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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Feb 25. 2024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96일


 不識騎牛好(불식기우호소 타는 일 좋은 줄을 몰랐다가

 今因無馬(금인무마말 없고 보니 오늘에야 알겠구나 

 夕陽芳草路(석양방초로저물녘 향기로운 풀 어우러진 길을

 春日共遲(춘일공지봄날도 함께 뉘엿뉘엿 오는구나

 양팽손(梁彭孫, 1488~1545), <우연히 읊다[우음(偶吟)]>     


 집 주변 장복산 중턱에서 초록빛을 띤 흰 꽃잎의 매화, 분홍빛을 띤 홍매화, 멀리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올해도 여지없이 다가오는 계절의 변화에 감회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재작년에 지역 연한이 다 되어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작년에는 파견을, 올해는 다시 연고지 주변 학교로 세 번을 연달아 이동하다 보니 교직 생활 19년 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익숙하지 않습니다. 올내년은 또 어떤 반가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긴장되면서도 설레이기도 합니다.     


  양팽손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서화가로 유명한 분입니다.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그의 벗인 조광조를 두둔하다가 30대 초반의 나이에 관직을 빼앗기고 전라도 능주(綾州)로 낙향하게 됩니다. 이후로는 관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고향에 ‘학포당(學圃堂)’이란 작은 집을 짓고는 독서와 서화로 소일하였습니다. <네이버 및 위키백과 참조>     


 말은 오늘날 ‘차’에 소는 우리가 걷는‘걸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말이나 차를 타고 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빠른 화면 전환에 지나지 않습니다. 양팽손은 오늘날 우리처럼 말(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였나 봅니다. 말은 달릴 때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급하게 이동하다 보면 마음은 벌써 직장에 닿아 있고 오늘 처리해야 할 업무를 먼저 챙기게 됩니다. 만원 지하철에 치이고 교통 체증에 시달리다 보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벌써 파김치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방법은 일찍 출근하고 퇴근 시간을 넘긴 뒤에 나오는 것인데 이 또한 여의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직장과 내가 사는 곳이 코앞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러시아워에 시달리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주말만이라도‘말’은 세워두고 ‘소’ 타듯 천천히 걸으며 주변의 풍광을 음미하면 어떨까요? 풍경의 속도는 곧 마음의 속도입니다. 천천히 자연의 속도로 나와 만물을 음미하며 걷다 보면 먹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의 기적과 갓 꽃피어 올린 산수유와 개나리의 따스함도 함께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저물녘 향기로운 풀 어우러진 길’을 가족, 연인, 마음 맞는 벗과 함께 걸으며 형형색색 삼라만상이 수놓은 일몰을 바라보는 일도 가슴 충만한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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