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69일

by 은은


壬人胷中(임인흉중) 간사한 사람의 가슴속에는

有鐵蒺藜一斛(유철질려일곡)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쇠못이 한 섬(10말) 들어 있고

俗人胷中(속인흉중) 세속에 물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有垢一斛(유후일곡) 더러운 때가 한 섬 들어 있고

淸士胷中(청사흉중) 고아한 선비의 가슴속에는

有氷一斛(유빙일곡) 맑은 얼음이 한 섬 들어 있네

慷慨士胷中(강개사흉중) 강개한 선비의 가슴 속은

都是秋色裡淚(도시추색리루) 분하고 비통해 온통 서글픈 가을빛이고

奇士胷中(기사흉중) 기이한 재주를 가진 선비의 가슴속에는

心肺槎枒(심폐사아) 여러 갈래로 뻗친 마음에

盡成竹石(진성죽석) 대나무와 돌들이 가득하네

大人胷中(대인흉중) 오직 대인(大人)만은

坦然無物(탄연무물) 마음이 평탄하여 가슴속에는 아무런 물건도 없다

- 이덕무(1741~1793,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오늘은 음력으로 시월 초하루입니다. 교육원 숙소 옆으로는 배추가 하얀 서리를 머리에 이고 있고 맞은편 은행나무는 노란 나비가 자유낙하하듯 사뿐히 자신을 키워왔던 대지에 입맞춤하며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오십여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기도하듯 올해를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통해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마음 중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요? “간사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남을 해치려는 쇠못이 가득하고 세속에 물든 사람의 마음에는 때가 가득 묻어난다.”고 합니다. ‘鐵蒺藜(철질려)’는 도둑이나 적을 막기 위해 땅에 흩어 두던, 날카로운 가시가 네다섯 개 달린 쇠못을 말하며 한 섬은 곡식을 세는 단위이며 우리가 흔히 아는 쌀 1말은 포대 자루에 가득 담은 쌀의 양입니다. 무게로는 80kg 정도 됩니다. 남을 헤치려는 마음의 양을 쇠못을 담은 10포대의 자루로 표현한 것이 재밌지만 슬프기도 합니다.


유학의 경전이자 과거 시험 과목이기도 했던 《대학(大學)》에는 “진실로 날마다 새로워지고자 하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구일신 일일신 우일신)]”고 하였습니다. 폭군인 주나라 마지막 임금인 紂(주)를 쫓아내고 은나라 초대 임금이 된 탕왕은 자신의 세수대야에 이 글귀를 새겨 놓고 눈과 마음으로 보며 주왕의 일을 거울삼아 어진 정치를 펼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덕무는 고아한 선비의 가슴속에는 왜 맑은 얼음이 한 섬이나 들어 있다고 표현했을까요? 보물도 아니고 황금도 아닌 ‘얼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아(高雅)’란 표현은 그 기상이 높고 하는 행동거지나 인격이 우아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고아한 선비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달콤한 말을 하거나 상식에 반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될까요? 한때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얼음공주(좋고 싫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냉철한 여성)’란 말이 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시인이 말하는 ‘얼음’은 때 묻지 않은 맑고도 합리적인 인격의 소유자임을 ‘고아하다’는 표현과 어울려 사용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때로는 ‘사이다’같은 속 시원한 표현으로 우리의 뜨겁고 막힌 가슴을 뻥 뚫어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다른 얘기로 을사늑약 당시 나라 잃은 슬픔에 비분강개한 선비들 중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이란 분은 절명시(絶命詩:목숨을 끊는 시)를 남기고 자결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또 남달리 지조와 기개가 뛰어난 선비들과 백성들은 의병과 독립군을 조직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심 없이 곧고 강직한 마음을 늘 품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왔기에 호연지기(浩然之氣:사람의 마음에 차 있는 너르고 크고 올바른 기운)를 지닌 대인은 그 어떤 삿된 마음과 불순한 감정도 녹여버리는 옳음과 바름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있기에 ‘가슴 속은 평탄하여 아무런 물건도 없다’고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비록 우리가 간혹 간사한 마음을 품기도 하고 세상일에 때가 묻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늘 마음속에는 고아(高雅:높고 맑음)한 품격을 지니기 위해 노력하고 남을 해하려는 티끌만큼의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품지 않으며 오직 나와 이웃, 사회, 생명, 자연,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고 헌신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로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지구보다 너른 대인과 우주의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 있음을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