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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의식 Jul 03. 2020

서귀포 새로운 여정의 시작

내가 까페 사장이 되었다

제주에 산지 1년, 

제대로 된 벌이 없이 지내던 남편과 나는, 

마침내 결정을 내릴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우린 오래 생각해오던 

조그만 '가게'를 오픈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길었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가게 문을 열고 일주일이 조금 지났다. 


지난 겨울부터 올초를 거쳐서 

오픈 직전인 5-6월에 우린 노동으로 지칠대로 지쳤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일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오픈 준비는 마무리로 접어 들었지만, 

오픈은 우릴 다시 출발점으로 데려다 놓았다. 


체력과 힘을 쓰는 비중이 많았던 준비 기간에 적응될 때 즈음, 

몸보다 마음과 머리를 써야하는 

오픈 시점에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마음이었다. 

오늘부터 오픈이야! 

긴장된 마음으로 

가게를 쓸고 닦고 마음의 준비까지 단단히 했다. 


예상은 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이날 와달라, 부탁을 했다. 

이곳에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친구 한팀이 다녀간 오픈일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그후로 3~4일간, 

가게 준비를 하며, 더 가까워진 지인들이 

고맙게도 일부러 가게를 찾아주었다. 

그들이 더 고맙게 느껴진 건, 

오픈이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아무도 오지 않는 

가게를 지킬 때였다. 

이틀동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마음이 불안과 초조로 가득찼다.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밤이나 낮이나 우리가 이렇게 

망하는 것(!)만 같은, 공포에 사라잡혀 마음이 옴짝 달싹을 못했다. 

(그 이틀은 지금 생각해도 길고 길게만 느껴진다)


제주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이 힘이 되었다. 

오래 알고 지낸 시간에서 나오는 깊고 진한 감정만 진짜라고 믿었던 나는, 

반성을 했다. 

진심어린 마음씀은 시간이나 깊이, 그런 걸 다 벗어나서 

마냥 감사한 것이었다, 건강한 에너지를 나눠준다. 


어제, 드디어 첫 (모르는) 손님이 왔다. 

모르는 사람이 한 명만 와봤으면 좋겠다!,라고 

우린 가게 앞에 둥지를 튼 제비처럼 짹짹 말하곤 했다. 


수없이 말하며 설레이고 궁금해하던 그 순간이 진짜 벌어졌다. 

우리의 첫 손님은 오후가 되자 

슬그머니 혼자 찾아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수줍게 물었다. 곳곳을 둘러보고, 

아이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던 손님은 

우리가 꿈꾸던 첫 손님보다 더 가게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마음에 방긋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끄럽지만 너무 너무 신기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공간을 찾아, 

열심히 준비한 메뉴도 들여다봐주고, 

그 중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 맛을 보고, 

세심하게 고른 음악과 적정 온도가 어우러진, 

이 공간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잠시나마 함께 

스쳐보낸 작은 인연이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의 노력을 

같이 즐겨주려는 누군가가 찾아와 준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구나, 


그리고 

첫 손님이 다녀가 다음날, 

두 번째 손님이 왔다. 


누군가가 찾아와준다는 것이 이런 기분을 주는구나. 


그간 내가 찾은 가게 중에,  

가끔 만날 수 있는 불친절한 사장님의 마음은, 

왜 그리 뿔이 났나, 궁금했다. 

이렇게 신나는데! 


걱정많던 시간을 지나자, 

마음이 한결 느긋해졌다(단 2팀의 손님만으로도!) 

크건 작던 가능성을 느낀 마음에서는, 이런 희망이 움틀수 있는가 보다.  


이렇게 우리 자리에서 

우리 몫을 계속 해나가고 있으면, 

언젠가 스쳐가듯 만날 수 있는 

인연들이 더 많아지겠지. 


* 드디어 100장의 드립필터를 다 썼다,  

물론 연습하느라 쓴 양이 훨씬 많지만, 뿌듯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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