鏡之明也(경지명야) 거울이 밝으면
妍者喜之(연자희지) 잘생긴 사람은 기뻐하지만
醜者忌之(추자기지) 못생긴 사람은 꺼려하네
然妍者少(연연자소) 잘생긴 사람은 수가 적고
醜者多(추자다) 못생긴 사람은 수가 많네
若一見(약일견) 만일 못생긴 사람이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면
必破碎後已(필파쇄후이) 반드시 깨뜨리고야 말 것이니
不若爲塵所昏(불약위진소혼) 먼지가 끼어 희미한 것만 못하다네
塵之昏(진지혼) 먼지가 흐리게 한 것은
寧蝕其外(녕식기외) 겉만을 흐리게 할지언정
未喪其淸(미상기청) 맑음을 잃게 하지는 못하니
萬一遇妍者(만일우연자) 만일 잘생긴 사람을 만난 뒤에
而後磨拭之(이후마식지) 닦여져도
亦未晚也(역미만야) 시기가 역시 늦지 않다네
噫古之對鏡(희고지대경) 아! 옛날에 거울을 대한 사람은
所以取其淸(소이취기청) 맑음을 취하기 위한 것이네
吾之對鏡(오지대경) 내가 거울을 대함은
所以取其昏(소이취기혼) 희미함을 취하기 위함인데
子何怪哉(자하괴재) 그대는 무엇을 괴이하게 여기는지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거울 이야기[경설(鏡說)>
오늘은 낙엽이 우수수가 아닌 절기상 입춘 다음인 우수(雨水)입니다. 절기에 걸맞게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곧 있으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봄소식에 놀라 깨어나는 경칩(驚蟄)도 다가오겠지요.
설을 쇠고 나니 어느덧 2월의 후반부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거울이나 자화상에 관한 글을 한 번 써봐야지 생각하다가 우연히 이규보의 <경설>을 접하게 되어 여러분과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거울은 여인의 전유물이었으나 저를 포함하여 요즈음은 남성들도 거율에 수시로 자신을 비춰보며 외모에 관심을 많이 기울입니다. 광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1인 창업과 자기 PR 시대에 외모 관리는 필수가 되었습니다.
거울의 용도는 맑음을 취하기 위함인데 시인은 반대로 희미함을 취하기 위해 거울을 본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보다 못난 사람이 많기에 자신의 잘난 점을 거울에 비추듯 뽐내고 다니면 세상의 미움을 받기에 그 점을 잊지 않고 늘 겸허히 겸손함을 지니기 위해 자신은 흐린 거울을 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우리는 화가 나면 그 화 속에 나 자신이 파묻혀 성난 나의 모습을 비춰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수시로 거울을 들고 다니며 예쁜 표정만을 지어 보일 것이 아니라 상심한 얼굴, 우울한 얼굴, 남을 해하려는 모습을 수시로 비춰보며 맑고 밝은 마음을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화난 내 얼굴 거울로 비춰보기’를 습관화한다면 일상에서 스트레스와 화낼 일들이 조금은 수그러들게 될 것이며 밤하늘에 흐릿한 달빛처럼 내면의 고요함을 건져 올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선현들은 주역 64괘 중 지산겸(地山謙) 괘를 가장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땅 아래 우뚝한 나의 잠재된 모습을 잘 갈무리하고 힘을 길러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에 잔잔하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