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브런치 활동을 공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by 지금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지웠다 하기를 반복한다. 나는 이곳에 쏟아내는 이 글들을 내 가족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가족 중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것이 분명하기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30년 후쯤 책을 출간한다다면 모를까 가까운 미래에는 불가능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그게 겁나면 못하는 거지. 네가 진짜 작가가 되고 싶다면 그걸 깨야지"라고 대답한다. 사실은 남편에게조차 나의 글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남편이지만 나의 심경변화를 너무 낱낱이 알게 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서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링크까지 공유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나의 시어머니!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조용히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면서 어머님께는 공개한 이유가 뭘까.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글을 쓰고 있던 어느 날 아침에 어머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내년에 OOO 2탄 낼 수도 있어요. OO이도 에세이 시작해 봐요. 내년에 같이 내볼까? 생각해 보자".


누구보다 내가 글을 쓰기를 응원하는 나의 팬이자 든든한 지원군을 자청하고 계시는 어머님의 '글쓰기 독려' 문자였다. 아침부터 응원의 문자를 받으니 입이 근질근질해져서 결국 브런치스토리에서 작가 신청이 통과됐다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어머님은 물개박수를 치는 이모티콘과 함께 연신 대박 대박을 외치셨다.

사실 어머님은 이미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하신 선배님이다. 몇 해 전 환갑을 기념해 개인전을 열고 시집도 쓰셨다. 세상에 둘도 없는 짝꿍이던 아버님이 쓰러지신 후 어머님은 하루하루 깊은 어둠과 마주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그때 어머님이 살기 위한 돌파구로 찾은 것이 바로 글쓰기와 작품 활동이었다.

30여 년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서예와 민화를 해오시면서 이미 공모전 수상 이력이 빵빵했고 멋진 작품이 한가득이었다. 여기에 아버님을 생각하며 매일 썼던 짧은 편지, 어머님을 지탱하게 해 준 소중한 것들에 대한 글들을 모아 엮어보니 시집 한 권이 탄생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전시를 열고 싶어 하셨다. 누군가는 아픈 말을 보태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데 그런 걸 할 정신이 있냐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말이 꼭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듣기엔 맞는 말은 아니었다. 어머님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님께 꼭 보여주기 위해서 해야만 한다고 하셨다.


나는 다시 힘을 내기 위해 노력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에 기뻤고 1호 팬을 자처했다. 현실적인 걱정을 하는 남편과 싸우면서까지 어머님을 응원했고 전시를 준비하시는 동안 어머님과 수없이 많은 통화를 했다. 영감이 떠오르거나 마음에 드는 글을 쓰시면 꼭 내게 어떤지 물으시면서 나의 코멘트를 기다리셨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눈물 나게 기뻤고 엄청난 자극이 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더니 진짜였다. 하얀 벽을 가득 채운 어머님의 작품들이 지난 세월, 견뎌온 날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어머님은 항상 내가 가진 재능이 너무 아깝다며 나의 이야기가 꽃이 되어 피어나기를 응원하셨다. 좋은생각에 원고를 응모해서 채택됐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던 9년 전부터. 어머님께 나는 이미 작가 며느리였다. 작가라는 호칭이 너무 과분하면서 낯부끄러웠지만 그 덕분에 나는 그 후로도 틈틈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어머님께 브런치스토리에서의 활동을 공개한 건 나를 향한 한결같은 응원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친정 이야기, 잊고 싶은 과거사들이 글의 90프로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민구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마저도 '나'이기에 다 이해해 주신다.


"너무 잘했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렇게 써 내려가면 되는 거야. 글로 저 밑바닥에 있는 힘듦을 다 토해내자."


살기 위해 글을 쓰는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해 주는 나의 글쓰기 메이트를 위해 내일은 좀 더 나아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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