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스트레스의 정체는 ‘업무량’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웬만하면 화가 나지 않는다.
대학원 때 나와 3년을 함께했던 후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형이 한 번도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작년까지도 나는 화를 낼 위치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
물론 불만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지원했고 요구를 들어줬다.
왜냐? 나는 '후배'였으니까.
내가 할 일은 받은 일을 잘 해내는 것이었니까.
누가 실수를 하더라도, 얼마든지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고, 그런 과정이 있어야 성장함을 믿기 때문에 화가 나지 않는다.
일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해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두 괜찮다.
인류의 발전도 끊임없이 오류를 수정해 왔을 뿐인 것처럼.
하지만 나는 올해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거래처에서 요구해 오는 것들 중 간혹 선을 넘는 것들이 있다.
내가 해주지 않아도 되는 일들,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나에게 자연스럽게 넘기며 요구하는 상황이 생겼다.
물론 가만히 보면 과거에도 늘 조금씩은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다 맞춰줬다.
그래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사한 상황에서 올해는 유독 화가 났다.
가만히 들여다보았을 때 내가 화난 이유는 부당함 때문이 아님을 알았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이번 일로 통해서 앞으로 나뿐 아니라 우리 팀에게 당연하듯이 유사한 요구를 할 수 있음에 화가 났던 것이다. 또한 나는 거절할 수 있지만 내 후배들이라면 거절할 수 없을 일이란 걸 생각하니 화가 났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우리가 개발하는 제품에 타깃으로 하는 해충의 영어명과 학명을 다 적어 달라는 것이었다. 보통은 우리가 타깃 하는 해충명을 한글로만 써서 보내줘도 본인들이 영어로 번역하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후 표기하면 된다. 그들이 할 일이다. 그들이 할 일을 매우 자연스럽게 배경설명 없이 당당히 요구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상황에 대해서 실제 담당자는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고, 나와 함께 일을 하는 후배도 "해주면 되죠 뭐"라고 하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만 이상한가?'
나도 작년이라면 스트레스가 크지 않고 기꺼이 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차석이 되고 나서 참을 수 없는 부당함을 느꼈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야근 때문도 아니었고, 업무량도 아니었다. 거래처에서 요구하는 일도 30분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내가 알던 스트레스가 아니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던 무엇이 이제는 나를 두들기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나를 화나게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