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지하철 기관사의 강제 에세이
기관사를 하며 가장 어려웠던 일은 역시 사고다. 서울역에서 익숙지 않은 신차를 받아, 남영역으로 올라가는 데 차가 갑자기 멈추어 버린 것이다. 아무리 해도 움직이지를 않아, 당황하고 있던 중에, 반대편 선로에서 오던 동료기관사가 멈추어 서서 도와주어 천우신조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말할 수 없는 일까지 겹쳐서, 두고두고 나의 앞길을 막는 어두운 그림자가 되었다.
기관사라는 것은 너무나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어서, 한 기관사의 잘못으로, 지하철공사 사장직까지 서슴없이 날려버릴 수 있는, 무섭고 위태로운 직책이다. 그러니 그 막중한 책임 안에서 숨 쉬는 가냘픈 한 인간의 약한 모습을 생각해보라! 동정이 갈 것이다.
위와 같은 유사한 사례가 20년 근무 동안 한 기관사당 3-4건씩은 있으니, 겉모습은 명예롭고,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부러운 직장으로 보여도, 큰 위험을 감수하며, 순간순간 살아가는 위험한 직업임은 확실하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이 실감 날 것이다.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다. 사소한 사고 하나하나가 여러 신문 매스컴에 소식이 순간 전달되어 버린다.
크나 크고 단단한 철의 덩어리가 가는 데에는 사람이 다치고 죽는 일이 발생한다. 지금은 찻길과 사람 간의 안전장치(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어 조금은 덜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찻길과 플랫폼이 맞닿아 있어 죽음과 삶이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전철역 플랫폼에서는 술에 취해 오바이트할 곳을 찾지 못해 선로에 토하다가 나의 차에 머리가 맞아 플랫폼에 쓰러져 있는 승객을 볼 때에 기관사를 하는 내가 미웠고, 그쪽 방면, 제기동 방면으로는 오줌도 싸기 싫었다. 이런 일은 기관사들에겐 적지 않게 있는 일이다. 트라우마가 잠재워지겠냐마는, 사고가 나면 그날은 동료들과 술 한잔을 하고 3일 간 쉬게 하는 전통이 있다.
기관사 선임분들 중에서는 철도(기차)에서 있다 오는 분들이 많은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상자가 53명이나 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참혹한 이야기인가! 죽은 이들의 가족 중의 어떤 이는 기관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밤중에 가끔씩 전화로 원망과 저주를 퍼부으니, 신경이 쭈빗쭈빗하다고 한다. 나 역시 전화가 오면 무슨 사고가 생기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 하루 종일 전화가 오지않는 일상이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선의의 전화도 피해의식이 있는 나에게는 씁쓸하여 대인관계에도 오해가 적지 않다.
또 하나 불편한 점은 대소변 문제이다. 일을 보고 싶을 때 못 보고, 한참을 참다가 보아야 하고, 이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여 승무 생활 2년도 못되어 오줌소태가 났다. 이런 연유로 차 타는 일을 하지 않는 현명한 친구들도 있다. 나도 이럴줄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지로 대변이 마려워 지하에서 엉덩이를 바깥으로 내밀고 일을 보다 근접해있는 물체에 부딪쳐 떨어졌다가 다음 차에 깔려 죽은 사례도 있다. 내 동료요, 후배이다. 그 일이 있고부터 휴대용 간이 화장실 기구가 차에 비치되었다. 그래도 가릴 곳이 없는 투명한 유리 안에서 어쩌란 말인가.
보람으로 치자면 귀한 사람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주는 일이니, 다리를 놓아 물을 건너게 하는 일과같이 8가지 좋은 일에 해당되는 크게 복 짓는 일이다. 그러니 나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참고 해내야 할 일인 것이다. 8가지 좋은 일에 대해서는 추후에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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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56년생. 역무원과 지하철 기관사로 35년 근속 후 정년 퇴직했다. 딸(11월)이 시켜서 쓰게 된 강제 에세이. 근무 시에 적었던 일기와 기억을 바탕으로 지하철 기관사로 생계를 꾸려나갈 때 느꼈던 희노애락을 적게 되었다. 현재는 탁구 치는 재미로 사는 중.
편집 / 11월 (아빠 딸). 집에 오면 운동과 독서만 하던 아빠를 보고 자란 딸. 읽은 만큼 쓰는 것도 곧잘할 것 같아 아빠를 들들 볶았다. 누군가 아빠글을 좋아한다면 아빠도 자연스레 글을 많이 쓰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