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하루 남았다.
22/12/30
연말을 맞아 추욱, 늘어지는 몸과 마음.
한두 해 동안 코비드19의 서포트를 받으며, 강렬해진 절제력으로 조용한 연말을 보내왔다. 참 만족스러웠는데, 불쑥 외로움,이란 감정이 찾아 든 모양이다. 외로움이야, 거의 나란 존재와 한 몸 같았지만, 덜 외로워지는 경험을 해보니, 외로움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닫혀만 있던 문이 열리는 모양이다. 마음처럼 부드럽게 부드럽게 조금씩 조금씩 열려 나갔으면 좋으련만, 크게 꽝 열렸다가, 꽝 닫혔다가 몇 번이나 쿵쿵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원하는 만큼 열리고, 닫히는 것이 ‘스무스’해질런지. 올해 연말은 뜻했던 모임도, 뜻밖의 만남도, 뜻하지 않았던 자리도 늘어간다. 그 결에 몸과 마음은 들뜨고 피곤하다.
피로를 몸으로 느끼노라면, 나는 방어적으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예민해지는 걸 느낀다. 그리곤 자연스레 행동이 정지된다.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에너지를 비축하려고 한다. 결심했던 12월의 의식도 어느 순간 정지되었다.
어제는 주문을 외우듯 쉬었다.
‘오늘은 죄책감 느끼지 않을 거야, 최소한만 움직일거야, 쉴거야, 자책하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내가 참 잘 쉬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게으름의 안엔 늘 자책하는 마음이 웅크리고 있었다. 잘 쉬었다기 보다 잘 멈추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얘길 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었는데,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잘 쉬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었다.
에니어그램 상담은 자연스레 어떤 생활 방식의 제안으로 이어지곤 할 때가 많다. 아주 식상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 들어야 하는, 그런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잘 쉬셔야 해요, 자신을 위한 일을 해보세요, 운동을 하시는 게 도움이 많이 돼요, 같은 말들. 기본적인 일들이지만, 자주 잊곤 하는 일들.
그리고 때론 사람들에게 했던 내 말이 문득 내가 나에게 하는 순간이 생긴다. ‘결심한 일을 지속하기 어려우시면, 또 못 하네, 하고 자책하는데 시간 보내는 대신, 다시 결심하고 다시 시작하시면 되지요’ 그 쉬운 말을 내가 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식.
그냥 시작하는 게, 나란 사람에게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만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식을 공식처럼 외워 둬야한다. 일단 이런 모든 생각들을 모두 멈추는 것이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식이란 걸 알게 됐는데, 역시 알지만 잘 되지 않는다. (!!!)
생각을 멈추게 하는 데엔 몸을 움직이는 것만한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겨울이라 그렇다, 너무 춥다, 그래도 꼼직 꼼직 움직일 용기를 내봐야지, 동그랗게 웅크리고 제일 따뜻한 이불 속에만 웅크리고 있고만 싶지만, 해가 뜨는 걸 보러 가기로 결심한다. 그런 계기가, 그런 움직임이 필요한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