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구의식 May 21. 2019

제주에서의 조금 다른 인간관계

 제주에서 집구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던데? 


제주에서 맺은 첫 번째 인연은 부동산 중개인 소장님과 집주인 아저씨였다.


이사 준비를 하며, 

제주에 집을 구하기 위해 오전 6시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 

(한달 사이에 우린 거의 4번 정도 서울-제주를 왕복한 것 같다) 

이미 온라인을 통해 여러 집을 봐둔 상태였고, 선별한 세 곳의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기 위해 

우린 1박 2일의 여정을 온 참이었다. 


남편과 나는 이번 일정으로 집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큰 기대는 갖지 않기로 했다. 제주에서 집구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이번에 못 구하면, 다시 한번 내려올 각오를 하고, 길을 나선 참이었다. 

일단 서울에서 대략의 시세를 익히기 위해 온라인 서치를 했다. 처음엔 정말 막막했다. 서울에서 새 집을 구할 때 주로 사용하던 직방이나 다방 같은 어플리케이션에서는 제주도에 나온 집을 알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알아보니 제주도에서는 네이버 까페나 '오일장신문' 이라는 제주 자체 생활정보지가 활발히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 역시 그곳에서 집을 보고 마음에 드는 몇 곳을 골랐다. 



첫 번째 중개인과의 약속은 아침 10시. 

공항에서 서귀포까지 내려왔는데도 9시가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약속 장소 근처에 렌트한 차를 주차하고는 한숨 잠을 청했다. 이날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자던 우리를 깨운건 풍랑주의보 경고 알림 문자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엄청난 강풍 속에 만난 중개인은 약속했던 집을 보여줬지만, 

우린 생각보다 너무 넓은 집이 부담스러웠다. 

넓으면야 좋지만, 당연히 가격이 높았고, 우린 가격을 낮추고 더 아담한 집을 구하고 싶었다. 


중개인은 마침 근처에 자신이 아는 분이 부동산을 하신다면서 다른 중개인을 소개해주겠노라 하셨다. 

이때도 마음 한켠에서 어랏, 싶었다. 한 골목에만도 공인중개소가 몇 개는 있는 서울 동네의 부동산끼리는 경쟁이 꽤 치열한 걸 느껴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뜻 다른 곳을 연결시켜 주시는 게 신기했지만, 자연스럽게 우리는 가까운 부동산으로 안내를 받았다. '언니'라는 호칭과 함께 두 분이 꽤 오랫만이신지 반가운 기색이 가득했다. 다함께 믹스 커피 한잔씩을 마시며 가벼운 질문들이 오갔다. 유난스러웠던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는 데, 웬지모르게 마음까지 뜨뜨해졌다. 


제주 부동산 소장님, 

이렇게 인연을 이어받은 새로운 부동산의 소장님은 

대략의 우리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첫 번째 집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셨다. 동이 2채인 5층짜리 빌라였는데, 이 빌라에 빈 집 2곳을 보게됐다. 헌데 우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 빌라의 두 집을 보자마자, 가격대와 위치, 전망, 옵션, 관리 상태 등등 모든 세부 사항을 아무리 따져보고, 단점을 일부러 찾아보아도, 이 집이 마음에 들었던 거다!

우리는 너무 의아했다. 

물론 한참 더 오래 전의 일이고 매매를 원한 사람이었지만, 누군가는 한달 가까이 집을 찾지 못해 서울로 돌아갔다 다시 내려왔다는 얘기도 들어봤다. 우리가 단 두 곳을 보고, 최종 결정을 내려도 될까? 


혼란스러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부동산 소장님은 

일단 천천히 점심을 먹고 생각해보고, 남은 집들도 보고 결정하라고 하셨고, 

우리는 홀린 듯 일단 점심을 챙겨먹었다. 

그러고도 우리는 그 집이 맘에 들어서, 이래도 되는 걸까, 자꾸 의심이 들었다. 


방 2개에 20평 미만의 집을 원했던 우리에게 그 집은 무엇보다 가격이 적당했다. 

