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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의식 May 18. 2019

서울에서 제주로의 이사 여정

바다 건너 이사는 처음이라,


막연하기만 했다. 이사는 몇 번 해봤어도, 제주도로의 이사라.


이삿짐센터에서 온 트럭에 짐을 싣고 한 시간 안에 옮겨가는 이사는 하루 만에 끝나곤 했다. 바다 건너 제주로 가는 이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제주 이사 전문 업체가 있었지만, 실직 상태로 몇 달을 보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몇백만 원부터 시작했다.

세심한 정리까지야 물론 시간이 걸리지만 하루 만에 끝나지 않는 이사, 이 짐들을 단번에 옮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다행히 먼저 제주에 터를 잡은 친구가 있어 조언을 구했다. 친구의 경우, 그리고 온라인 카페의 경험담을 훑어본 결과,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 짐 대부분을 보낸다고 했다. 박스를 구해야겠구나.

 

우린 우선 부피가 큰 가구와 가전을 제주로 옮기는 건 포기했다. 그리고 1년간의 유예 기간을 뒀다. 서울의 집을 처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발리에서의 경험 때문에 나는 사실 두려운 마음이 컸다. 그렇게 바라던 바이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어떻게 받아들일지 예측되지 않았다. 발리에서의 마음고생이 제주도에서라고 없을까. 완전히 제주로 오기 전까지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

 

먼저 터를 잡은 사람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걱정은 한층 더해졌다. 제주는 도시인 서울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자연과 한층 가까운 건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건 벌레나 습도 같은 생활환경에 차이가 크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문화, 의료 등의 혜택이 뒤처지는 한마디로 '시골'이자 '섬'인 것이 제주에서 살아가는 현실이라 겁을 줬다. 한껏 겁먹은 나는 조심스레 발을 더듬더듬 닿아보는 겁쟁이 쫄보가 됐다.

 

해서 우리는 발리보다 좀 더 오래 여행을 떠나는 느낌으로 이사를 준비했다. 포장 이사만 해본 도시 부부는 난생처음 하나하나 정리하는 셈 치고는 택배 박스에 짐을 넣었다. 한 달 가까이 집은 엉망이었다. 출근 때문에 먼저 제주로 내려가야 하는 남편과 서울에서의 남은 일정을 정리해야 했던 나는 열흘 넘게 차이를 두고 생활 터전을 옮겼다. 그 때문에 이사는 더 복잡해졌다. 제주도에서 살아야 하는 남편에게 필요한 것들과 서울에 남아 있는 동안 살아가야 하는 나를 위한 생활용품을 분배하느라 애를 먹으며 짐을 싸 보냈다.

 

몇 차례에 거쳐 20박스가 넘는 택배를 보냈고, 일부 짐들은 새로 산 차에 실어 배로 보내기로 했다.


택배 외에 두 번째 제주로의 이사 팁tip이 바로 '배'였다. 자동차를 보내야 할 경우 완도까지 차를 몰고 가 배편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우리 소유의 차가 없었지만 대중교통만으로도 그리 큰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의 사정은 달랐다. 이주민 대부분이 자가운전을 한다. 내려올 준비를 하며 운전은 자전거 운전도 못하는 나는 몇 번이나 꿈을 꿨다. 낯선 곳에서 집에 찾아가는 꿈. 이동하는 게 그리도 걱정됐다. (실제로 버스로만 다니기에는 쉽지 않다. 요새는 열심히 걷고 있지만)


그리하여 우리는 이사 준비를 하는 사이 급하게 추천받은 사륜으로 중고차를 구입했고, 이 차에 내려가 바로 사용할 짐들을 실어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운전에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도까지 차를 몰고 가는 건 큰 부담이었다.

알아보니 탁송 서비스가 있었다. 배정된 기사님이 차를 픽업해 주고, 배에 차를 실어 보내면, 제주도에서 또 다른 기사님을 차를 이어받아 원하는 곳으로 가져다주는 것. 하루 만에 완도까지 갈 엄두가 안 나던 우리는 1박 2일 여정의 숙박비나 밥 값을 계산하다 탁송을 맡기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 보내는 차에 운전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짐을 가득 싣었다. 며칠에 거쳐 정리한 짐 중 몇 가지 가져갈 만한 제법 큰 가구와 택배를 보내기 어려운 매트리스 같은 침구, 깨질만한 유리로 된 것, 택배 불가한 짐들을 선별에 차에 차곡차곡 싣었다.

 

긴 여정이 끝나갔다. 서울에서 제주로 떠나는 저녁 비행기를 예약한 나는 전날 밤까지 덮고 자던 이불을  포장해 마지막으로 택배를 보내고, 꽁꽁 싼 김치 등 남은 짐들을 트렁크 가득 실어 집을 나섰다. 저녁 6시 05분 비행기, 어둑해진 제주에 도착했더니 부슬부슬 비가 흩뿌렸다. 남편이 먼저 터를 잡은 새 집에 도착하자 마냥 낯설었다. 에어비앤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내 집도 아닌 것 같은 묘한 기분에 쫄보는 한껏 더 움츠러들었다.



 이사를 오고 며칠 동안 서귀포 날씨는 좋지 않았다.

날씨 좋아 제주에 산다는 이들도 있던데, 강풍 주의보에 심심하면 비가 흩뿌렸다. 마음도 찌뿌둥했다. 다시 제주에서의 이삿짐 정리가 시작됐다. 여기가 어딘가 싶게 하루종일 새 집안에만 틀어박혀 며칠간 이삿짐을 정리해 넣었다. 마지막으로 보냈던 택배가 도착하기까지 또 며칠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한 일주일 정도에 거쳐 이삿짐 정리를 마무리지었다.


걱정스러운 마음과 낯섦, 그리고 며칠 뒤 출근하기로 한 새로운 곳의 아르바이트 일정까지 나는 한없이 무거웠고, 한동안 떨어져 있던 남편과도 오해가 쌓여 서먹해졌다. 각자의 환경에서 정리하고 적응하던 나와 남편은 둘 다 나름대로 힘에 부쳐 있었다. 여기가 제주면 뭐하고, 인생을 새로 설계해 뭐한담, 난 이렇게 감흥이 없는 걸, 한없이 예민해지고, 창 밖에 바다에도 마음이 멍하기만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정리는 어찌 됐든 되어가고,

짐을 점검해 싸던 시간보다야 풀어 제 자리를 찾게 하는 시간이 덜 걸리긴 했다. 그에 맞춰 제주 날씨도 화창하게 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남편과 나의 오해도 하나씩 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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