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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의식 May 16. 2019

서귀포로 이사를 했다

나 어디에 있는 거지? :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사가 끝났다.

한 달 사이에 모든 일이 일어났고, 나는 제주도로 터전을 옮겼다.


오래전부터 나는 제주도에 살고 싶은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여전히 막연하게 바라기만 했던 나보다 남편은 행동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은근한 압박을 느낀 남편은 제주도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봤고, 그럼 그렇지, 무산된 줄로만 알았던 곳에서 면접을 보러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게 한 달 전의 일이다.

급하게 내려와 면접을 본 이후 우리의 인생 방향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면접을 본 곳에서는 약 한 달 정도 후 출근해주길 바랐고, 우리는 그 사이 제주로 이사를 했다.


서울시에서 태어나 서울시에서만 주욱 살아왔던 나는,  

이 사실조차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깨달았다. 나는 경기도에서도 살아본 적 없었다.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도시 촌뜨기였던 거다.

(그래서 발리에서 그리도... 서울을 그리워했던 모양인가!)


제주 서귀포 대정읍.

우리는 이 마을에 살 집을 마련했다.  4월에서 5월로 넘어오면서 대정읍에는 마늘 수확이 한창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바다, 그리고 마늘 밭으로 가득한 조용한 동네다.

남편의 새로 얻은 직장에서 출퇴근하기 적당하고, 집에서도 바다가 보이고, 깨끗하고 조용하며, 우리가 가진 금액과 절충되는 알맞은 집을 구해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했다. 서울에 꾸렸던 신혼집에 엄청 만족하며 살았던 우리지만 이제 이곳에 정을 붙이기 시작하고 있다. 여행 왔을 때와 다르게, 옷뿐만 아니라 내가 쓰던 침구, 그릇,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들이 모두 여기 와 있으니 이제는 진짜 여기가 내 집인 거구나, 엉뚱하게도 그게 하루에도 몇 번씩 신기하다.

마음이 느긋해지고 싶으면 찾았던 여행지가 이제는 내가 사는 동네가 된 것이다.


청소하다 문득 허리를 펴면, 나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밥을 먹다 창 밖을 내다보면,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이제 일주일째, 나는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내가 아직 신기하기만 하다.


집 근처에 나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했다.

오래 해온 일을 벗어버린, 남편과 나는 각각 제주에서 새 일을 시작했다.

남편도 나도, 원하는 대로, 보수는 아주 적지만, 근무시간이 짧은 곳에 취직했다. 남편은 8시에 출근해 5시에 일을 마치고 해가 다 지기 전에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최저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구한 나는 오전 8시 30분에서 오후 12시 30분까지 평일에만 하루 4시간씩 일을 한다.


많은 변화가 한꺼번에 생겼다.

동네도 집도 바뀌었다. 차가 생긴 것도 생활에 변화가 컸다. 대중교통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하지 않고 생활해왔던 우리였는데, 제주는 날씨나 지형 때문이라도 사륜구동의 차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렌터카로 제주 여행을 했던 것과 또 달랐다. 새로 들인 중고 지프로 우리는 제주 도로를 달리며 “우리 여기 사는 거네, 우리 동네네!!” 한번 더 얘기하면 몇 번째인지도 모르는 질문을 묻고 또 묻고 했다.


새로운 업무도 익혀야 했다. 아르바이트의 첫 출근을 한 나는, 아르바이트도, 새로운 일을 배워보는 것도 모두 십 년 넘어 처음 해보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아아 20대 초에는 정말 화려한 아르바이트 경력을 자랑했는데! 몇일째 실수 연속, 모든 게 이리 어설픈 내가 또 낯설다. 이제 난 자전거 타는 법도 연습해야 하고, 운전 연수도 받아야 한다. 도시녀의 굴욕이 계속된다.


그래도 일주일이 넘어선 오늘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신기하고, 감탄한다.

반짝이는 저 바다를 매일 볼 수 있는 것도, 마늘을 수확하는 주민분들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해가 지면 핑크빛으로 물드는 하늘을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는 것도,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새들이 지저귀고 개들이 찢어대는 소리가 더 큰 것도,

매일 감탄한다.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나는 얼었던 마음도 조금씩 녹아가고 있다. 사람 마음이 참 쉽게도 변한다. 이젠, 일 년만 계획하고 올 일이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서울과 가깝지도 않고,  

단골집이나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주도는 언제나 여행지이자 타지에 불과했는데,

진짜 이뤄질 줄 모르고 말로만 열심히 떠들던 오랜 바람이 어느 날 후다닥 이뤄졌다.

어느 날, 우리 동네 풍경이 익숙해 이렇게 감탄하는 법도 잊게 될 날이 오겠지.

아직은 하루하루가 낯설고 여행 같은 기분이지만, 여기서 만나게 된 제주 사람들은 얘기한다. 곧 그 풍경마저 일상이 되어 간다고.

하지만 아직은 매일 달라지는 마늘밭이 신기하기만 하고,

(푸릇푸릇 줄기가 무성했던 밭에 며칠 동안을 마을 주민들이 여럿 모여 함께 수확하시더니, 이제는 마늘이 뽑혀 누워있고, 며칠 지나 바싹 마른 마늘들로 뒤덮이고, 곧 빨간 자루 자루마다 마늘들이 담기고 있다)

지나다 만나는 어르신들에게 어색하게 인사하는 초보 제주 이주민을 잠시나마 즐겨볼 예정이다.



2019. 05. 10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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