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로드킬 신고 064-120
제주로 내려오면서 가장 염려했던 건, 벌레였다.
발리에서의 고난으로 벌레와 함께 살아갈 두려움을 한껏 키웠던 난,
잔뜩 긴장한 채 제주에서의 일상을 시작했다. 제주에는,
벌레가 정말 많은 게 사실이었다.
그치만 의외로 해충으로 여기는 벌레는 드물다. 사람을 물기도 하기 때문에, 지네가 가장 문제인 것 같고, 올여름은 모기의 공격도 잘 넘긴 편이다. 대신에 곤충으로 분류하면 좋을만한 각종 벌레들이 정말 많다. 살아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거미(거리를 걸으면 거미줄에 정말 자주 걸린다), 이름 모를 곤충들이
열심히 자기 인생을 산다.
이젠 제법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서, 거의 매일 보는 버스 정류장 천장의 거미가 태풍 후 사라진 날엔,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벌레보다 처음에는 새에 놀라는 일이 더 많았다.
제비는 어찌나 많고, 어찌나 빠르고, 낮게 나는지
언제이고 고터나 신도림 지하철에서 사람과 부딪히듯 무심히,
제비랑 부딪히는 날이 와도 하나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길에서 죽은 새들을 정말 많이 맞닥뜨렸다.
그럴때마다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커다란 콘크리트 벽에 부딪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놀라고 화가 나고 불쌍하고 억울했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면서 앞으로의 걸음걸음마다 바닥의 검은 자욱들 하나하나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이런 게 일종의 트라우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병아리만한
작고 예쁜 새들이 죽어있을 때마다
누군인지 모를 어떤 인간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일어났다.
그건 정말 막연한 감정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곳에서 어느 누구도 고의로 새를 죽여 거기 눕혀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다달았다.
새가 죽을 수 있는 이유는 다양했던 거다.
제주는 바람이 세다. 꽤 큰 새가 날개를 쫙 펴도 바람이 세면 날지 못하고 주저앉는 걸 봤다.
작은 새들이라면 바람이 더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을 거다.
아무리 실력좋은 비행가라도 실수하듯, 달리는 차에 부딪히는 경우도 많을 테지.
동물이든 인간이든
예상치 못하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긴, 자연에 더 가깝고, 그만큼 죽음을 포함한,
어떤 자연의 순리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도 외면했던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조금은 준비가 되어가는 것 같다.
제주에 산지 한 한 달이 안 됐을 무렵이었다.
아침 출근길, 매일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제주는 내리는 문이 따로 없는 버스가 아직 많다. 앞문으로 내리는 승객이 다 나가길 기다린 다음,
기다리던 승객들이 버스에 올라탄다.
내가 내리지 않고 앞문에 그대로 서있자, 버스 운전사가 힐끔 눈치를 줬다.
아아 저기, 웅얼거리면서 내리지 못했던 건,
버스 정류장 바로 앞 도로에 고양이가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처음엔, 누워 노는 중인 철없는 녀석이길 바라며, 자는 건가 의심한다.
하지만 심장이 먼저 뛰기 시작하는 걸 보면, 직감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제주의 길개나 길고양이들은 거의 사람에게 다가오는 법이 없다.
예민한 고양이들이 거기에서 죽은 듯 자고 있다는 건,
실제로 죽었다는 거다.
동물의 온전한 사체를 처음 본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곤 제주에 먼저 살기 시작한 친구에게 들었던 대로 지역번호-120으로 전화를 했다.
그 신고는 나를 위한 거였다.
그때 나는 그만한 충격을 감당할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직원분에게 로드킬 고양이를 신고하고 싶다고 얘기하자,
그 분 목소리가 안타까운 톤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의도치 않게 울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직원분은 전화를 줘서 고맙다고 얘기한 후, 정확한 위치와 연락처(추후 위치 확인을 위한),
개인정보 동의 여부를 묻고 신고를 접수해줬다.
의도치않게 꺽꺽 거리며 울음이 나는 걸 참고 얘기하는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다시 이상하게 들렸다.
신고를 하고 본격적으로 나는 울면서 아르바이트를 갔다.
나중에서야 그게 일종의 마음 치유 과정이라는 걸 알았다.
어떤 조치도 없이 지나쳤다면, 마음에 더 오래 남았을 거라 생각한다. 했었어야 할 일을 그냥 지나친 나는 누구에게 보이는 내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나에 대해 조금은 실망했을 거다. 트라우마도 더 오래갔었을 거다. 며칠은 길을 다니기 겁났다. 무얼 볼지 무서웠고, 비슷한 크기의 형체만 있었도 마음이 쿵쾅거렸다. 무엇보다 같은 버스 정류장에 내리기가 무서웠다.
