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5 PM10:10
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많다. (다들 이 정도는 있습니까?)
네이버 계정도 많다. 정리를 해왔지만, 문제는 박스 안에 쌓아둔 과거 수첩들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때의 내가 무얼 느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록해두고 싶다. (언제 보겠다는 것입니까?) 버리지 못하겠다. 과거의 내가 존재했단 어떤 흔적, 같이 느껴진다. 기록들이 사라져 버리면, 생각하니 두렵다. 그때 미처 다 소화시키지 못한 과거의 생각과 감정들을 좀 더 성장한 내가 알아차려주길 바라는 걸까, 왜 잘 흘려보내기 어려워하는 걸까.
오늘, 1년 넘게 포스팅하지 않았던 계정을 되살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의 한 계정을 정리했다. 결혼 직후에 시작한 계정인 모양이다. 게시글이 그리 많진 않아 잠깐이면 전체 훑어 볼만 할 것 같았다. 또 하나의 계정을 새로 만드는 대신 기존 게시글을 모두 삭제해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맘이었다. (다들 그럴 때 있습니까? 저는 종종 있습니다) 만들었던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약 5년 정도 뜨문뜨문 올렸던 글과 사진들이 거기 남아있었다. 실제 아는 지인의 팔로잉과 팔로워가 없어 답답할 때나,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세상 어딘가에 내 얘기를 해보고 싶을 때 사용하던 계정이었다. 훑어보다 나는 결국 게시글들을 지우지 않고 남겨두었다. 결혼을 하고, 퇴사를 하고, 발리로 갔다가는, 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주한, 몇 년 사이 일어난, 나의 인생의 흔적들이 거기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그때 과거의 거기에, 삶에 대해, 어떻게 살지에 대해,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던 내가 있었다. 고마웠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로부터 쌓아져 올려진 것이었구나, 그런 고민들이 없었다면, 답을 찾아보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는 마음을 먹던 그 애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모습, 혹은 예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나의 고민의 흔적을 어딘가에 남겨 두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