우리는 보증금이 높더라도 연세를 줄이고 싶었지만, 제주도 대부분의 1년 집 렌트 가격은, 

보증금이 100만원 미만, 년세가 1천만원 전후가 대부분이었다. 한달살기, 일년살기의 열풍으로 높은 년세를 받는 곳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사실 온라인으로 미리 보고 온 집들 역시 대부분 그 가격대였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 한켠이 무거웠었다. 헌데 이 빌라의 경우 연세가 보통보다 낮고, 보증금이 높은 경우였다. 


우린 다음, 그 다음 약속한 부동산으로 전화를 해 

새로 본 집의 연세를 말하며, 우리 조건의 집을 추가로 더 보여주실 수 있는지 문의했고, 

답변은 모두 '없다', '요즘 제주에 집이 많이 없어요'라는 말이었다. 결국 우린 두 번째 본 이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 지금 살고 있는 바로 이 집이다. 


집 주인 아저씨, 

이 빌라의 주인 아저씨는 이런저런 사업을 하시다 가족과 제주에 정착하신지 십여년이 되셨다고 하셨다. 

아직 도시의 세련된 멋을 다 벗어 던지시진 않으신 사장님은 

만나자마자 우리에게 많은 조언들을 해주셨고, 우린 서울에서와 달리, 재미있게 말씀을 들었다. 

하루는 사장님 집에 불려가 이웃이 수확한 양파 몇 알을 얻고, 

1시간 가량 사장님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돌아오기도 했다. 이 분도 참 파란만장하게 사셨다, 누군가의 인생이란 돌아보면 이렇게 다들 오색찬란하다. 헌데, 50-60대 사이 쯔음인 한 아저씨의 인생을 이렇게 앉아 들어본 적이 있던가? 


우린 서울에서 참 폐쇄적으로 살았다. 

옆 집에 사는 이들은 간혹 인기척으로만 존재감을 느꼈고, 윗집 이웃과는 층간 소음으로 얼굴을 익혔었다. 나는 지나가다 길에서라도 누가 나에게 말을 붙일까봐 두려웠다. 내 소중한 시간을 앗아가는 타인은 귀찮고 두려운 존재이기만 했으니. 나에게 분명 원하는 것, 앗아가고 싶은 것이 있는 이들만이 나에게 접근하는 것이 서울의 거리였다. 난 그들에게 얻을 것이,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냥 지나쳐주길, 모르는 척 해주길 바라며 살았다. 낯선 사람이 웃으면서 인사만 해도, 무서워지는 곳 아니던가. 


여기에선 그렇게 살 수 없을거다. 

제주에 이주해 오며, 막연하게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걸 느꼈다.

그건 나의 살아가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이웃 주민의 관심은 뭐 도와줄 것 없나,하는 오지랖일 가능성이 더 높다. 서울에서 사람을 대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굳이 제주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35년 넘게 그 방식으로 살아온 우리가 받아들이기 쉬운 방식은 분명, 아니다. 내성적인 편인데다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편에 가까운 남편과 나는 타인의 관심을 몹시 부담스러워하는 타입이고, 가깝게 지내는 지인 몇몇과 소통하는 편이었다. 


주인 아저씨의 기나긴 인생 스토리를 듣고 집에 돌아오니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우린 고개를 절레절레했지만, 그래도 웃음이 났다. 듣고 배우고 느끼는 점도 있었다. 

그만큼 조금의 시간 여유,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거겠지, 안도했다. 

한 켠엔 그 분의 도움이 필요한 마음도 무시할 순 없었다. 읍 사무소가 어디있는지는, 검색이라도 해보지만,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면 좋은지는 우리끼리 알아내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동네에 그래도 우리 얼굴을,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무슨 일을 하며 여기서 살아가려 하는지, 알고 계시는 소장님과 주인 아저씨가 있다는 게 알게 모르게 든든해져버렸다. 


이것저것 묻는 것에 상세히도 알려주시던 주인 아저씨는 요즘도 직접 수확한 호박 하나를 건내주시거나, 동네 목욕탕은 어디가 좋은지, 무료로 운동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어딘지, 팁을 하나씩 방출해주시고 계신다. 


 

 

다음 인연으로 이어집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에서 제주로의 이사 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