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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의식 Dec 11. 2022

11/ 친절한 사람

22/12/11 PM9:45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때의 만족감에 대해

최근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물론 이전의 나도 친절한 구석이 있었다. 

에디터들에게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일을 하며, 참 이쪽 일 하는 사람 같지 않네요, 라는 말을 종종 듣고 했다. 그냥 그렇구나, 다른 기자들이랑 느낌이 좀 다른가 보다, 하고 말면 좋았겠지만, (이미지유형의) 전형적인 습성으로 남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에 크게 흔들리는 인간이었다. 

난 좀 다른, 특별한 인간이구나, 하는 칭찬이길 바라는 마음과, 그래서 나는 이쪽과 어울리지 않다는 건가,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비꼬인 마음이 엇갈리다 결국엔 떼어낼 수 없게 엉켜버려 그저, 나는 그저 남들과 좀 다른 것 같군, 하는 마음만 한 덩이로 남게 되고, 그 과정은 잊어갔다. 


그러니까 나는 친절한 편인 인간이었다. 

거기엔 좀 과한 면이 있었다. 억지스러운 친절, 주체적이지 못해 친절로 위장한 모습, 배려를 내세워 늘 선택권을 상대에게 넘겼다.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책임에서 벗어나 보려는 시도였던 걸 나중에 알았다. 그러면서 불만으로 가득했다. 인간이란 존재들은 모두 자기만 생각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들이 모두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게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그때의 친절은 힘이 없었다. 


카페의 사장이 된 건 2년 전쯤 일이다. 

처음엔 부족하기만 한 공간으로 전혀 인연 없던 사람들이 찾아와 주는 게 몹시 고마웠다. 처음 들어보는 사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어색했지만, 최선을 다해 친절했다. 그때의 친절은 고마움의 표시였다. 인간에게 동일한 일이 주는 감정이 늘 같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몇 배는 밋밋했을 거다. 각기 다른 손님을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자 고마운 감정이 희미해지는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예측할 수 없게 사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두려워 숨고 싶었다. 본래의 시니컬함이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개인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을 때, 눈처럼 소복하게 쌓였던 고마운 마음이 공기 중으로 마구 흩어져 자취를 감췄다. 배려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대해야 할 때, 바닥난 고마움 위로 분노가 덮였다. 그때의 친절은 억지였다. 억누르는 화난 마음 사이로 채 숨기지 못한 모난 말투가 불연 듯 튀어나왔다. 그리곤 미안했다. 어쩔 수 없었다. 합리화를 해봐도, 상대 탓을 해봐도, 불친절한 말과 행동 뒤에는 자괴감과 후회, 두려운 마음이 켜켜이 한 곳에 쌓여 뭉쳐졌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불친절한 나는 별로 였다. 


파트3 수련을 참가한 후 내 안에 뭔가 묘하게 좀 바뀐 느낌이 생겨났다. 이것이 영구적 일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긍정적인 변화들을 많이 느낀다. 찐득한 것만 같은 신성한 물을 퍼 머리 위에 붓는다. 거기에 구석구석 있던 먼지들이 씻겨 나간 느낌, 좀 더 개운해진 느낌이 든 달까, 처음 경험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다른 수련 후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씻겨 내려간 듯했다. 수련 직후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갈 힘이 쎄지는 건, 아마 지속적인 명상 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그런, 환희의 경험과도 비슷할 수 있겠단 생각을 이번에 했다. 물론 (더 이상의 개인 수련을 보태지 않은 채) 그대로 두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과거의 습관대로 행동하는 나로 돌아가는 건 급행열차 속도라는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이 기간을 충분히 만끽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지금 나는 아주 친절하다. 

그리고 친절하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내적인 만족감이 채워지는 게 느껴진다. 

좀 더 깨어있는 정신으로 그런 만족감에 대해 바라보려고 한다. 

습관적이나 의무적인 친절이 아닌,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 사람과의 교류에서,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교감에서 흘러나오는 즐거움을 친절이라고, 부른다. 그저 한 사람과 소통한다. 소중한 한 사람을 대한다. 


제3의 존재와 오고 받는 친절은 노력하면 그럴듯해 보일 수 있다. 정말 어려운 친절은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이다. 거기부턴 찐, 이다. 거짓은 없다. 의식하지 못한 채 습관대로 불친절할 확률은 급 상승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흡사하다. 


나는 나에게 얼마나 친절할까? 


늘 이 질문 앞에 화들짝 놀랐다. 내가 나에게 친절할 수 있다니. 당연한 것 같지만, 정말 어려운 일. 인식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친절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놀랄 일인지. 정말 신기한 건, 자신에게 친절한 마음을 의도적으로 수용한 후 “연습”하면, 자연스럽게 남들에게 친절해진다. 이걸 경험하는 순간마다 아, 하고 작게 감탄한다. 그 자연스럽고 진심인 친절은 결국 나를 위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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