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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68일

by 은은


若得一知己(약득일지기) 만약 한 사람의 지기(知己,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얻게 된다면

我當十年種桑(아당십년종상)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一年飼蠶(일년사잠) 1년간 누에를 쳐서

手染五絲(수염오사)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十日成一色(십일성일색)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五十日成五色(오십일성오색)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曬之以陽春之煦(쇄지이양춘지후)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使弱妻(사약처) 여린 아내에게 부탁하여

持百鍊金針(지백련금침) 백 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繡我知己面(수이지기면)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고

裝以異錦(장이이금)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軸以古玉(축이고옥)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어

高山峨峨(고산아아) 까마득히 높은 산과

流水洋洋(류수양양) 한없이 넓게 흘러가는 강물

張于其間(장우기간) 그 사이에다 이를 펼쳐 놓고

相對無言(상대무언)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薄暮懷而歸也(박모회이귀야)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천애지기서(天涯知己書)>,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63권


돌아서니 벌써 한 주의 후반을 맞이합니다. 겨울에 한 걸음 다가섰지만 오늘 아침은 바람이 잔잔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춥지 않습니다. 가끔 마음이 답답하고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남 탓을 하게 되곤 하는데 삼감과 절제, 겸손의 의미를 되새기며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이 시를 읽고 나니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한지요? 저는 이 글을 보면 옛사람이 벗을 그리고 대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벗은 ‘제2의 나’이자 나를 돌아보는 거울입니다. 옛사람들은 ‘방을 같이 쓰지 않는 아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서로에게 비밀이 없고 기쁜 일, 슬픈 일, 어려운 일 등을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고 오랜 시간을 함께할 것을 알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벗 사이에는 듣는 일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중국의 백아라는 사람이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그의 벗인 종자기란 사람이 먼저 죽자 자신을 이해해 줄 친구가 없어졌다고 탄식하며 거문고 줄을 끊어버립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서로 간에 두 눈을 마주 보고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치거나 호응하는 말을 표현하며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자기의 시간을 벗에게 고스란히 내어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은 이런 친구를 가까이에 두고 있나요? 두고 있다면 몇 사람이나 되는지요?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딱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정도 있네요. 직장을 제가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지역에 구하게 되면서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와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 친구는 저의 멘토이자 벗이며 스승같은 사람입니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고민, 진로나 진학문제, 아내와 자식 등의 집안 이야기 등 그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편견 없이 들어주고 맞장구치며 저의 향후 진로에까지 관심을 가져주고 조언을 해주는 든든한 벗입니다.


한 사람의 지기(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위해서 10년 이상 나무를 키우고 누에를 1년 이상 기르며 금침을 단련하는 노력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 그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그와 같은 인품과 아량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친구의 얼굴을 수놓고 고옥으로 축을 만들어 자연 속에서 말없이 마주보고 있다가 해가 지면 돌아오겠다는 참으로 맑고 깊은 사귐이 그립기만 한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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