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일번과 이번을 데리고 다닌다 너는 사번 소녀다
일번은 곧고 경직돼 있고 바람에 잘 흔들리지 않는다 한번 정한 룰을 지켜나간다 그 룰이 거의 맞지 않는 상황에도 너는 그렇게 한다 어기는 날도 있다 기분이 내키지 않는 날
너는 원칙을 중시하고 그걸 어기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원칙은 너가 정했고 원칙의 기준은 너였다
비난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너의 원칙은 종종 비난 받았고 너는 거부했지만
어느 틈에 너의 기준을 되짚어 보는 날도 생겨났다
모든 각도에서 완벽하게 인간적인 원칙이란 게 얼마나 존재할까
너의 원칙은 얼마든 바뀔 수 있다
너는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지만 거의 누워있다
거의 일어나 걸을 뻔한 적도 있지만
앉는 걸로 그칠 때가 더 많았다
너는 혼자 무언갈 지켜내려 애쓰다 화가 났다
완벽하게 이상적인 원칙을 모두 지켜내지 못하다니
한탄에 굴복해 원칙을 부서뜨려 버리기도 했다
너는 세상에 선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선은 누구에게나 선했을까
너의 선에 맞춰 사람들을 재단했다
너의 선에 맞도록 사람들을 바로잡아주고 싶었다
다른 이들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너가 선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일깨워주고 싶었다
너는 너의 세상은 모두 알아야만 했다
저 서랍 속 어느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어야만 했다
아주 좁은 세상이었다
알 수 없게 큰 서랍은 무서워 열지 않았다
열 수 있는 서랍이 몇 개 남지 않았다
너의 영역은 좁아져 갔다
그리고 몇 가지 일번이 더 있었고 너를 지나치기도 했다
너의 일번에 윤기나는 잎이 돋기도 했다
너가 정해진 대로 그 일을 해도 너는 사라지지 않아
너가 남들과 같은 규칙을 지켜도 규칙이 너를 해치지 않아
부러 드러내지 않고도 너도 너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 너가 택한 곳을 향해서
너를 사번에서 꺼낼 수 있도록
거의 일번에게 가져온 것들의 목록:
- 오랜 시간 많은 이들에 의해 쌓인 데이터에 따랐을 때의 효율성
-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도 일상을 지켜갈 수 있는 강직함
- 잘못 흘러가는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
- 내면의 심판관의 목소리가 어떤지 일단 멈춰 들어볼 수 있는 선택권
- 무엇에 도달하기 위해 정제해야하는 절제력
-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볼 수 있는 객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