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善扵居貧(여선어거빈) 나는 가난한 생활도 잘 견뎌냈네
肉罕登槃(육한등반) 고기반찬이 상에 오르는 일은 드물지만
亦樂而不厭(역락이불염) 또한 즐거워할 뿐이고 싫어하지 않네
治圃一畝(치포일무) 채소밭 한 이랑을 가꾸어
手種南瓜(수종남과) 손수 호박을 심고
待其黄熟(대기황숙) 누렇게 익기를 기다렸다가
收蔵(수렴) 따서 갈무리해둔다네
至寒(지한) 날이 추워지면
莭烹為羹(즉팽위갱) 삶아 국을 끓이고는
和飯為澆饡(화반위요찬) 밥을 말아 먹는다네
其味絶甘(기미절감) 그 맛이 너무나 좋아
不復知有膷臐之美也(불부지유향훈지미야) 고깃국보다 훨씬 낫다네
有黄赤色(유황적색) 콩도 황적색을 띠고
而皮軟者(이피연자) 겉이 말랑한 것이 있는데
和米五分居一炊(화미오분거일취) 쌀에 5분의 1정도를 섞어
為飯則其味亦甘(위반즉기미역감) 밥을 하면 역시 맛이 좋다네
合而嚼之(합이작지) 씹어보면
則他饌可廢(즉타찬가폐) 다른 반찬 없이도
盂盛便盡矣(우성변진의) 밥 한 사발을 다 먹게 되네
此可謂(차가위) 이로 미루어 볼 때
瓜菽如飴也(차가위과숙여이야) 호박이나 콩도 엿처럼 달다고 말할 수 있다네
이익(李瀷, 1681~1763), <씀바귀를 엿처럼 달게 먹다[菫荼如飴(근도여이)>
오늘 아침 출근길과 강가에 물안개가 그윽하게 서려 있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네 삶도 안개 가득한 길을 자신만의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성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성호(星湖) 이익의 밥상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조선 후기 대학자라는 명성에 비하면 그의 밥상은 너무나 간소하고 초라하기만 합니다. 오히려 대학자이기에 앎과 실천을 일치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했을 것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자신이 먹을 만큼의 텃밭을 가꾸어 채소, 호박, 콩 등을 조달합니다. 콩밥은 다른 반찬 없이도 한 사발을 다 먹게 될 정도로 그 맛이 달고 일품이라고 품평합니다. “고기반찬이 상에 오르는 일은 드물지만 또한 즐거워할 뿐이고 싫어하지 않는” 소박한 반찬[素饌(소찬)]과 검소함이 몸에 밴 그의 일상에서 학자로서의 맑은 기품과 그가 밥상을 대하는 태도를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과 미식(美食, 맛있는 음식)검소함에 관한 그의 생각을 다음 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나는 밤에 앉아 있을 때 배고픈 줄을 몰랐다.
언젠가 손님이 찾아와
늘 진미를 갖추고 먹어야 한다며
맛있는 반찬을 주기에
그의 말을 따라 먹어보았네
그 반찬을 다 먹자
이내 배가 고팠고
계속 다른 좋은 반찬을 구해서
먹지 않을 수가 없었네
또 저녁에
밥을 배불리 먹었는데도
아침이면 반드시
갑절이나 배가 고팠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사치스런 생활을 누리다가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이익, <검소한 데로 돌아가기는 어렵다[入儉難]>
저는 이 글을 보면서 뷔페 음식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열심히 맛보았는데 돌아서면 허기가 집니다. 왜일까요? 오색 빛깔과 넘쳐나는 풍미에 휘둘려 눈과 마음을 음식에 빼앗긴 채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의식하며 천천히 씹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호는 위 글에서 입에 맞는 음식, 각종 진귀한 음식을 찾아다니고 구해서 먹는 일의 병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반찬이라는 것은 먹고 또 먹어도 배가 부른 줄을 모르고 그것을 계속 즐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동과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타고난 부자가 아니고서야 이런 식생활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맛은 또한 중독되기가 쉽습니다. 가정 형편을 생각지 않고 계속 그것에 빠져든다면 결국엔 가정 경제의 파탄과 몸과 마음의 불균형으로 쉽게 병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이런 이치를 몸소 겪은 후에 “사치스런 생활을 누리다가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차분한 어조로 말하고 있어 먹거리가 넘쳐나고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는 비단 물건뿐만이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