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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72일

by 은은


無一物非天(무일물비천) 어느 한 사물도 하늘마음 지니지 않은 게 없고

無一物非命(무일물비명) 어느 한 사물도 우주 원리 간직하지 않은 게 없고

無一物非神(무일물비신) 어느 한 사물도 신비스럽지 않은 게 없네

茶熟香淸(차숙청향) 차 끓이고 맑은 향 사르는데

有客到門可喜(유개도문가희) 손님이 찾아옴도 기쁜 일이나

鳥啼花落(조제화락) 새 우짖고 꽃 지는데

無人(무인)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어도

亦自悠然(역다유연) 그 자체로 넉넉한 법이네

眞源(진원) 참된 흥취란

無味(무미) 본래 맛과 향이 없는 법이니

신흠(申欽, 1566~1628) <자연에 귀기울임[야언(野言)]>


지난 화, 수요일 1박 2일간 아이들과 나라사랑 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닫혀 있는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 있음의 의미를 체험한 아이들에게 격려와 희망의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은 먹먹한 구름 사이로 진분홍빛 일출을 보며 교육원을 향했습니다. 살아 있음의 기쁨은 얼마나 감탄하고 경탄할 수 있느냐에 비례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흠은 정치가, 사상가, 시조 작가로서 사림의 신망을 받음은 물론, 이정구(李廷龜) · 장유(張維) ·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4대 문장가 중의 한 분입니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그의 시에는 자연과 생태, 우주 만물의 원리, 깨어있음을 노래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야말로 자연을 닮으려고 노력한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사물도 하늘마음’, 우주 대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내 마음을 얼마나 자주 비우고 갈무리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소리 없이 내리는 은행잎의 흩날림, 겨울의 무서리, 비의 냄새와 대기의 흐름을 감지하고 서둘러 둥지를 정비하는 새들, 겨울 채비를 위해 배추와 무를 수확해서 옮기는 손길들에서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 만물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찻물 끓이며 찾아오는 손님 없어도 꽃피고 새 지저귀고 물안개 피는 모습과 일출과 일몰, 계곡물 소리, 물고기가 자유로이 뛰어놀며 헤엄치는 모습, 나무가 씨앗과 잎을 떨굼으로써 자신의 무게를 줄여나가는 모습 등에서 우주 자연의 조화와 섭리, 겸손과 겸허, 비움과 멈춤을 배우게 됩니다.

참된 벗과 참된 흥취, 참된 맛은 처음에는 없는 듯 잘 느껴지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가와 진국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리숙함에서 쉼에서 사이 둠에서 무미함에서 상호연결됨, 함께 존재함, 우주의 섭리와 조화, 감사와 경이를 발견하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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