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아저씨가 준 단호박
나는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이다,
과거나 어제나
간략 테스트나 심화 테스트나
매번 결과는 같았다.
4번 유형은,
개인주의자, 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늘 주의가 내면을 향해있다.
사람을 대할 때에는 자신은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려고 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유형의 사람 집단이 있다는 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서론이 길었고,)
나는 4번 유형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퇴근길에 다른 팀 회사 사람이 보이면, 피하는 스타일,
동네 윗집, 아랫집 사람들 소리가 들리면,
현관 안쪽에서 잠시 기다렸다 집을 나서는 사람이었다,
마주치고,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몇 번은 인사를 했다 씹히고,
그런 어색한 상황들보다는 마주치지 않게 조정하는 편이 나았다.
친구나 가족, 직장 동료 모두 비슷하게 대했다.
내가 필요할 때 찾았지,
그들에게 곁을 내어준 적이 잘 없었던 것 같다.
타인은 내 시간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주 개인적인 질문은 피하고, 질문하는 사람을 무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제주에 와서
만난 집주인 아저씨는 농사 중개업을 하신다.
아저씨 집 마당엔 커다랗고 천장이 높고 시원한 돌창고도 있다.
거기에서 마늘 철에는 마늘을 분류해 포장하고
마늘쫑도 분류하고 (마늘을 쓰고 그 줄기를 마늘쫑으로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마늘 농사 따로 마늘쫑 농사 따로라니!).
아저씨는 농사짓는 동네분들의 농산물을 구입해서
마트나 시장으로 파는 중간 판매상인 셈.
그래서인지,
아저씨 말씀에 따르면
아저씨네 창고에는 늘 농작물이 쌓여있다고 한다.
마을분들이
양파 한 자루, 파 더미, 이렇게 그냥 가져다 두고 가신다는 거다.
지난번 아저씨네 놀러 갔을 때에는
세우면 내 허리까지 올 양파자루가 있었다.
아저씨가 양파를 실컷 가져가라고 했는데,
서울 살 때
요리만 하면 망치던 나는
양파 한 알만 집어왔는데, 그러고는 엄청 후회했다.
맛 좋고 싱싱한 양파였다.
거기다 제주에서는 거의 집에서 요리를 해 먹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양파가 필요하다.(요리 대부분에 양파가 들어가더라고요)
남편만 먼저 이사를 한 직후,
마늘쫑 주신다고 몇 번을 오셨다가
내가 서울에 있고, 남편만 집에 있자 그냥 가셨다고 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간장에 담근 마늘짱아찌를 좋아해서 그걸 해 먹고 싶었는데.
얼마 전에는 진귤을 가져다주셨다.
엄청 막 생긴 주먹만 한 귤이었는데, 신맛이 강해서 주스를 해 먹었다.
맛있었다.
(제주도면 귤을 막 그냥 아무데서나 따먹을 거 같았는데,
제철이 아니기도 해서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지금 먹을 수 있는 게 진귤 같은 것인데, 예쁘질 않아서 팔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니, 이쯤 되면 내 성향 상 부담스러워질 만도 한데,
이상하게도
아저씨가 기다려졌다.
지난번부터
단호박 수확하신다고 몇 번 말씀하시면서, 그걸 가져다주겠노라 말씀하셨었는데,
언제 오시는 거지.. 아저씨 말을 듣고 괜히 단호박이 먹고 싶어 져
마트에서 작은 단호박 하나를 사다
오븐에 구웠는데, 아직 설익은 맛이 났다.
그러다
오늘 딩동,
택배 아저씨 아니면 찾아오는 이 없는 집에 평소와 다른 느낌의 벨 소리가 났다.
주인아저씨였다!
구깃구깃한 비닐봉지 안에 남자 주먹보다 조금 큰
단호박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거 밤 같은 단호박이라고,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투로 아저씨는
사과처럼 껍질 채 먹으라고,
요리해 먹는 방법을 후다닥 설명하시곤,
단호박 표면에 흠집들이 마음이 쓰이시는지, 약 안 치거라고 덧붙이시곤
빌라 내 다른 집의 벨을 누르러
홀연히 떠나셨다. 아저씨가 주셨던 것들이 죄다 맛있었기에,
나는 너무 많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너무 반가웠다.
당장이라도 단호박이 먹고 싶어,
저녁을 먹은 직후였지만,
아저씨 말대로
물에 단호박을 씻어 도마 위에 단호박을 얹고 큰 칼로 반을 베었다.
칼을 새로 산 덕분인지
단호박 덕분인지
작은 단호박은 기분 좋게 반으로 잘라졌다.
숟가락으로 씨를 도려내고
오븐기에 단호박을 구웠다.
거의 다 익어가자
정말 근사한 냄새가 났다.
그간 단호박을 찔 때 맡아본 적 없는,
당장이라도 한입 먹고 싶은 냄새.
꺼내자마자 입에 넣느라
입천장을 모두 데였지만,
정말 밤 같은 단단한 식감과 고유의 단호박 향, 은은한 단맛, 고소함이 어우러진 맛이었다.
왜 사서 먹을 때 이런 맛있는 단호박이나 고구마 감자,
그런 걸 만나기 어려운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시가 번성하기 전,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이런 식의 생활이 가능했을 거다.
누구네 집에선 단호박을 수확하고, 누구네 집에선 사과를 수확하고,
아는 사이끼리 교환하거나 구입하다 보면,
품질은 거의 보장됐어야 했을 거다, 쉽게 속일 수 있지만 금방 들통날 테니까.
농사를 망쳤으면 그걸 숨길 수도 없었을 거다.
서로 믿을 수 있고, 동네 사람들 제품 위주로 사다 보면,
최저가를 검색하고 믿을만한 업체인지 알아보다 쇼핑에 써버리던 에너지를 참 많이 줄일 수 있었겠구나,
지금의 세상은 너무 과한 물질로 넘쳐난다.
그 속에서 무언갈 갖고 싶은, 가져야 할 것만 같은, 욕망은 높아만 간다.
그 욕망의 세계 정점에서
늘 허우적 되던 나는
그게 참 버겁게 느껴졌다.
아무리 따라가 보려 해도 닿지 않는 세계에 손을 내밀다 상처가 커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제철에 수확한 것들을 심플하게 조리해 먹으며
지나친 고민 없이 과한 욕심 없이 살 수 있는 삶.
주변인들이 귀찮고 나의 시간을 뺏어가 가는 적들로만 보였던 때가 있다.
그들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배려인 듯 굴었다.
그때의 나에게
아저씨가 단호박을 가져다주었다면,
난 이 단호박을 관리하고 처리하느라 시간을 써야 한다는 데에, 원치 않는데 베풀어주는 호의에 대해
냉소적으로 대했을 것이다.
그때 이걸 먹었다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