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라는 나이
선생님, 제가 올해 마흔이 됐습니다,
40대의 저라니, 상상이나 했었을까요,
지내다보니, 제가 마흔이 된 걸 꽤나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저는 나이가 들길 기다려왔습니다.
마흔이라니, 중후한 느낌의 그것, 제가 그 나이가 됐습니다.
비로소 중년이라는 닉네임이 붙는 나이가 마흔, 이더군요.
마흔,은 뭔가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20대에서 비로소 30대가 되었을 때, 저는 별 변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해를 거듭해 숫자가 하나씩 늘어간다는 느낌, 그것이 서글픈 일 같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그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생의 한 차원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그 순간마다,
우리는 일정한 '기념'을 해야 한다는 것을요, 의식, 통과의례, 같은 것들 말이죠. 이를 테면, 졸업식, 이어지는 입학식, 성인이 되는 것을 인지해야 하는 성년식, 내가 한 가족을 새로 이루겠다 결심의 결혼식...
기념일이 한 번 정해지면, 매년 돌아오기 때문에 그저 일년에 한번씩 있는 그런 날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념일마다, 그날을 기념하게 하는 '그것'을 의미있게 되새겨 봐야 하는 거였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 세상이라는 곳에 처음으로 내가 존재하게 된 그 날, 나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기념일이 참 성가셨습니다. 유독 좋았던 개교기념일 외에 명절의 어떤 날도 좋지 않았고, 지금과 달리 어릴 때엔 생일날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려웠습니다. 축하받아야 할 날, 특별하게 보내야 할 것만 같은 그 날이 저는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며, 제 마음이 설레이기라도 할까 일찍부터 단속을 해댔습니다. 그저 그랬습니다. 받고만 싶었습니다. 그 날들에 무엇을 기념해야 하는지는 몰랐지요.
마흔의 저는 어른이 되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제게 어른이란, 주체성의 문제이더군요.
선생님, 저는 제가 주체적인 인간인줄로만 철썩같이 믿고 살았습니다.
저는 혼자 밥을 먹는 것도, 혼자 영화를 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혼자서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아주 주체적인 존재라 믿어 의심해본 적이 없었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선택하길 두려워했지요. 제가 내린 결정을 제가 책임질 힘이 저에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은 막연히도 자리잡아 무의식의 층에서 저를 조정해왔지요. 저는 그런줄도 모르고, 조정당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자유로운 인간이라 스스로를 믿으면서요. 그런 제가 주체적인줄 알았지요.
저는 누군가 저를 돌봐주기를 기대해왔습니다.
아무도 그럴 수 없음에 절망했습니다.
누군가 제 선택을 대신 책임져주기를, 제 인생의 결정들을 대신 선택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제 보트의 키를 쥐어 주었습니다.
타인의 태도와 타인의 말에 제 기분을 맞춰왔고, 그들의 강요나 설득, 협박, 꼬임의 말에 귀를 활짝 열었지요, 제 생각과 마음은 늘 열려 있었습니다. 누구든 와서 맘껏 흔들어 놓고 갈 수 있었습니다.
개방적이고 유연했기에 저는 무언가를 흡수해 '적절하게' 맞춰내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세상을 살아온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는 유용한 무기였단 걸, 잘 알지요, 하지만 선생님, 그렇기에 거기에 저는 빠져버리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하나의 무기로 저의 다양한 인생을 모두 살아내려고 했습니다. 역시, 잘 되지 않더군요. 빠져 있을동안, 자신이 빠져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늘 깨어있어야 한다,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저는 선택하고 책임지기로
제 몸을 돌보기로
무엇을 할 때 이왕이면 적극적으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마흔이란 누구의 돌봄을 받는 것보다는, 누구를 돌보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자신을요.
*오늘의 일기는
묵혀두었던 이 편지로 대신합니다.
100일간의 일기는, 매일을 기록하려던 목적보다는 하루 한 번 이상, 읽고 쓰겠다는 목적에 더 가깝습니다. 온종일 틈이 날 때마다 글쓰기 모임의 글을 읽으며 문장수집을 했어요, 오늘의 읽고 쓰기 분량은 채워진듯 하다는 변명을 덧붙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