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끄적
이래서 공산당이 있는 걸까.
가끔씩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그냥저냥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저냥이라는 생각에는 이미 나의 가치관과 사회적 통념 등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냥'이라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그냥'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상황은 별로 없는 거 같다.
’그냥'은 설명하기 귀찮을 때나 쓰는 말이고, 굉장히 무책임한 말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한데에 ‘그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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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말에 남자친구와 차 없이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별별 사람들을 마주한다. 우리 같이 데이트를 나온 청춘들도 있고, 오랜만에 재회하는 친구들, 친지 결혼식 때문에 먼 곳을 찾아온 가족 등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잘 정돈된 도시숲 아래 넓은 보고에 자리를 잡고 앉아 75리터짜리 쓰레기봉투 다섯 개를 풀어헤쳐 그 안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선별하는 여성 노숙자도 있다. 머리는 산발에 얼굴에는 때꾸정물이, 신발은 해지고, 옷은 씨꺼멓다.
순간 그 사람 얼굴이 순간 나로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사람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난 멀쑥하게 차려입고 맛있는 밥을 먹었네. 기구했다. 선민의식? 그딴 건 아니다.
그냥 운이었다. 내가 맛있는 밥 먹고 돌아다니는 건 운이 좋아서이다. 저 사람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저 사람이 내 자리에서 태어났다면, 저 사람이 말쑥히 차려입고 맛있는 커피를 마셨겠지.
인터넷을 하다가 배우 부부가 맨해튼에서 아이들과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진은 부부가 골프를 치는 장면이었다. 부러웠다. 맨해튼에서 살다니. 나는 당장 제주도 갈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배우의 자녀들도 부러워졌다.
그런데 이런 기사엔 내가 아까 했던 생각이, 적용이 안 된다. 뭔가 저 배우 부부는 분명 나보다 잘나서 맨해튼에서 행복하게 골프를 치는 거 같다. 노숙자와 나의 자리를 바꾸는 것처럼 배우 부부와 나의 자리를 바꾸는 게 안 된다. 어딘가 묘하게 뒤틀린 자기비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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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로 동대문종합시장에 한참 드나들었던 때가 있다. 그때마다 지게를 지고 자기보다 크고, 무거운 원단을 나르는 지게꾼을 보곤 했다. 친구에게 "저렇게 힘든 일을 대신해주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 말했더니, 친구가 "저건 저 사람들의 일이야. 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마.”라고 말했다.
친구가 내 말을 오해한 거였다. 난 정말 저렇게 힘든 일을 기계가 했으면 좋겠어서 한 말이지 그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하거나 비하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 사실은 명백하다. 오히려 저렇게 무거운 원단을 나르는 이들에 경외심을 표현하면 한 거지. 그때, 난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되게 뻘쭘했었는데, 지금은 명백히 안다. 난 정말 기계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을. 로봇청소기가 청소부를 비하하려고 만든 건 아닌 것처럼.
내 글을 읽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내 친구가 오해한 것처럼 들릴 수 있을 것도 같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고쳐나가는 게 맞으나, 솔직히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 내 표현력으론 역부족이다.
여하튼 그냥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일정하게 맛있는 음식 같이 먹고, 좋은 데 가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캐비어 먹는 부자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음식은 아무리 비싸고, 산해진미를 먹어봤자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은 비슷하고,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다. 난 그러니까,.. 그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냥..
그냥 다 같이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유유자적히 걱정 없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결론이 꼭 공산당 같다.
묘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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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피짤 던지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