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미션 글쓰기에 신청한 적이 있다. 3주간 매일 카톡으로 주제를 받아 300자 내외로 짧게 글을 써서 올리면 내 글을 모아 미니북을 만들어주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이었다. 매일 아침 아홉 시면 배달되는 글감 주제는 날이 갈수록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부담이 있었기에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 읽을 책을 찾으려 책장을 뒤지다 그때 받은 미니북이 눈에 들어왔다. 종이에 인쇄된 내 글을 보면서 손발이 오그라들고 심장이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오래된 일기장을 들추는 마음으로 그때 썼던 글을 이곳에 옮겨 적어본다.
# 인사
오늘도 어김없이 할머니와의 통화로 시작하는 하루. 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는지 아침 식사는 하셨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을 끝내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아침저녁 하루 두 번씩 손녀의 목소리를 듣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힘을 내는 우리 할머니. 서로의 목소리에 위로 받는 이런 시간들이 조금 더 오래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 파란색
찌는듯한 더위에 온몸이 녹아 흐르는 것 같은 느낌. 밖에 잠시만 서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르고 미간이 절로 찡그려져 주름이 생기지만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너무 예뻐 매일 하늘 사진을 찍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은 아름다웠다가 무서웠다가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하고는 이내 나를 겸손해지게 만든다.
# 나무
요즘 무리한 탓일까? 극심한 두통으로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다 하루가 다 지나갔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인데 엄마가 아프니 밥 달라고 조르지도 않던 아이들.
큰아이는 내가 자는 사이 나무 식탁 위 어질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해놓고는 연신 나를 살피고 둘째는 내 옆에 와서 나를 끌어안고 누워 조잘조잘 떠든다. 나를 지탱하게 해주는 이 큰 사랑이 새삼스럽게 고맙고 미안한 밤이다.
# 잠시 멈춤
버스가 신호 대기에 걸려 잠시 멈추었을 때 창밖으로 어르신 한분이 눈에 들어왔다. 태풍 영향으로 바람이 불고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우비도 없이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파지를 모아 고물상으로 향하고 계셨다. 태풍으로 외출을 자제하고 안전에 유의하라는 안내 문자가 연신 울려대는데도 말이다.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어르신을 바라보다가 잠시나마 내가 아닌 타인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기도해 본다.
# 숫자
7월. 내가 태어난 달.
나의 탄생은, 나의 존재는 과연 축복이었을까? 항상 그런 의심을 품으며 살아왔기에 생일이 되면 그다지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힘든 유년 시절을 지내며 나의 탄생 자체가 문제였다고 여겼던 날들이 많았다.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면서도 항상 마음 한편이 아팠던 날들.
배 아파 아이 둘을 낳고는 생일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거 아닐까 하는 그런 마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어떤 건지 깨닫고 나니 비로소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 놀이터
얼마 전 두 발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큰아이가 매일 저녁 놀이터에 나가자고 성화다. 지금도 내 앞에서 자전거를 타며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양쪽 무릎이 다 까지고 피가 나는데도 포기를 모르더니 결국 저렇게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 도전 앞에 늘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내 모습이 문득 부끄럽게 느껴진다.
# 출발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어 신청해 본 미션 글쓰기. 자존감이 저기 깊은 곳까지 떨어져 있는 나를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을 유일한 방법, 내 마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글쓰기가 끝나는 날 내 마음은 이전보다 조금 나아져있을까? 왠지 기대가 된다.
# 물건
너 요즘 야근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야? 다들 퇴근하고 쉬는데 너 혼자 고생이더라. 이제 너도 여기저기 아프다면서… 얼마 전에도 치료받았다면서 정말 괜찮은 거야? 하긴, 한 곳에서 십 년 동안 일했으니 지칠 만도 해. 이번 여름 지나면 좀 쉰다고 했지? 그래 잘 생각했어! 쉬는 김에 푹 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우리 집 에어컨
#다시 태어난다면? (꿈)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가만가만 예쁘게 나를 바라보다가 소중하게 품에 안고 데려간다. 때로는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그 기쁨을 지켜보기도 하고, 때로는 생과 이별한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 가서 함께 슬퍼하기도 한다.
넓은 들판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살랑살랑 춤추기도 하고 가끔은 좁은 돌 틈 사이로 꾸역꾸역 고개를 내밀어 보기도 하는 나는 꽃이다.
마치는 글에는 이런 소감을 적었다.
“쉽지 않은 매일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단조로운 일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해야 하는 것도, 상상하는 것도. 혼자만의 의지로는 쉽지 않았을 3주간의 글쓰기를 마쳤다. 매일 아침 용기를 내도록 끌어주는 사람이 있어 고마웠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며 자극도 받고 눈물도 흘렸다. 내 마음의 큰 울림을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
다시 글을 보니 부족함 투성이지만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코끝이 찡해진다.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글쓰기에 도전하는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오늘. 그래 계속 가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