게를 지고 자기보다 크고, 무거운 원단을 나르는 지게꾼을 보곤 했다. 친구에게 "저렇게 힘든 일을 대신해주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 말했더니, 친구가 "저건  사람들의 일이야.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마.”라고 말했다.

친구가 내 말을 오해한 거였다. 난 정말 저렇게 힘든 일을 기계가 했으면 좋겠어서 한 말이지 그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하거나 비하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 사실은 명백하다. 오히려 저렇게 무거운 원단을 나르는 이들에 경외심을 표현하면 한 거지. 그때, 난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되게 뻘쭘했었는데, 지금은 명백히 안다. 난 정말 기계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을. 로봇청소기가 청소부를 비하하려고 만든 건 아닌 것처럼.


내 글을 읽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내 친구가 오해한 것처럼 들릴 수 있을 것도 같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고쳐나가는 게 맞으나, 솔직히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 내 표현력으론 역부족이다.


여하튼 그냥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일정하게 맛있는 음식 같이 먹고, 좋은 데 가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캐비어 먹는 부자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음식은 아무리 비싸고, 산해진미를 먹어봤자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은 비슷하고,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다. 난 그러니까,.. 그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냥..


그냥 다 같이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유유자적히 걱정 없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결론이 꼭 공산당 같다.


묘한 글을 마친다.


-



인프피짤 던지고 간다.


출처: 인스타그램 @m__ncookie


작가의 이전글 우당탕탕 부산 가족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