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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Feb 12. 2024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93일


 臨溪茅屋獨閑居(임계모옥독한거개울 옆 띠풀 집 한가히 혼자인데

 月白風淸興有(월백풍청흥유밝은 달 맑은 바람 흥취가 넘치누나

 外客不來山鳥語(외객불래산조어찾아오는 손님 없어 산새와 벗하고

 移床竹塢(이상죽오와간대밭으로 평상 옮겨 누워서 책보네

 길재(吉再, 1353~1419), <한가로이 뜻을 풀어내며[술지(述志)]> 

    

 오늘은 연휴의 끝입니다. 끝은 한 주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찾은 여유는 무료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런 쉼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갈 힘을 되찾곤 합니다.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는 고려 말 세 학자로 ‘숨을 은(隱)’자를 따서 ‘삼은(三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삼은이란 칭호가 무색하게 조선 건국을 반대하다 정몽주는 죽임을, 이색은 귀양 가서 죽게 됩니다. 앞의 두 사람에 비해 정치적, 학문적 영향력이 미미했던 길재는 노모를 모신다는 명분으로 낙향한 것이 본인의 이익과 명예, 목숨을 부지한 비결이라는 후대의 평가도 존재하기도 합니다.<나무위키 참조>     

 이를 통해 볼 때 우리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가릴 줄 아는 지혜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평가와는 별개로 오늘의 시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구의 ‘한거(閑居)’라는 시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밝은 달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새 소리, 계곡물 소리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도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밝은 달을 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절로 흥이 생겨납니다. 대금이나 가야금, 거문고, 오카리나, 팬플룻 등의 악기를 연주한다면 자연의 소리를 배경으로 한 영혼의 교향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니 반딧불이, 은하수, 풀벌레 소리, 물소리, 산새 소리, 바람 소리를 벗 삼아 눈으로 보고 귀에 담으며 온몸으로 우주의 질서를 체득하고 받아들이는 ‘확장된 나로의 심성 수양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흙, 물, 나무, 새, 달, 풀, 사람, 반딧불이, 풀벌레, 산짐승 모두 우주 대자연의 일부분이자 서로가 서로를 빛내는 주인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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