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를 준비하던 시절,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큰 장애물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유일하게 가고 싶었던 학과는 그의 성적으로는 갈 수 없었던, 모두가 아는 유명한 학교에만 있었다. 성적이 받쳐주지 않았기에 그 학교에 지원하겠다고 했던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를 아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꿈 깨”라는 말을 남기고 지나갔다. 어떤 선생님은 “니 성적으로는 어림없으니 상상도 하지 마라”고 말하며 학생부로 머리를 툭 치고 지나갔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오염되기 전에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일이야. 대부분의 학과는 오염된 이후의 사후 처리에 기술을 집중하는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건 오염되기 전, 아니면 오염되는 중간에 환경 부하가 생기지 않는 공부야. 그런데 이런 전공이 있는 학교는 OO대학뿐이야. 그렇다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곳만 지원하겠어.’
그가 세운 첫 번째 기준이었다.
그의 의지는 흔들림이 없었고, 방법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원하는 학교의 홈페이지에는 익명 게시판이 있었고, 그는 그곳에 글을 올렸다.
‘OO고등학교 학생 OO입니다. 이런저런 꿈을 갖고 진학을 고민하고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공부를 이 학교에 오면 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을 본 전공 교수님이 개인 메일로 답변을 보내왔다.
“자네가 말한 내용은 이미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있네. 이곳에 온다면 충분히 공부할 수 있을 걸세. 열심히 준비해 보게. 응원하겠네.”
그는 그 메일을 읽고 한동안 기뻐했다. 합격 가능성은 여전히 낮았지만,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응원의 메시지에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마침 그 시절, 수능을 보지 않고도 합격할 수 있는 새로운 수시 제도가 막 도입되었다. 자기소개서와 내신 성적, 논술 시험, 그리고 면접이 전형의 전부였다.
당장 준비해야 할 것은 논술이었다. 그는 1년 선배들이 다니던 논술학원에 함께 등록했다. 수업을 듣고, 문제집을 붙잡고, 나만의 방식으로 연습을 이어갔다. 논술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건 분량 조절이었는데, 적절한 예시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스스로 깨달았다. 스무 번 남짓한 연습 끝에, 2000자 내외의 글에서 열 자 이내로 분량을 맞추는 감각을 익혔다.
자기소개서에는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꿈과 생활 속에서 발견한 생각들을 몇 가지 사례로 담았다.
그렇게 준비해 제출한 첫 수시 모집에서 그는 합격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 이후, 그에게 꿈을 접으라던 말들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성적이 더 좋았던 학생들 대부분은 같은 길을 선택했지만, 결과는 각자 달랐다.
합격 통보를 받은 날은 6월 19일이었다. 입학 후 같은 반 친구들에게 “너의 꿈은 뭐였어?”라고 물었지만, 그와 같은 꿈을 품고 학교에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항해를 시작하기 전, 처음으로 세운 기준에 모든 것을 쏟아 준비한 돛은 그렇게 펼쳐졌다.
첫 출항의 바람은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