그곳의 붉은 자욱이 사라지는 동안, 좋은 곳으로 가기를, 조금은 더 평안하기를 바래줬고, 마음에서도 서서히 그 장면이 흐려져갔다.
여행 어느 곳을 가나, 길에 주인 없는 개나 고양이가 있었다.
제주에도 떠돌이 개들이 정말 많다. 마주칠 때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뭐 하나 챙겨주기에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아이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다닌다. 목줄이 아직 묶여 있는 아이들도 많다. 그 옥죄고 있는 목줄이라도 풀어주고 싶은데.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고양이들이 매우 도도하게 길을 건넌다는 거다. 큰 도로에도 지나는 차가 없을 때가 많은 제주에는 대부분의 차들이 쌩쌩 달린다. 그나마 도로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보고 건너는 녀석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고양이는 모양 빠지지 않게 꼬리를 들고 사뿐사뿐 길을 건넌다. 저기 멀리 차가 달려오기라도 치면 숨이 턱 막히는 건 나뿐인지,
아찔한 순간마다 고양이들에게 조심해 다니라고 고함을 질러봐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며칠 전엔 자주 오가던 동네 도로에
처음 보던 흰 개 두 마리가 나타났다. 비슷하게 생긴 두 마리가 지나는 사람에게 멍멍 짖고 있었다.
먹고 있던 식빵 봉지에서 두 장을 꺼내 내미니까 나에게도 짖기 시작했다.
바닥에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돌아보니 천천히 다가가 빵을 먹고 있었다. 쨔식들, 먹을 거면서.
둘이 꼭 같이 다니는 걸, 며칠 같은 자리에서 봤다. 남편도 봤다고 한다.
한 번은 차로 그 길을 지나는데, 녀석들이 도로 한가운데,
우리 앞 차 가까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정말 가슴이 턱 막히는 장면이었다.
아직 차 무서운 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만큼 배가 고픈 건지,
인도에 가면 차로 몰려든다는 아이들처럼,
차 주변에 다가가 뭐라도 달라는 몸짓이었다.
차문을 열고 차 조심하라고 소리를 질러주는 것 밖에 못했다. 소리지르는 나를 보던 어리숙하던 그 착한 표정이 아직 생각난다. 이유는 모르고 자기에게 화를 낸다고 생각했겠지. (미안...)
그다음 날 그중 한 마리가
매일 있던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누워 있는 걸 봤다.
아 말썽이들, 잰 왜 저기서 자고 있나, 싶었지만 거리의 개치고, 자는 거라기엔 지나치게 평온했다.
다가가지도 못하도 멀리서 한참 관찰했다.
결국 불러봐도 미동도 없는 녀석을 보고 후회막심했다. 미리 보호소 같은 데에 연락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120으로 또 한 번 신고를 하는 거였다. 거기 그대로 방치돼 있을 녀석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제주에선 로드킬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더 무디게 반응을 보인다.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도 잘하지 않는 것 같다.
도로 한 복판에 놓인 채 방치되는 아이들도 있고,
흰둥이의 경우도 길 한 모퉁이 자리로 누가 봐도 옮겨놓은 거였다.
120 신고를 받은 직원 역시 "관심 갖고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한다.
할 수만 있다면,
동네마다 길고양이 길강아지들을 정기적으로 모이게 해서 도로 교통안전 교육을 시키고 싶다.
횡단보도를 이용하고, 녹색불에 건너라고, 차를 조심하라고,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 되는 일인 걸 알기에, 제주에서 운전할 땐 속도를 낮추는 수 밖에 없다.
조금 천천히 달리면 예기치 못한 녀석들의 행동에 그나마 대처할 수 있다.
사실 거리 경력 있는 고양이 개들은 도로에서 좌우를 살피고 길을 건너더라. 녀석들도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정도라면 스스로를 위험에서 구하려고 얼마든지 노력한다.
문제는 밤이겠지.
특히 검은 고양이들이 밤에 도로를 건너면 운전자는 거의 알아보지 못할 거다.
그러므로 해가 지면 속도를 더 낮추는 수밖에.
제주의 밤은 훨씬 더 어둡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로드 킬 예방을 위해 또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속도를 줄여야겠다,라고 밖에
방법을 못 찾은 것이 비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