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시'는 유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by 무구의식

어렸을 때부터 '시'와는 거리가 있었다.

왠지 오글거리는 유치한 느낌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시를 멀리했다.

당최 무슨 얘기인지, 내 집중력과 상상력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몇 해 전,

무슨 마음에서인지 시집 한 권을 구입했다.

이유는 시인과 내 나이가 같은 것뿐이었다.


시란,

흰 수엽 덥수룩한 할아버지나, 아주머니들이 즐기는 문학이라 여겼던 나에게 꽤 센세이션 했다.

같은 세대를 살아온 이들 중 시를 쓰는 작가들이 분명 존재하다는 건 사실이지만, 의아했다.


산문 같기도 하면서 은유적이고 자유로워 보여서,

몇 개의 문장들이 만들어낸 한 편의 시, 라는 것에 새롭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장편도 있지만 난 간결한 시에 더 마음이 끌렸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공감과

보편적인 외로움, 그늘, 체념 같은 감정들을

이런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해 협재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오래 침묵했고

과거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조금 안도했습니다.


박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리고 덧붙여

여기 남기려는 기록은, 인상적이었던 허수결 시인이 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해설문 중 발문이다. 시집의 끝부분에 수록되어있다. 잘 쓴 해설문은 그 자체로도 돋보이는 작품 같을 수 있구나, 생각이 들어 인상적이었다.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며 시인은 시를 쓰네


...(중략) 그렇지만 우리는 농담스럽게 이 세계를 통과하기를 바랐다. 농담은 우리의 허브였다. 우리의 존재를 아주 조금이나마 밝은 곳으로 견인하는 식물의 향기. 괴로움의 상태를 벗어나게 해주는 순간의 칼피스로서 우리는 이 시대, 농담을 이해했고 심지어 사랑했다....(중략) 농담은 신보다 우리를 더 오래전부터 위로해주었으니. 이것은 불편한 세계를 받아들이는 한 방법이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서로 핏속의 염분이 비슷하다는" 당신을 향하여 시를 쓰는 방법이다.


...(중략) 종이라는 물질은 자연과 인간의 실용적인 과학적 예감이 교차하면서 만들어진 모든 글 쓰는 인간의 로망이다. 인간이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기억을 온전히 잊어버리고 난 뒤에도 그 로망은 인간의 몸의 기억 속에 머문다. 연필로 종이 위에 오래 글을 썼던 손가락은 튀어나온 근육으로 그 시간을 증언한다.


<변신>(카프카)에 등장하는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신한 채 아버지가 던진 사과를 등에 얹고 말라죽어가는 그 세계.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벌레로 변한 것처럼, 어느 날 우리는 어떤 곳으로부터 어떤 시간으로부터 '사람'으로 변신되어 툭, 떨어진다. (중략) 어떤 의미에서 시는 모든 유사 신화의 현장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이 낙낙한 시간, 우리는 그만 이 불편한 세계와 화해하고 싶은 생각을 한다. 그 뒤에 올 시간이 폭풍의 손아귀로 우리의 어깨를 후려칠지라도. 세계야, 세계야, 불편해서 나는 앓았으나 앓으면서 이런 모습도 보았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중략) 그러니 세계야, 나는 널 버리지 않을 거야, 나의 간절한 것 등의 깊은 눈을 모아다가 그냥 시를 쓸 거야. 그러니 세계야, 계속 날 불편하게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