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일
耕田南山側(경전남산측) 남쪽 산모퉁이에 밭을 일구고
結廬北山曲(결로북산곡) 북쪽 산굽이엔 오두막을 지었네
朝出到壟上(조출도농상) 아침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暮歸理書策(모귀리서책) 저녁엔 돌아와서 책을 읽네
傍人笑我勤(방인소아근) 주변에선 나의 고생 비웃겠지만
我自以爲樂(아자이위락) 내게는 더없는 즐거움이라네
始知請學稼(시지청학가) 이제야 알겠네, 농사일 배우는 게
猶勝問干祿(유승문간록) 벼슬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 장유(張維, 1587~1638) <시골살이 예찬[歸田漫賦(귀전만부)]> 중 제5수
이곳 교육원은 도심지와는 떨어진 군에 자리잡고 있고 주변에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가 없어 맑은 공기와 새소리, 하천, 논밭과 과실나무, 야생화 등을 자주 보고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가끔 물안개피는 모습은 일출과 일몰 때 장관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아침 날씨는 영하 3.2도를 찍고 있습니다. 노루가 수시로 내려오기도 하고 벽을 타고 지네가 기어 올라와 사람의 숙소를 넘보기도 해 놀래키곤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상촌 신흠과 더불어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중 한 분인 계곡(谿谷) 장유(1587~1638)의 전원시(田園詩: 시골 일을 노래한 시)를 살펴볼까 합니다. 시인은 볕 잘드는 남쪽 산모퉁이에는 밭을 일구고 북쪽을 등지고 오두막 한 칸을 지어서 살고 있습니다. 해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지면 글공부를 합니다.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함)의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장유의 삶의 철학을 잘 알 리 없는 주변 친구들은 왜 벼슬하면서 편하게 살지 않고 ‘사서 고생하느냐’고 비웃지만 자연의 리듬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임을 그대들이 오히려 잘 모르고 있다며 지인들을 비웃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 “농사일 배우는 게/벼슬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현대 사회는 눈뜨는 순간부터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힘겹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을 챙겨먹고 나가기 무섭게 정해진 일과에 따라 그날 수업을 꼼짝없이 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늦잠을 잤을 경우 아침밥은 건너띈 채 학교로 달려갑니다.
부모님의 삶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보다 먼저 일어나서 가족의 아침을 챙긴 뒤에 여러분을 깨우고 본인의 출근을 서두릅니다. 직장에 나가지 않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나마 아내와 남편, 아이들이 출근한 뒤에 약간의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현대 생활이 이와 같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이렇게 바쁘며 또 이와 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까요? 조금 더 깨어 있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귀농과 귀촌을 해서 도시 생활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느낌을 달리하여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랏일이나 회사 일, 학업에 얽매이다 보면 정작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소홀하기 십상입니다. 깨어 있는 삶, 내면이 충만한 삶은 어떤 삶일까요? 시인은 나랏일에 해방되어 전원(田園)에서 삶이 고되긴 하지만 남에게 양보하기 싫은 즐거운 삶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곧 남의 지시에 따른 삶이 아닌 스스로가 계획한 일정에 따라서 땀흘리고 흙과 생명을 돌보며 자연의 이치에 따른 순환적인 삶, 느린 삶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자 내면의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시골에 살면 누릴 수 있는 혜택 또한 다양합니다. 신선한 공기와 사시사철에 따라 피는 꽃과 나무, 열매, 곡식, 날짐승과 들짐승이 친구가 되어 주고 커다란 그늘 밑과 시원한 계곡 속에 발을 담그고 있노라면 세상의 근심 걱정, 탐욕, 물욕(物慾: 물질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욕구, 질투와 원한 등에서 자연히 멀어지게 됩니다.
낮에 열심히 밭일하고 밤에 책을 읽다 보면 현대인의 고질병인 수면 부족과 우울증, 스트레스,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 자연스레 하늘을 닮은 자연을 닮은 내면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