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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브 Dec 08. 2022

비행에 부쳐

2022년 11월 5일, 3년 반 만에 샤를 드골 공항을 방문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지난 3년 반 동안 비행을 딱 한 번 했다. 올해 6월에 그리스 산토리니에 가는 비행이었는데, 그 당시 그곳에  꽂혀 있었다. 그간 바닷바람을 안 쐬었거나 해변에서 선탠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아닐 거다. 프랑스 쪽 영국 해협인 라 망슈에서 차고 습습한 겨울바람도 맞았고 보르도에서 지역 단위 기차인 TER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아르 까숑에 들러 대서양의 널찍하고 웅장함을 바라보며 텐덤 자전거도 탔고 꺌랑끄(Calanque)가 많기로 유명한 부슈 드 론느 지역 꺌랑끄 어느 한 바위에 앉아 초여름의 지중해를 바라보며 샴페인도 마셨고 여름휴가 집에서 국경만 살짝 넘으면 되어 매해 들리게 되는 스페인 북동부 코스타 브라바 지역에서 수영(?)도 하고 선탠도 했다. 프랑스에 인접한 모든 바다는 어쨌든 다 돌아본 셈이다. 코로나 초반에 이어진 전체 감금령과 그 이후에도 레벨만 조금씩 다를 뿐 코로나 관련 시행은 항상 있어서 완벽히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억눌림의 반응 현상이 아무래도 온 것 같았다. 그리스 외에도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나 포르투갈 서부도 생각해 봤는데 목적지는 서유럽을 벗어난 곳이 끌렸고 그러나 비행을 해야 한다는 점이 항상 걸렸다. 오랫동안 비행기를 타지 않은 직접적인 원인은 코로나 때문이었지만 이를 통해서 갑자기 부각이 된 인간 생활의 과소비가 주는 영향을 통해 마침 정말 이제는 개인 레벨에서도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에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무겁게 쌓여갔다. 심지어 혼자서 비행을 하게 되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 멜랑콜리가 몰려오는 부담도 있었다. 유럽 안에 머물되 서유럽을 벗어나고 언어를 전혀 알 수 없는 곳이되 바다가 있고 쉼이 가능한 그런 곳을 찾다 보니 그리스 섬들이 딱이었다. 그런데 그리스 섬들에는 비행 말고는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어서 그리스를 포기하거나 비행을 인정하거나 했던 상황이었지만 억눌렸다가 풀린 상태에서 가지 않으면 절대 가지 않을 것 같고 성수기는 아직 아니지만 유명한 관광지라 해도 많은 숙소에 개인 야외 자쿠지가 유독 발달되어 있어 "쉼"이 가능할 것 같아서 결국 눈감고 비행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유럽의 웬만한 도시는 파리 외곽 남부에 위치한 오를리를 이용한다. 산토리니도 오를리에서 출발하는 비행 편이라 샤를 드골에 갈 일이 없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이므로 6월에 오를리 공항에서 이미 여행자가 초과 이상으로 많아 패닉 상태를 보기도 했고 장거리를 한 게 3년도 더 된 데다가 여행 플랫폼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공항 패닉에 관한 정보를 익히 들은 바 있어 3시간 30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까지 자가용으로 이동했지만 토요일 늦은 오후임에도 특별한 트래픽 없이 순조롭게 도착했더니 공항이 생각보다 한가. 한국에 가는 가방 체크인하는 곳에 줄이 한참이었던 기억이 마지막인데 웬걸, 여기도 한가하다. 짐을 부치자마자 둘 다 긴 비행을 대함이 오랜만이라 불안해서 남편과는 작별 인사만 하고 커피/와인 한 잔 없이 헤어졌다. 세관 통과를 하러 갔는데 여기도 마찬가지, 줄이 거의 없다. 면세점도 한산했다. 해질 무렵의 세관을 통과한 공항 공간의 적막함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공항은 비행 이전 이별 혹은 이후 만남을 목표로 향하는 장소이기에 특유의 흥분감과 분주함이 있는 곳인데 그저 싸늘했다. 안 좋아진 경기의 탓도 체감했다. 그렇게 곧바로 커피만 한 잔 사들고 서울 편 게이트까지 걸어가는데, 어디선지 피아노 소리만 커다란 공항 내부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유니폼이 공항 직원이다. 연주를 들어줄 만했으며 여자 동료가 합류하자 팝송이 낀 즉흥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남자가 떠나고 나니 또 다른 중년의 남성이 와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는데 아니, 이 사람은 피아니스트인가. 유명하지만 쉽지 않은 클래식을 한 곡 한 곡 치기 시작했고 인텔리 스타일의 중년 남성에 대한 로망이 있어 푹 빠진 채 그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이어폰을 벗고 연주를 들었다. 공항에서의 기다림이 여유로웠다. 상황적인 적막함과 싸늘함은 비행시간이 다가올수록 본연의 분주한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착석을 한 후 한국 영화와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12시간 비행 동안 3-4편의 한국 영화를 독파할 계획이었다. 야심 찬 계획이었나. 식사를 하고 눈을 조금 부친 다음에 영화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왔다. 자리가 특별히 좁거나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웬만하면 잠에는 까탈스럽지 않은 사람인데. 피곤하면 소파에서도 잠이 들고 익숙한 곳에서는 아무리 시끄러운 청소차가 이른 아침 지나다녀도 보통 기상시간까지 문제없이 자곤 하는데. 포도주를 이미 두 잔이나 마셔준 상태이고 이어 플러그를 꼈고 피곤에 눈이 무거웠기에 완벽히 잘 준비가 된 상태인데, 눈을 감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여봐도 잠이 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온전한 자세를 찾지 못했거나 이어 플러그를 단단히 꼈어도 배경의 웅웅 거리는 모터 소리가 나도 모르게 거슬렸거나 그냥 새로운 잠자리에 적응이 안 되었거나. 그렇게 소득 없이 꽤 뒤척이다 공부해둔 한국 영화 리스트를 열었다. 일상적으로는 절대 한국 프로를 찾지 않는 사람이라 트렌드를 전혀 모르고 트렌드 프로그램 자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고 장소가 바뀌면 이렇게 쓸데없는 로컬 프로그램들을 찾아보게 된다. 영화 해외 배급에서 일하던 시절 해외 출장을 다니던 시절에도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에 도착하면 밤에 호텔에 누워 로컬 TV 방송을 시청하곤 했는데 이해를 못 해도 그 미묘한 재미가 있다. 한국은 나의 모국어이지만 3년 반 동안 밟아보지 않은 땅이므로 아이러니하게도 지역 문화를 접해본다는 비슷한 의미로 마주하는 것이다.


웅웅 거리며 고도 만 미터 이상으로 비행은 계속되고 불면증을 껴안으며 조규장 감독의 2018년 영화 목격자를 시작했다. 12시간 후면 한 달간 빠리지엔느가 아닌 서울라이트로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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